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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더하기 May 06. 2020

표현의 마술사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박완서

어느 독후감을 쓰던 모든 작가 분들에 대한 죄송스런 마음은 동일하다. 한마디로 '감히'라는 말을 하고 싶다. 하물며 박완서 선생님에 대해 언급 하는 것 자체가 무례함이라 느껴지는 감정을 어찌할 수 없다. 어찌 감히 가타부타 말하리오. 이런 연유로 내 스스로에게 다짐을 받듯 경거망동을 하지 말라고 되새기며 글을 시작한다. 

어떤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이 짧으면 짧은 데로 길면 긴대로 흐름에 막힘이 없는 유연성. 문체의 유연성을 박완서 선생님을 소개하는 표현으로 꼽겠다. 이분의 문장은 정말 절묘하다. 독특한 단어를 사용하거나 꾀나 난해한 표현을 하셔도 독자의 감성에 전혀 흔들림을 주지 않는 묘한 매력을 지니셨다. 그래서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은 그날 책을 들고 나오면 퇴근할 때 마무리 된다.

박완서 선생님의 경력은 너무나 화려하다. 한국문학작가상(1980년), 이상문학상(1981년), 대한민국문학상(1990년), 이산문학상(1991년), 대산문학상(1997년), 만해문학상(1999년), 황순원문학상(2001년) 등 대한민국 대표 문학상은 두루 섭렵하셨다. 비단 이런 화려한 수상경력만으로 이분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말 그대로 심금을 울리는 박완서 선생님의 글 솜씨와 필력을 한없이 존경해 마지않는다.


지금 서점에 들러 인기작가 분야에 가서 박완서 선생님 코너를 돌아보자. 우리가 어릴적 세계문학 전집을 소장하는 꿈을 가졌던 것처럼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이 전집으로 화려하게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박완서 선생님은 다작(多作)을 하셨다. 하지만 단 한편도 놓칠 수 없을 만큼 짜임새가 탄탄하다. 이 많은 작품들 중에 한권 뽑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는 지금 이 글을 보는 독자들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단 한권의 책으로 박완서 선생님을 표현한다는 건 무리다. 

지금 소개하는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물론이요 기회가 된다면 박완서 선생님의 대표작은 검색해서 몇 권 더 읽어보길 권한다. 


내가 본 소설을 정한 이유는 몇 가지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선생님 본인의 어릴적 생활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계신다는 점에서다. 작자의 살아온 환경과 성장 배경 등을 이해한다는 건 독자들에게 여간한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나의 경우는 글을 통한 사상적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자전적 소설이라기보다는 픽션이 가미되지 않은 작가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아우르는 자서전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또 하나는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겠지만, 소설속의 시대적 상황이 주인공의 눈을 통해서 사실 그대로 전달되는 점이다. 특히나 일제 강점기에 학교생활, 해방 후 가족 간의 이념적 갈등 그리고 전쟁, 격동의 시기를 겪는 가부장적 사회상 등을 소탈하게 느낄 수 있다. 


자 이제 온화한 미소를 내게 보내주시는 이웃집 할머니 박완서 선생님의 아름다운 언어의 마술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소설의 시작은 현재의 나에게서 과거를 회상하는 나에게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시작된다. 이 소설은 작가 본인의 기억을 더듬어 꾸려진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책을 많이 접한 분들이라면 처음 몇 장을 넘겨보고 이문구 선생님의 연작소설 '관촌수필'이 어렴풋이 겹쳐 지나가게 될 것이다. 두 분의 형식이나 표현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과거를 끄집어내는 필력은 아련한 시골 풍경을 전달함에 부족함이 없다. 

지리적 배경은 송도와 서울이다. 주인공이 유야기를 보내고 해방을 맞이하는 시골 풍경과 공부를 위해 상경한 서울의 낯선 풍경이 교차하며 시간에 흐름을 따라 소개된다. 

시골 풍경은 송도 언저리 채 20채가 안 되는 고즈넉한 시골을 배경으로 한다. 정확하게 개풍군 청교면 묵송리 박적골이 그 동네이다. 

주인공이 소개한 이곳에 풍경은 뙤약볕 내려쬐는 한여름에 실개천이 합쳐져서 냇물이 되는 동구밖으로 저만치 앞벌에서 소나기가 군대처럼 쳐들어오고, 저녁노을이 유난히 붉고 선명하여 홍시 빛깔의 잔광이 능선을 타고 넘는 아름다운 곳이다. 군대처럼 쳐들어오는 소나기 그 표현 또한 놀랍지만 이런 소나기를 '폭발적인 환희'라 표현하는 박완서 선생님의 표현력은 존경만으로도 부족함이 따른다. 

주인공은 이런 아름다운 풍경에서 풀로 각시를 만들어 쪽 지어 시집보내고, 게딱지로 솥을 걸고, 솔잎으로 국수 말고, 새금풀로 김치를 담그며 소꿉놀이를 하였다. 장난감 수백 수천 개를 사줘도 입에서 '심심해' 소리를 연발하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공감할 수 없는 고귀한 놀잇감이다. 


우리가 흔히 화장실이라 부르는 그 당시 뒷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아직 독력(讀力)이 부족한 나에게는 뒷간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멋들어지게 표현한 글을 접한 적이 없다. 

그곳 박적골에 내려오는 뒷간 이야기는 대부분 도깨비 얘기였다고 한다. 그것도 매우 못나고 유쾌한 도깨비 이야기. 그리고 이 고장의 뒷간은 몰래 숨어 팥죽을 먹어도 좋을 만큼 청결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웃지 못 할 이야기도 하나 들려주신다. 

동짓날 팥죽을 맛있게 쑨 며느리가 한 그릇으로는 감질 맛나서 식구 몰래 뒷간으로 한 그릇 더 들고 갔더란다. 근데 며느리보다 앞서서 시아버지가 그곳에서 팥죽을 몰래 드시고 있는 게 아닌가. 며느리가 들이닥치니 그 시아버지 먹던 팥죽을 머리에 덮어씌우고 말았다. 이에 놀란 며느리가 임기응변으로 "아버님 팥죽 한 그릇 더 드세요." 했더니 그 시아버지 하는 말씀이 "얘야 내가 팥죽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이렇게 안 먹어도 팥죽 땀이 흐르는 구나." 

나는 이 이야기를 보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해학적인 것도 그렇지만 우리가 더럽고 불결하게만 생각했던 뒷간에 대한 상상이 이렇게 멋들어지게 표현 될 수 있을까?      

무당굿과 관련하여 장면을 묘사한 소설은 꽤나 많다. 어찌 보면 해방 이전의 시기를 다루는 소설 속에서는 대부분 이러한 장면이 그려졌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내가 꼽은 장면은 최명희 선생님의 대하소설 '혼불'에 묘사된 모습과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소희의 굿이 인상 깊다. 그리고 본 소설에 소개되는 무당굿의 장면 또한 색다른 표현으로 새롭게 머릿속에 각인되어 왔다. 

주인공이 서울로 공부하러 와서 인왕산의 굿 구경을 하며 고향의 굿판에 대한 향수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장군의 복색에 벙거지까지 쓴 무당이 버선을 벗는다. 무당의 작고 흰 발바닥이 작두를 탄다. 나비처럼 자유롭고 무게 없이, 평행으로 선 작두날 위를 훨훨 난다. 그 순간 풍악 소리도 자지러져 마침내 정적의 경지에 이르고 무당의 몸도 소멸하여 흰 나비 두 마리만 남는다. 내 생애를 통틀어 유일한 신비체험이었다. 이론으로는 설명할 길 없는 입신(入神)의 경지였다.'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멋들어진 묘사가 아닐 수 없다. 머릿속에 굿판이 그려지고 작두탄 무당의 뒤집힌 눈자위가 보이는 듯하다.


본 소설에서 그려지는 전쟁의 잔상은 또 다른 감성을 자극한다. 

주인공을 통해 비쳐지는 전쟁의 참혹함이라는 관점은 여느 소설이나 산문과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주인공의 심리변화는 물론 주변의 변화를 마치 일정한 규칙과 정해진 공간 내에서의 움직임으로 표현한 것은 거의 압도적인 모습이다. 음악으로 표현하자면 음의 고저가 없이 평온하게 흐르는 음율과 같다. 

글을 읽고 생각하면 매우 비참하고, 참담하고, 서글프고, 괴로운 이야기 이지만 절대 동요하거나 감성을 자극하는 문구는 없다. 너무나 평이하게 전개되어 고개를 갸우뚱 하는 순간도 발생한다. 

주인공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변화는 물론, 오빠의 정신적 분열, 이념의 갈등으로 인해 발생되는 가족의 참혹상 등등 전쟁을 관통하는 20세 여인에 감성에서 잔잔하게 전달된다. 그래서 나는 더욱 무섭고 두렵게 1950년 6월 25일 이후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주인공의 눈에 비친 어머님의 모습은 여과 없이 투명하다. 

격동의 시대를 함께하는 딸과 어머니의 관계. 그 속에서 이 시대의 딸들이 생각하는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어머님은 위대한 삶의 조력자 이지만 그 이전에 그녀도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글로서 표현되는 어머님은 가식적인 모습이 많다. 그건 비단 여인으로서의 아름다움과 모성애만으로 표현되어진 포장된 모습일 것이며, 그것은 작으나마 우리네 어머님들의 감사함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하지만 본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비쳐지는 어머님은 시대를 살아가시는 진실된 우리네 어머니 그 자체이다.      


누군가 내게 통일이 되어 가장 먼저 어디를 가겠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대답할 첫 번째 목적지로 고려의 고도(古都) 송도를 꼽을 것이다. 

그리고 송악산 정상을 밟아보고 싶다. 박연폭포, 황진이, 포은, 성균관, 송악산, 청석골, 만월대, 최영, 서경덕, 임꺽정 ... 그리고 박완서. 그곳에 가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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