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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더하기 Apr 07. 2019

시대를 초월한 표랑객

소설 손자병법 - 정비석

가끔 서점에 들러 신간을 확인할 때 항상 보게 되는 책이 동양 철학서 일지 모른다. 의외일지 모르는 일이지만 이렇게 많은 동양 철학서를 읽는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혹시 공구 선생을 아시나요? 중니가 어느 나라 분인지..?‘ 

'뭐냐 나를 무시하냐 이런 시답지 않은 놈' 

이런 분 계시겠지만 내 옆에서 박재희 님의 '삼분고전' 읽고 있는 이 친구도 모른다. 

'아니 뭐 내가 그 속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 느끼면 됐지 뭐 저 사람이 누군지 그런 속사정까지 알아야 되나?' 

물론 몰라도 된다. 근데 알면 더 좋다. 이유는 그 책이 왜 쓰여졌는지 그 시대 배경이 어떤지 작자가 어떤 생각으로 이 책을 엮었는지 등의 의미를 파악한다면 그 느낌이 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볼 때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동양 철학서는 내용 풀이가 주를 이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흥미롭게 잘 구성한들 철학서는 철학서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처음의 흥미로움이 끝까지 유지되어 책장을 넘기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계속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기승전결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 아주 친절하게 이야기로 승화시켜 소설로 표현된 멋진 철학서가 있으니 바로 정비석 선생님의 손자병법이다. 더하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손꼽히는 공자님까지 우정 출연해 주시니 이 책 하나로 여러 가지를 두루 섭렵할 수 있다.


시대상 어쩌니 이야기한 부분이 있으니 여기서 잠깐 손자병법이 창간된 그때의 상황을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때는 바야흐로 기원전 BC8세기에서 BC3세기에 이르는 고대 중국의 급변시대의 이야기다. (아이러니 한 부분은 BC(before Christ), 즉 예수님 탄생 이전의 이야기라는 말인데, 언제부터 우리는 동양의 시대적 잣대도 서양의 그것을 쫓아야만 했던 것일까?) 위대하신 공자님 이때를 관통하셨다. 공자님이 이 시대를 아울러 자신에 책이름을 춘추(春秋)로 명명하시니 이때가 춘추시대라 불려진다. 

BC5세기 이후 중국 고대 국가들이 저마다 자웅을 겨루며 패권을 심하게 다투니 이 시대를 아울러 전쟁이 많다 하여 전국시대(戰國時代)라 부르는 것이다. 

하나 더 참고적으로 말하면 이러한 혼란의 전국시대를 평정해 버린 분이 계시니 이름 하사 진의 시황제, 즉 진시황(秦始皇) 되시겠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는 이 시기를 가리키는 명칭이 된 것이다. 

하나 더 참고로 우리가 공자님의 가르침을 익힐 때 주로 읽는 책이 논어이다. 공자와 제자들 간의 대화를 멋지게 엮어낸 이 책은 사실 공자가 서술한 책은 아니다. 논어가 어떻게 쓰여지고 구성된 것인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 두겠다. 지금은 논어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전국시대에 얘기를 좀 더 해보자. 손자병법, 말 그대로 병법을 다루고 있으니 전국시대에 작성되었을 것이라 예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실제 손자병법은 춘추시대에 작성되었다고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손자병법에 작성 시기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그중에서도 오나라와 월나라에 피 튀기는 복수전에 대해 언급해 보기로 한다. 

오와 월의 전쟁은 본 책 3권의 주된 스토리이다. 복수는 복수를 부른 다는 말이 있다. 이 두 나라의 20여 년의 걸친 복수혈전은 많은 일화와 고어를 남기게 된다.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와신상담(臥薪嘗膽), 때를 기다려 복수를 하고 말겠다는 아주 무시무시한 말로 우리가 현세에도 흔히 무엇인가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하나다.

오나라 왕 합려가 월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죽음에 이르게 되자 그의 아들 부차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게 된다. 

‘꼭 힘을 아끼고 길러 나의 복수를 해주어라’ 

오왕 합려가 죽자 부차는 왕이 되고 복수를 다짐한다. 이때 부차는 복수를 다짐하며 섶 단위에 누워 잠을 청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된다. 와신(臥薪), 즉 누울 와(臥)에 섶신(薪) 자로 섶위에 누워 복수를 기다린다는 말이다. 

오왕 부차는 병법의 대가 손무와 천하명장 오자서를 좌청룡 우백호로 삼아 회계산 전투의 큰 승리로 월나라에 보기 좋게 복수에 성공하게 된다. 

이렇게 되니 월나라 왕인 구천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구천 역시 대들보에 곰쓸개를 매달아 드나들 때마다 그것을 빨아 삼키며 이렇게 외친다. 

'구천아 너는 저 회계산에서의 굴욕을 잊었느냐?' 

상담(嘗膽), 즉 맛볼 상(嘗) 쓸개 담(膽) 자로 쓸개를 빨며 복수를 다짐한다는 뜻이다. 

이리하여 월나라 구천 역시 부차에게 보기 좋게 복수하고 오나라를 멸망시키기에 이른다. 장장 17년간을 기다려 복수에 성공한 셈이다. 

이때 월나라가 오나라를 복수하기 위해 꺼내 든 비장의 카드가 바로 중국 미인계의 자존심 경국지색 서시(西施)다. 이 서시가 얼마나 이쁜지 눈썹을 찡그린 그 모습까지 아름다워 주변 여자들이 그걸 보고 무조건 눈썹을 찡그렸다고 한다. 그 미모가 어땠는지 알만하다. 

그래서 또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서시빈목(西施?目)이다. 즉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흉내 냄을 비꼬는 말이다. 

또한 월왕 구천은 오나라에 복수를 위해 장장 17년을 거짓으로 오나라의 충신 노릇을 하며 한마음 한뜻으로 나아가니 이를 두고 오월동주(吳越同舟), 오나라와 월나라는 같을 동(同), 범선 주(舟) 같은 배를 타고 간다는 것이다. 즉 원수 사이라 하더라도 필요에 따라 협력이 중요할 때도 있다는 의미다. 

어떤가? 실제로 복수는 복수를 부르지 않는가? 무시무시한 복수혈전이다.


손자병법은 손무(孫武)가 작성하고 오나라 왕 부차에게 바친 오손자병법과 제(濟)나라의 승상을 지낸 손빈(?)이 작성한 제손자병법(손빈병법)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손자병법은 오손자병법을 말한다. 

여기서 잠깐 성이 같은 이 두 분의 관계는 언급할 필요가 있다. 지금 소개하는 정비석 선생님의 소설 손자병법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할아버지와 손자로 소개한다. 즉 손자병법은 3대에 걸쳐 손 씨 분들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손무와 손빈의 시대적 차이와 그 활동 연대 그리고 출토된 유적 등을 고려하여 별개의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이 대세이다. 

그러면 왜 손무병법이 아닌 손자병법이라 책이름이 명명되었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우리는 성씨 뒤에 붙는 자(子)자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 그러고 보니 공자(孔子), 맹자(孟子), 순자(荀子), 손자(孫子). 뭐 이 분들 전부 이름이 자이다. 영희, 철수처럼 뭐 이 시대 트렌드인 건가? 트렌드라면 하나의 트렌드 일수 있겠다. 

보통 성씨 뒤에 붙는 子자는 중국에서 대학자들을 높여 이르는 호칭으로 그 시대에 큰 공적을 이루었거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분들에게 붙이는 매우 영광스러운 것이다. 

자 그러면 위에 던진 공구가 어느 분을 의미하는지 이제 그 해답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병법 중에 최고의 것은 손자병법이 된 것이다.


한 가지 더 집고 넣어갈 부분이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36계(計) 줄행랑이란 말이 있다. 즉 36가지 계략 중에서 마지막 계로 도망가는 것도 상책이라는 말이다. 정확한 명칭은 주위상(走爲上)으로 여의치 않으면 피하라는 뜻이다. 

갑자기 36계에 대한 이야기를 왜 끄집어냈을까? 우리가 흔히 손자병법 36계로 불리는 이러한 36가지의 계는 사실 손자병법과는 엄밀히 말하면 별 상관이 없다. 병법 36계는 손자병법 이후에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따로 펴낸 작자미상의 별개의 책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이후부터는 혼돈하여 쓰지 말자.

손자병법의 구성은 시계(始計)편을 시작으로 작전(作戰), 모공(謀攻), 군형(軍形), 병세(兵勢), 허실(虛實), 군쟁(軍爭), 구변(九變), 행군(行軍), 지형(地形), 구지(九地), 화공(火攻), 용간(用間) 이렇게 총 1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 손자병법에서는 3권까지가 소설이고 4편은 위에 열거된 각 편의 해설과 그에 해당하는 소설 속의 인용 부분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고 있다.     

손자병법이 위대한 것은 아시는 봐와 같이 비단 전쟁에서만 그것이 통용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아서 이다. 인간 처세술의 최고의 지침서로서 그 위용이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일찍이 나폴레옹도 이 책을 곁에 두고 틈만 나면 보았다고 한다. 또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도 세계 1차 대전 패배 후 손자병법을 읽고 '20년 전에 이 책을 접했다면'하고 땅을 치고 후회했다고 한다. 

이렇듯 손자병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생의 지침서로서 한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그것도 두루두루 사랑을 받으며 말이다. 나 역시도 손자병법을 내 처세술의 기본으로 삼고자 틈이 나는 대로 읽고 또 읽는다. 

우리네 직장생활에서도 이 책은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나 역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인력관리에 핵심 가치로 삼고 있는 부분에 자주 손자병법을 인용하고 참고한다. 그중 가장 많이 참고하는 부분이 무릇 훌륭한 장수는 부하 장병(將兵)에게 정확한 명령을 주고 움직이게 한다는 부분이다. 

이것은 내가 움직이는 것보다 나를 도와 함께 나아가는 팀원들이 얼마나 내 뜻을 이해하고 따라 주느냐의 문제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 앞으로 전진을 강요하며(不知三軍之不可以進而謂之進), 후퇴할 수 없는 상황에 후퇴를 종용하고(不知三軍之不可以退而謂之退) 마지막으로 처해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명령을 남발하는 경우(不知三軍之權而三軍之任)를 삼가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마지막으로 손자병법의 13편 모두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소설 손자병법에 소개되는 인상 깊은 한 부분을 각색하여 소개하고 마무리할까 한다.

희대의 병법가 손무의 손자 손빈이 절친한 친구 방연에게 꼬임을 당하고 목숨만을 부지하여 부활을 위해 숨죽여 지낸 때이다. 자신에 고향인 제나라에서 대장군 전기(田忌)를 도와 힘을 기르고 있었다. 

하루는 전기장군이 손빈을 찾아와 이와 같은 어려움을 토로하게 된다. 

‘내가 경마 시합을 하면 항상 상대에게 패배를 하고 마네, 경마가 3번에 걸쳐 이뤄지는데 잘해야 1승뿐이네. 뭐 좋은 방법이 없겠는가?’ 

그러자 손빈이 다음과 같이 고한다. "대장군! 앞으로 제가 드린 충언대로 경마에 임해보도록 하시지요. 

‘상대가 최고의 말을 골라 경기에 임하면 장군께서는 하급의 말로 그를 상대하고, 그가 중급의 말로 경기에 임하면 장군께서는 최고의 말로, 상대가 하급의 말로 임하면 장군께서는 중급의 말로서 경마를 이끌어 가시면 됩니다.’ 

이에 전기 장군은 다음번 경마부터 손빈의 충언을 따라 경마에 임하니 매번 2대 1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두 가지를 말할 수 있겠다. 먼저 상대를 보아가며 대응을 적절하게 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에이스(ACE)를 제시하는 타이밍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모든 경쟁을 승리로 이끌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최후의 승자인 것이다. 백전백승이 최선은 아니다.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과연 우리는 적절한 타이밍에 상대를 대하고 있는짖 생각해 보게 한다.

그래서 나는 여러 가지를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자 한다. 인자(仁者)는 때(時)를 기다리지 않고, 지자(智者)는 그때를 알고, 용자(勇者)는 그때를 놓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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