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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더하기 Jan 13. 2019

소설계의 천하장사

임꺽정 - 홍명희

가끔은 소설 임꺽정의 결말을 보여주지 않은 벽초 선생님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우리글의 공감을 위한 그 첫 번째 이야기는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이다.


감히 말하건대 임꺽정을 읽지 않고 소설을 논하지 말지어다. 너무나 괴팍한 표현 같지만, 소설은 소설다워야 한다는 나만의 기준을 정확히 확인시켜준 소설이 바로 임꺽정이다.

소설 임꺽정의 문학적 가치나 위대함은 나 같이 미천한 독자가 평가하기에는 그 깊이가 너무 깊다. 다만 여러 학자 분들께서 꼽아 주셨듯이 이 소설의 문학적 가치 중에 하나는 바로 찬란한 국어의 향연이라는 점이다. 국어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소설 임꺽정에 드러난 국어의 아름다움과 그 문학적 가치는 여러 학자님들의 서평과 수 없이 많은 논문들을 살펴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아니다. 직접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소설 임꺽정을 한창 읽어 나갈 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벽초 선생님은 이 글을 쓰면서, 흔히 말하는 '기승전결'을 모두 생각하시고 전개해 나가셨을까? 일단 나에 대답은 ‘아닐 것이다.‘이다. 

간혹 흐름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보이고 책 제목이 임꺽정이라 다행일 만큼 인물에 대한 관점이 여러 번 바뀌기도 한다. 또한 말하고자 하는 정확한 의도가 무엇인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학사에 벽초를 첫손가락을 꼽는다!”는 시인 신경림 선생님의 말처럼 소설 임꺽정은 정말 위대한 대하 역사 소설임에 틀림없다. 

자 이제 나와 같은 일반 독자가 느끼게 되는 소설 임꺽정의 위대함이 무엇인지 하나씩 들여다보도록 하자.


먼저 조선의 4대 사화(무오, 갑자, 기묘, 을사) 중에서도 특히 갑자와 기묘사화를 관통하는, 즉 연산군에서 중종의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역사자료이다. 

누구든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 사실만이 기록된 지루한(?) 역사서를 읽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바로 역사소설을 통해 당시의 사건 사고와 인물을 파악하는 것인데, 

바로 이 책, 소설 임꺽정은 이렇게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을 찬란한 이야깃거리로 승화시켜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한다. 특히 1부 ‘봉단편(鳳丹篇)’과 2부 ‘피장편(皮匠篇)’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실존 인물을 감칠맛 나게 전달해 준다.

누군가 내게 만약 소설 임꺽정 전권을 두고 한 권의 책을 뽑아 달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첫 권인 ‘봉단편’을 뽑아 줄 것이다. ‘봉단편’만으로도 독후감 수 페이지는 족히 작성할 자신이 있을 정도다.

홍문관 교리 이장곤이 유배지에서 탈출하여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고리백정의 사위가 된 이교리와 그의 색시 ‘숙부인’ 봉단이에 봄날 새싹과 같은 사랑 이야기가 초반부를 장식한다. 게으름뱅이 사위로 전락한 이교리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유쾌 통쾌 상쾌하게 중앙정부로 재 진입하는 과정까지, 말 그대로 정말 깨알과 같은 재미가 책 전반에 넘쳐흐른다. 지금도 그 한 장 한 장의 재미와 감동이 새록새록 차오른다. 얼마나 해학적이며 그 재미가 넘쳐 나는지 직접 보고 느껴주길 바란다. 

내 존경하는 유홍준 선생님에 말씀을 잠깐 빌려 각색하여 표현하자면 '보고 느껴야 하는 봉단편이지 말로 표현되는 봉단편이 아닐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임꺽정 전편을 보다 보면 우리에 성웅 이순신 장군님도 어릴 적 똘망함을 가지고 우정 출연하신다. 특히 ‘피장편’을 통해 전개되는, 시대를 거스른 천재 개혁가, 정암 조광조의 이야기도 꽤 볼만하다. 

비단 ‘봉단편’과 ‘피장편’을 차치하고서라도 소설 임꺽정은 전반에 걸쳐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간다. 특히 조선 중종 시대의 사회상과 정치상황 그리고 당시의 인물들에 관심이 있다면 꽤 훌륭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 내가 뽑은 소설 임꺽정의 매력은 뚜렷한 인물 설정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사실 '그 주인공이 임꺽정이 맞나?' 싶을 때도 있다. 총 5편 10권으로 구성된 임꺽정은 매 권마다 그 중심인물이 바뀔 정도로 각각의 인물별 설정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나도 역시 어둡잖게 소설을 써 보겠다고 흉내도 내보지만 이때 가장 힘든 것이 인물 설정이다. 어찌 보면 인물 설정이 소설에 전부라 해도 과하지 않을 듯하다.

특이한 점은 정확한 인물 설정과는 반대로 인물에 위치 변화와 서로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설명이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점이 상당한 매력 포인트다. 자칫 인물에 집착하여 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겉만 도는 것에 비하면 전체 흐름에 대한 몰입도는 더욱 견고해진다는 점이다. 

중국 고전, 아니 세계적인 고전 명작 삼국지를 보면, 인물 중심의 이야기 흐름이라는 점에서 임꺽정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의문이 들 수 있다.

질문을 던져보자. “삼국지에 주인공은 누구이던가?” 쉽게 대답이 나오는가? 삼국지에 주인공은 유비일까? 아니면 조조? 에이 유비, 관우, 장비 아닌가? 그럼 초반부 여포는? 원소, 원술? 중후반부의 제갈량은 어떻고? 아하 조자룡이 섭섭하겠는걸! 이렇게 다양한 인물 설정과 인물 중심의 전개는 내가 생각하는 삼국지의 상당한 매력이다. 이점이 바로 소설 임꺽정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소설 임꺽정 속에는 주인공이기를 자처할 만한 인물이 꽤 많이 등장한다. 일일이 열거하며 소개하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그것은 앞으로 임꺽정을 읽을 분들에 배려로 남겨두겠다. 기회가 된다면 임꺽정 인물열전을 써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래도 아쉬우니 그 많은 인물 중에서 한 명을 선별해 소개한다면 나는 궁극에 축지법 황천왕동을 뽑고 싶다. 성은 황이요 이름은 천왕동인 것이다. 황천왕동이는 임꺽정에 처남이 된다. 누이인 황운총이 임꺽정에 정실부인이고 그녀에 남동생인 것이다. 

황천왕동이는 두 가지 특출한 능력이 있는데, 보통 사람보다 걸음을 빨리 걷는 능력과 장기(將棋)를 기가 막히게 잘 두는 장기(長技)가 있다는 점이다. 황천왕동이에 걸음은 보고도 믿지 못할 정도로 빨라 두루두루 활약상이 많다. 

임꺽정에 모든 인물과 모든 장면이 다 독특하지만 황천왕동이는 장기 잘 두는 사람 찾아 방방곡곡을 누비다 결혼까지 하는 특별한 이력을 가지게 된다. 이 장면에서 장인과 사위가 주고받는 질문과 대답은 무릎을 칠 정도로 해학적이며 입가에 미소를 절로 띠게 한다. 

황천왕동이는 곱상한 얼굴 묘사에 비해 여색을 밝히지도 않고, 정 많고, 사려 깊고, 무엇보다 착하다는 매력이 있다. 황천왕동이가 여색에 빠져 허우적대는 임꺽정이 만나러 가서 설득하다 따귀를 얻어맞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 부분이 소설 임꺽정에서 황천왕동이란 인물을 일목요연하게 집약해서 잘 표한한 부분이다.


소설 임꺽정은 재미만큼 인물 간 관계의 복잡함도 또 하나의 매력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느닷없이 허투루 등장하는 경우가 없다. 임꺽정을 중심으로 서로 얽히고, 누구에 누구 할 정도로 연관성을 띠고 있다. 위에 언급된 첫 편의 주인공 교리 이장곤부터 임꺽정과는 친인척 간이니 그 복잡함이 심오하다. 하지만 이 복잡함 때문에 글의 전개가 더디거나 이해를 하기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지 않으니 새삼 놀랍고 존경스러운 글 솜씨가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청석골 무리에 막내 두령은 길막봉이다. 길막봉이는 청석골 패거리가 되기 전에 황천왕동이가 과천에 장기 두러 다니다 면대했던 사이로 안성에 천하장사이다. 

길막봉이는 그나마 그 인연이 조촐하다. 호색한이자 장돌 날리기의 명수 배돌석이는 왜란 때 남도에서 활의 명수 이봉학이와 겨루기를 해본 경험이 있고, 이봉학이는 임꺽정과 어릴 적 친구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이봉학이 도우러 왜란 참전 용사에 이름 올린 임꺽정이도 그때 스치듯 배돌석이를 만났던 사이다. 

배돌석이가 어찌어찌 흘러 봉산 인근으로 와서 거처하던 중 호랑이 사냥하다 황천왕동이와 만나 서로 친해지게 되고, 그러던 와중에 살인사건 연루된 배돌석이를 빼돌려서 황천왕동이는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된다. 때마침 제주 와서 벼슬하던 이봉학이가 전국 순회 관람 중이던 임꺽정에 이야기를 듣고 황천왕동이를 구명해주니 우연치고 이렇게 엮어 쓰기도 힘들 정도로 복잡한 관계설정이라 할만하다. 


이외에도 소설 임꺽정은 셀 수 없이 많은 매력이 넘쳐난다. 흔히 말하는 클라이막스가 없다. 긴장을 유도하되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는 소설을 더욱 맛깔스럽게 한다. 

또한 소설 임꺽정에서는 말 그대로 한라에서 백두까지 전국이 무대가 되어 등장한다. 그리고 서두에 언급된 언어의 마술을 빼놓을 수 없다. 여러분도 임꺽정 한번 읽으세요, 재밌으세요.


임꺽정에 무리는 의적이다? 역사적 사실관계를 제쳐두고 소설 속 임꺽정은 확실하게 의적은 아니다. 의적의 기준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의로워 보이는 모습은 많이 눈에 띠지 않는다. 너무 쉽게 사람을 해하고 무고한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니 이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벽초 선생님과 내가 다른 시대에 존재했지만, 세대를 아울러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전달해 주는 힘이 소설 임꺽정에는 있는 것이다. 내가 감히 말하건대 중국에 삼국지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바로 ‘임꺽정’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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