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부터 배우다
간편함은 '참는 것'을 덜 해도 된 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내할 자신이 없다면 '재화'를 지불하면 된다.
봉지를 뜯고, 물에 부어 젓는 과정보다는 원두를 갈고 탬핑을 하고 물을 내리는 과정이 보다 어렵다.
이것이 '참는 것'의 과정이다.
'참는 것'을 생략하면서 그와 똑같은 질을 맛보고 싶다면 '재화'를 지불하면 된다.
믹스커피 마시기 싫으면 원두 커피를 내리고,
믹스 커피는 먹고 싶지 않지만 원두 커피를 직접 만들고 싶지 않을 때에는
커피 전문점에 가서 커피를 주문하면 된다.
커피 전문점을 가서 주문 하는 것 만큼 재화를 지불하고 싶지는 않지만
원두 커피는 마시고 싶고 직접 탬핑을 하기 싫다면 캡슐 머신을 사용하면 된다.
믹스커피-원두커피 직접 내리기-캡슐머신 사용-커피 전문점
'한 잔'의 커피 단가만을 생각 했을 때 이 순서는 결국 얼마나 '참아낼 수 있는가' 알 수 있는 작은 척도이다.
사람의 최대 발견이 '불'이라면 최고의 발명은 '화폐' 라는 생각이 든다.
거의 모든 것들을 교환 가능 한 것으로 환산시켰기 때문이다.
감내할수 없다면 재화를 내고, 재화를 낼 수 없다면 감내하면 된다. 감내 하는 것도 싫고 재화를 지불할 수도 없다면 이럴 때에는 간편함(또는 덜 가치 있는)을 선택하면 된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덜 가치있는 것을 선택하고 싶지 않은데에 재화를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의 불만에서 기인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재화의 교환이 성립하지 않는 몇 안되는 영역 중 하나가
바로 '서로간의 감정' 이라는 생각이 든다.
환심.
'끌리게 하는 마음'은 돈으로 꽤 많은 부분을 살 수 있다.
'능력남/여'이(가) 인기가 많은 이유는 그의 능력이 재화를 벌어다 주고
그 재화로 또 다른 물건을 교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환심이 이끌어 형성한 둘의 관계에서는 이미 재화가 끼어 들 영역이 아니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매번 늦는다거나,
수시로 폭언을 한다거나,
자기 맘대로 군다면 어떻게 될까?
돈의 노예가 아닌 이상에야 어지간하면 상대방에게서 떨어지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결국 관계의 형성까지는 재화가 분명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관계의 유지에 있어서 가장 감정적인 부분까지 내려가면 이 곳에는 재화가 끼어 들 틈이 없다.
두 사람의 오롯한 감정대 감정의 감내만이 있을 뿐이다.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 왔던 두 사람이 온전히 똑같은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관심의 표현이 상대방에겐 귀찮은 간섭일 수도 있고
나에게는 상대의 시간을 주고자 하는 배려가 상대방에게는 무관심일 수 있듯 말이다.
그래서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내 상식에서 맞지 않는 상대방의 행동 또는 생각을 서로의 대화를 통해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늘 상 우리가 자주 말하듯, '다른 것'은 분명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는 것' 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이라도 재화가 끼어들 수 없어 다행이기도 하지만
그 감정이 반드시 필수적인 '감내의 과정'을 포함한다는 것은 한 편으로는 어렵고 귀찮은 일임에 틀림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고마운 일이다.
감정에는 누구나 공평하게 '참는 일'이 수반 되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왜냐고?
누군가를 향한 마음에 대하여 '참는 과정'이 없다면
상대방을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없을 수 있기 때문에.
'참는 것'
그 것은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아픈 보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