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종류'와 '정도'에 대한 단상
나에게 누군가가 맛있는 소고기를 사준다고 한다면, 그는 아마도 나를 잘 대접하고 싶어하는 마음에 하는 행동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같은 행동을 힌두교도에게 한다면 이는 상대방을 매우 모욕하는 처사가 될 수 있다.
한 잔을 챙겨 마시는 깨끗한 물은 분명 건강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 물을 모아서 물대포 처럼 쏜다면 어떻게 될까?
받는 사람은 물을 마셔 건강해지기는 커녕, 너무 강한 압력을 맞고 쓰러지고 말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이러한 것들을 조절하지 못해 상호간에 생기는 오해들이 참 많다.
주려는 사람은 이 것이 '좋은 종류'의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받는 사람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것이다.
나는 잘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고가의 선물을 하고,
나는 잘 해준다는 마음으로 달달한 표현을 하고,
나는 잘 해준다는 마음으로 잦은 연락을 할 때 이 모든 것은 '보편적으로' 좋은 종류의 감정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는 사람은
'부담스러운 선물'
'부담스러운 언행'
'부담스러운 빈도의 연락' 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어떠한 감정을 쏟아내는 것은, 자신 스스로에 대해서 초점이 맞추어 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그 감정의 '종류'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상대방이 감당해 낼 수 있는 수준은 어디 까지 인지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농도와 양의 감정은 설령 그것이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결코 좋은 결과로 발현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보편적 좋은' 감정은,
결국 내가 그 감정을 배설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감정의 발현은 내가 하지만, 그의 주인은 그 감정을 받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