우리는 모였다가 흩어졌다.
그렇게 모였다가 흩어져도 괜찮다.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지라도.
몇 년 전 그리스 아테네의 유스호스텔에 머물렀던 열흘 정도의 시간을 생각했다. 아주 먼 거리에서 온, 국적도 언어도 나이도 모두 다른 예닐곱 명의 친구들을. 우리는 영어와 스페인어로 대화했다. 나는 스페인어를 모르고, 아르헨티나에서 온 호세는 영어를 몰랐다. 한 사람이 여장을 꾸려 다시 자신의 길을 떠나면, 그 전날엔 모두 함께 있었다. 기로스를 먹고, 맥주를 마시고, 도시를 함께 걸었다. 그곳을 떠난 이후 그들을 다시 만난 적은 없다. 그 이후에도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주고받은 이들은 한두 명뿐이다. 아마도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국에서의 짧은 만남에 마음을 내주고 아름답게 삶의 찰나를 보낼 수 있는 그런 이들은 일상에서도 잘 해나갈 것이기에. 다시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인연은 짧지만 오래 간직된다. 결코 ‘가볍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일상적인 관계를 맺고 삶의 긴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인연과는 전혀 다른 인연이다. 우리가 연결되기 전과 후는 결코 같지 않기에.
<나와 당신의 연대기 - 페미니스트 자기 역사 쓰기>는 여러 사람의 생애연보에서 각자가 고른 주요 사건을 엮어 함께 보며 이야기하고 사유하는 워크숍이다. 개인의 경험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이고 나아가 정치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참여자들과 각자의 고유한 삶의 경험들과 그것이 공통의 기반을 갖는 지점을 함께 이야기하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이 와서 어떤 경험을 말하는가에 따라 나누는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번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한 참여자가 말했다. 처음에 서로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와 모였는데, 이런 채로 그대로 돌아갈 줄 알았다고. 그런데 각자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다고. 우리는 처음 인상으로 서로를 판단하니까 처음에 얼굴만 보고 ‘이런이런 사람이겠거니’ 지레짐작하고 있었는데, 끝날 때쯤 문득 생각하니 처음에 받았던 인상들이 달라져 있다고.
스무 살이라는 한 참여자는 오늘 이곳에 오기 전 예정에 없던 결정을 했고, 그 결정에 따라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왔다. 어머니는 “뭔지도 모르고 왔어요” 하며 방어선을 그었다. ‘페미니스트 자기 역사 쓰기’라는 오늘의 워크숍 부제와 우리 책방이 ‘페미니즘’ 책방이라는 것을 인식한 듯 그는 말했다. “나는 휴머니즘이거든”
자신의 연대기를 써서 벽에 붙일 때, 누군가는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의 경험들을 나열했다. 누군가는 상실의 경험, 가족 관계의 변화들을 나열했다. 누군가는 아버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 누가 올지도 모르는 채로, 모인 사람들과 함께 무엇을 하게 될지에 관해 아무 정보도 없는 채로 모여앉았다. 각자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다른 이야기 사이에 만들어지는 신기한 연결고리. 그 중에 한 가지를 살펴보면 이러하다.
‘1986. 7 학생운동’
어떤 이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이 짧은 단어에 담았다.
‘1987 남편 첫 만남’
남성 운동권 동지들의 기만과 자기모순이 싫어 전혀 다른 이력을 가진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1987년 19살 고등학교 3학년, 87년 6월 항쟁을 구경(?)하다’
누군가는 격변의 한가운데에서 조금 비껴난 곳에 서 있었다.
‘1985 대학 입학’
민주화의 열기 한가운데서 대학 시절을 보낸 또다른 누군가는 사회인이 되고, 기성 세대가 되어 갔다. 자녀를 강남 8학군에서 키운 엄마가 되었다.
‘1999년 7월, 드디어 화장실이 집 안에 있는 곳으로 이사함!’
‘강성 운동권’ 아버지의 연행과 구속, 집안의 가난과 어머니의 옥바라지를 지켜봤던 딸은 처음으로 집다운 집에서 살게 되었던 날을 기억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받는 상처를 어찌하지 못한다. 당연한 말 같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깨닫더라도 치유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처는 실은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역사 따위가 아니라 사람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성 운동권' 아버지를 둔 딸은 어린 시절 집안의 가난과 불안으로 인한 상처에 대해, 아버지의 ‘입장표명’을 들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의 선택과 신념을 이해하지만, 그에게는 아버지의 마음을 듣는 일이, 아버지의 미안했다는 말이 필요하다.
2018.12 가족의 재구성
2017년 49살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하다.
2019년 51살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기다. 이혼 일기를 쓸 거다.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엄마인 누군가는 남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자신의 입장을 꺾거나 말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딸들로 인해 페미니즘을 알았다. 페미니즘의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과 사실상 다른 길을 걸어가기로 했다. 누군가는 이혼을 준비하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남편과 이혼했다. 더 이상 움츠러들고 침묵하지 않는 이들이 서로를 다독였다. 우리의 연대기에 쓰인 사실 위주의 글자들은, 보이지 않고 공기 중으로 흩어진 말들로 인해 느슨하지만 단단하게 연결되었다.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오늘 예정에 없이 이 곳에 온, 처음에 닫혀 있던 이의 마음은 조금 열렸다. 그는 딸이 자신에게 엄마의 인생을 살라고 말하는데, 아직 습관이 되지 않았다고, 오늘의 이야기들이 놀라웠다고 말해 주었다.
이야기는 계속하려면 계속될 수도 있는 것. 이 밤의 끝을 잡고 이어질 수도 있는 것.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고, 사람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서로가 어디에 사는지 모른다. 이름조차 벌써 잊었을지 모른다. 한 참여자는 이 공간이 커피도 맛있고 이상하다고, 이상하게 몰입이 된다고 말했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이곳이 나의 아테네 유스호스텔과 같은 곳일까? 세상 어디에선가 서로 모르는 이들이 모였다가 흩어진다. 이 곳이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지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니 좋네. 누구에게나 그런 장소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