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람'을 진심으로 인정해야 '탈 모자람'이 가능해진다
모두가 스스로를 '멋지고 좋은 사람'으로 포장하고 싶어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스스로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절대로 발전은 없다.
발전은 내가 모자란 부분을 솔직하게 인정한 상태에서
그 모자람을 어떻게 채우고 극복할지에 대해서 고민할 때 시작되고,
나름대로 찾은 해결책을 실행해서 하나하나 완결할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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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못했다면서 무슨 서울대 컴공에 가요' 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이 말에 내가 하는 말은 두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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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잘 못했었어. 사실이야. 근데 그건 고 2때까지만 못했어. 고3땐 당연히 잘했지. 그러니까 원하는 대학에 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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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때 점수? 10번 보면 80점 만점에 70점대는 한두번 나오고, 나머지는 50점대 초반, 종종 40점대 후반도 나왔어. 잘한거야? 못한거 맞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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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시절, 나름 다른 과목은 성적이 나쁘진 않았고, 가끔씩은 수학도 80점 만점에 70점대도 나온적도 있었다. 나도 당연히 사람이니까, 점수가 낮게 나오는 때에는 '에이 운이 없었네' 라고 생각하고 그 순간만 모면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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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떤 모의고사에서 나름대로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당시 수학 모의고사를 보면 앞에 4문제가 등장하고 대개 2점짜리 2문제, 3점짜리 2문제가 나온다. 당연히 배점이 높은 문제는 어려운 문제, 배점이 낮은 문제는 쉬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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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2점짜리 두문제를 아예 '몰라서' 못 풀었다. 한 문제는 지수로그 관련 문제였고 다른 문제는 삼각함수 관련 문제였는데, 못 풀었다. 심지어 5개의 문항 중 두개로 좁힌다음 찍을 수도 없었다.
나는 아예 몰랐던 것이다.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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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공부 잘 한다는 사람들만 선발해서 다닌다는 학원에서 수업도 듣고, 마치 이해하는듯 혼자 끄덕거리기도 했고, 단원을 여러번 훑기는 훑었으니까 수박 겉 핥기 아니 수박 냄새 맡기 수준으로는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그냥 모른다고 인정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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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이야기 했다.
"너 이거 모르잖아. 모르는거잖아. 모르니까 못푸는거잖아. 지금만 그래? 아니잖아. 너 모르는거야."
뼈아프지만 스스로 인정하기로 했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따져 보았다. 80점 중 내가 맞는 점수가 얼마인지, 그 중 '진짜로 완전히 이해해서 풀어낸' 문제는 얼마인지, 그 때의 내 점수는 어느정도 나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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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문제의 난이도 차이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정말 100% 이해해서 풀고 맞추는 문제는 50-60점 수준이었다. 나머지는 그나마 '완전히 아닌 답'을 지우고 둘 중 하나를 골랐는데 우연찮게 맞았다거나, 정말 제대로 모르고 찍었는데 정답이었던 경우였다. 이런 수준으로는 내가 원하는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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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하나 명확한 정의와 원리부터 따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는 내가 나중에 대학생이 되어서 학생들에게 과외 지도를 할 때도 자주 써먹는 말이 되었는데, 예를 들면 이런 말이다.
'합집합, 교집합, 차집합, 여집합, 부분집합. 뭔지 다 아는데, 왜 '집합이 뭐야?' 라는 질문에는 답을 못하지?'
'원소의 개수가 n개인 집합의 부분집합 개수는 2^(n-1)이야. 근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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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하게 이해했다' 라고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도저히 풀 수 없을 수준으로 어려운 문제는 일단 해설을 보고 답을 찾는 과정을 익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이 있겠지만, 해설을 보면 마치 내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으로 느끼는데, 막상 해설 덮어놓고 풀려면 못푼다. 그렇게 못 푼 문제는 별도로 표기를 해놓고 그 다음날 다시 풀었다. 심한 경우 한 문제를 20번 정도 풀었다. 그렇게 완전히 이해할 때 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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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2 여름방학 때부터 고 3에 돌입하기 전까지 자습시간의 80% 이상을 수학 공부에 매달렸다.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스스로에게 떳떳할만큼 이해해야 넘어가는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반 4등으로 고 3에 진학했던 나는 고 3 여름 방학 쯤 전교 1등을 했고, 그 이후 꾸준히 전교 2-4등의 성적을 반복했다. 수능은 안타깝게도 수석은 못하고 차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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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단편적인 어린 시절의 예시다. 하지만 이 예시는 내 삶의 방향은 조금 바꾸어 놓았다.
재밌는 사실은, 화살을 쏠 때 0.1도만 각도가 틀어져도 과녁 앞에서는 몇도나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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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고 2때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 이번엔 운이 안좋았어.'
'아 이번엔 내 실력이 아니야.'
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순간만 모면했다면 나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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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학 진학 이후에도 겹겹이 나타났던 '합리화 하고 싶은 순간'에 대해 내가 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상황에 대해 합리화 해왔다면 내 모습은 과연 현재의 내 모습과 같을까?
장담컨대 비교도 안될만큼 모자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모든 변화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솔직해졌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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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운을 탓하고 누군가는 때를 탓하고 누군가는 상대적인 제약조건을 탓한다.
그래서 진짜로 결과가 달라진다면 수천번 수만번이라도 탓해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는다. 악조건 속에서도 피는 꽃이 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내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가 부족한 영역을 인정하고, 그 부족함을 메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결코 발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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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람을 인정하는 순간은 아프고 쓰리다.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는 순간은 아프고 쓰리다.
그 순간의 아픔과 쓰라림이 싫다고 외면하면 흉터가 크게 남는다.
당신의 모자람 앞에 당당하게 마주하라. 지금 당장 모자람을 마주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당신은 적어도 그 분야에 있어서는 영원히 모자란 사람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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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람'을 진심으로 인정해야 '탈 모자람'이 가능해진다.
대체 당신의 변명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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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재성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부를 졸업하고 맥킨지 앤 컴퍼니 (McKinsey & Company) 컨설턴트로 재직했다.
현재 제일기획에서 디지털 미디어 전략을 짜고 있다.
저서로는 행동의 완결, 퍼펙트 프리젠테이션 시즌 I, 퍼펙트 프리젠테이션 시즌 II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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