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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더하기 Jan 20. 2019

추적추적 내리는 을씨년스런 시대상

현진건 작품

내게 고등학생 시절 근대소설을 읽던 일은 일상과도 같았다. 

나는 일제 강점기에 나온 여러 단편소설과 시를 읽으며 나름대로 이 시대를 관통한 작가 분들과 작품을 너무나도 좋아했다. 단일 작품으로는 ‘메밀꽃 필 무렵’과 ‘날개’를 그리고 작가로는 현진건을 특히 좋아했는데, 당시에 사실주의 작가의 대표였던 현진건의 대표작 중에서 ‘운수 좋은 날’ ‘빈처’ 그리고 ‘B사감과 러브레터’를 함께 공감해 보고자 한다.


먼저 '운수 좋은 날'이다. 이분의 작품을 한 단어로 표현해 보면 ‘애처로움’이 아닐까 싶다. 왠지 모르게 우울하고 꿉꿉한 느낌을 떨쳐낼 수 없다. 이런 기분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작품이 ‘운수 좋은 날’이다.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곱씹어 읽어보면 참으로 질퍽질퍽한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가난한 인력거꾼 김첨지의 고단한 일상이 얼마나 애처로운지를 알 수 있다. 추적되는 비가 와도 일을 해야 하는 김첨지의 행동과 비가 와서 손님이 많아 다행이라는 김첨지의 말은 역설적으로 묘하게 교차되어 전해진다. 이러한 역설적 상황에 대한 전개가 이 소설의 전체 흐름이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비 오는 날의 인력거꾼 김첨지의 하루 일과를 보는 것이 전부이다. 일을 하고, 여느 때와 다르게 많은 돈을 벌고, 귀가 전에 거나하게 취하고, 귀가 후 이기지 못할 아픔을 감내하는, 고단한 김첨지의 일과를 표현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서로 상반된 상황과 묘한 암시를 통해 전개된다.

비참한 시대에 비참한 인간상을 그려낸 이 작품은, 적당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흥청망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한 번쯤은 반성하고 돌아보아야 할 작품일 것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 미지근하게 봉지에 담긴 설렁탕을 기꺼이 사들고 갈 기쁨과 집 앞에 동산을 오르면서도 초호와 등산장비와 등산복을 입고 가는 현재 우리네 모습이 진정 묘하게 교차된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나라님도 해결 못하는 가난은 우리가 끌고 가야 하는 김첨지의 인력거와 같은 것이 아닐까?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이것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비극적인 시대가 있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자꾸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이 분 작품 중 최고의 작품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생과 사의 대립을 통한 밑바닥 삶을 보여 주었다면, 소설 ‘빈처’에서는 부와 빈에 대립을 통해 능력 없는 지식인의 삶을 보여준다. 

가난한 작가 지망생 그리고 묵묵히 그를 따르고 내조하는 가난한 여인에 삶, 반대로 물질적인 만족함이 있어도 폭력을 감내하는 여인의 처지에서 이 당시 무능력한 지식인들과 결혼한 여성에 위치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소설은 담담하고 차분하게 흘러간다. 초반부에 가난한 자신들의 처지를 각자의 입장에서 원망스레 이야기하고, 처가의 장인 생신을 기점으로 가난과 풍요의 미묘한 복선이 스치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물질적 만족이 모든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매우 계몽적이고 초등학교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보여준다. 

시대는 암울하고 비참한데 역설적이게도 문학적 위치는 르네상스라 불리기에 모자랄 것이 없어 보이는 세월이다. 이런 시대를 대변하듯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작가로 자칭하며 가난과 씨름했을까?

읽다 보면 중반부에 처형이 돈을 크게 번 대목이 나온다. 이때 기미(期米)라는 단어를 보게 되는데 다른 말로 미두(米豆)라고도 한다. 현물 없이 곡물을 거래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물 없이 거래하다 보니 도박에 성격이 강하고 후에 퇴락하여 변질된 모습으로 사회에 큰 파장을 낳게 되는데, 너무 방대하고 긴 이야깃거리가 되므로 이것에 대한 연구 자료 등을 통해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참고로 소설 토지에서 최참판댁을 날로 삼킨 조준구가 미두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이 잠깐 나온다.

‘빈처’를 읽으며 난 항상 이 말을 되새긴다. 

‘미래는 준비한 자에게 결과를 선물하지만, 꿈만 꾸는 자에게는 현실을 제공할 뿐이다.’ 

항상 자신에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안주하지 말아야 하며, 더 나은 미래를 열기 위해 매사 정진하고 끊임없는 변화에 두려워하지 말고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처녀는 손으로 고인 때 모르는 눈물을 씻었다.’ 

'B사감과 러브레터’의 이 마지막 문장은 소설 속 B사감에 애처로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명문장이다. 

지금 이 글을 보며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B사감 여사의 생김새는, 맞다 지금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우리가 사감 선생님 하면 떠오르는 그 모습 그대로다. 그네의 얼굴을 표현하는 한 마디는 ‘그 굴비 쪽 같은 얼굴’이다. 

‘B사감과 러브레터’는 이전 두 소설과는 조금은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인간 내면의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에서는 어느 정도 일치되는 부분이 존재하지만, 이전 두 작품처럼 우울한 분위기로 흐르지는 않는다. 특히 소설의 전체적인 줄거리로서 인간 내면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부분은 압권이다.

소설은 특유의 까탈스러움으로 기숙생의 러브레터까지 하나하나 간섭하는 B사감과 어느 순간부터 검열해 오던 러브레터를 보며 1인극을 벌이는 B사감의 심성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된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알 수 없는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B사감 혼자의 1인극으로 밝혀지는 과정이 스릴러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게 되는데, 지금처럼 웬만한 자극에도 끄떡없는 우리로서는 이해가 안 되겠지만 당시에 시대상황과 순박함을 감안하면 충분히 섬뜩한 묘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왠지 영화 사이코에 남자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B사감과 러브레터’는 스릴러 문학의 시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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