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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더하기 Jul 14. 2020

비인부전(非人不傳)

소설 동의보감 - 이은성

누가 뭐라해도 소설이 갖추어야 하는 나만의 절대 기준은 재미다. 소설이 교과서처럼 딱딱하고 재미없다면 그건 소설이라 하기 힘들다. 이는 곧 글을 쉽게 써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글을 재미있게 풀어가는 능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소설이 존재할까? 매일 얼마의 소설이 새롭게 등장하고 나는 얼마나 그 많은 소설들과 접하고 있을까? 내가 접한 소설의 양은 아마도 강가에 모래알만큼의 양도 안 될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이 소설은 재미있고 저 소설은 재미없고 말하기란 너무 편협한 사고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내가 읽은 소설들이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지만 보편적 기준으로는 문안할 것으로 생각된다. 


나만의 관점으로 벽초 홍명희 선생님의 '임꺽정'은 현존 최고의 재미난 소설이다.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바로 이 책 소설 동의보감은 특유의 속도감을 통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명작소설이다. 흔히들 말하는 다음 장면이 궁금해 한자리에서 다 읽어 버려야 하는 그런 책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의 최대 매력은 속도감이다. 빠른 전개와 글로 표현 될 수 있는 최고의 긴장감 그리고 흐름에서 벗어 날 수 없게 만드는 구속감까지 속도감을 위한 소설로는 과히 최고라 평하고 싶다. 

가끔 주변인들로부터 책을 추천요구 받을 때 그리고 책을 많이 접하지 않아 책만 보면 이산가족 상봉하듯 눈꺼풀이 붙는 다는 분들에게 내가 부담 없이 소개하는 작가와 작품이 있다. 이런 분들에게는 소설이라 하면 속도감만큼 최상의 선택은 없다. 

작가로는 김진명 선생님을 그리고 작품으로는 단연코 소설 동의보감을 추천한다. 어떤 비유가 이 소설의 속도감을 표현하는데 적절한 것인가? 터질듯한 굉음,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곡선을 도는 유연한 핸들링, 극한의 스피드로 질주하는 직선주로, 그렇다 자동차 경주에 비유하자면 F1 수준일 것이다.     


책은 동양 의학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신 구암 허준 선생님의 성공 스토리를 이야기 한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러하다. 자신의 신분을 모두 알고 있는 용천을 떠나 신분을 잊고 새롭게 출발할 목적지로 산음으로 드는 과정, 산음에서의 정착과 의원 유의태의 문하생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 의원이 되어가는 과정에서의 번민과 고뇌 그리고 방황, 진정한 의원이 되어 그에 의술을 펼치는 과정 등이다. 

'어 이거 읽다보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기도 하고 통속적 성공 스토리 인거 같기도 하고' 이런 생각들 하고 있을 것이다. 이 내용을 일반적인 이야깃거리로 바꿔 말해보자. 

비천한 자신의 신분으로 인해 하루하루 억눌린 응어리를 갖고 사는 주인공이 있다. 주인공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새롭게 시작 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나고 그곳에서 운명적인 스승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괴팍한 성격과 빈틈을 허용치 않는 스승은 주인공에게 일말의 흐트러짐도 허용치 않으며 매우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그를 단련시키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스승을 배신하고 방황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방황은 오래지 못하고 스승과 인연이 두터운 또 다른 실력자를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고 스승의 희생을 통해 신기의 기술을 전수 받게 된다. 

주인공은 자신이 쌓은 기술을 약자를 위해 봉사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의 굽힘 없는 지조와 세상을 놀라게 하는 기술은 천하에 알려지게 되고, 그는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위에 작성된 글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단순한 구조의 뻔한 성공 스토리이다. 소설 동의보감 역시 위에 스토리에서 하나도 벗어나 있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왜 소설 동의보감은 뻔한 스토리 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뽑은 명작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기본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기본에 충실한 것이다. 이렇듯 뻔한 이야기로 이렇게나 멋진 글을 뽑을 줄 아는 것만큼 훌륭한 글 실력은 없어 보인다.  

   

소설속의 시대적 배경은 내가 너무도 관심이 많은 군주 광해군 직전의 선조 때이다. 

허준의 태생은 서자도 될 수 없는 천출이다. 이쯤에서 생각해 보면 선조와 광해 그리고 인조를 지나가는 이 시기가 서자니 적자니 하는 양반 내 계급적 갈등이 최고조를 이룬 시기가 아닐까 의구심이 인다. 

역사적 사실 관계가 정확히 어떨는지는 게으른 습성으로 인해 모두 파악되지 않았지만, 유독 이때의 신분상의 불합리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할 수 없는 그 분도 이때 탄생 하였으니 말이다.

여기서 잠깐 서자와 관련된 소설을 곁다리로 소개해 볼까 한다. 정종명 선생님의 '신국'이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 역시 광해군 말에서 인조반정까지의 상황을 그린다. 

전체적인 이야기가 서자와 관련된 내용이 핵심적 부분은 아니지만 하나의 줄기로서의 작용은 한다. 특히나 교산 허균을 둘러싼 그 주변 세력에 대한 이야기와 인조반정의 촉매가 되었던 명문가내 일곱 명의 서자가 일으킨 '은상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된다. 

교산 혀균, 관송 이이첨, 상궁 개시등 광해군 시절 세상을 주름 잡던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소설 '신국'은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비인부전(非人不傳). 말 그대로 해석하면 인간이 아니면 전수해줄게 없다는 뜻이다. 스승 유의태가 한말로 명의 허준이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담은 말이다. 언제나 겸손한 자세를 가지라는 교훈으로 생각하면 쉽다. 겸손만한 미덕이 없다는 말이 세삼 차오른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고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좋은 사자성어다. 나는 교만하지 않은지, 자가당착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 분들이 한번쯤 세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진심으로.

소설 동의보감 역시 아쉽게도 마무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책이다. 한편으로 아쉽기는 하지만 그 뒷이야기를 마음껏 상상 할 수 있다는 기쁨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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