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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더하기 Apr 10. 2021

감수성

“팀장님!! 요즘 권태기 아니세요?”


요즘 주변에서 ‘권태기, 권태기’ 하길래 구글에서 ‘권태기(倦怠期)’를 검색해봤다.

특별히 사전적 정의가 없다.

그래서 ‘기’자를 빼고 ‘권태’를 검색해 보니 그 정의가 많다.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


“그럼 지금의 내 상황은?”


권태기는 아니다.

특별히 싫은 것도 없을뿐더러 게으른 생활 자체를 내가 용납하지 않는다.

그냥 감수성이 풍부해졌다.

비유하자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눈물이 난다.


3년이라고 하더니 정확히 10개월 하고 12일만에 다시 복귀했다.

내가 비운 그 자리에 새로운 팀장이 오지 않았고 전략실장이 직접 관리하며 부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복귀 후, 내가 근무하는 부서의 명칭은 ‘정보전략 실’이 됐다.

‘경영전략 실’ ‘정보분석 팀’에서 독립해 독거인의 직속부서로 거듭났다.

명칭은 실이지만 내 직급은 실장이 아니다.

그냥 팀장이다.

팀원 그대로 직책 그대로다.

복귀해서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홍콩에서 복귀했다.

그런데 나는 홍콩이 싫다.

그 특유의 끈적거림이 싫다.

홍콩의 기운 자체가 내게는 끈적거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홍콩 생각이 많이 난다.


홍콩 이야기만 나오면 나의 감수성이 폭발을 한다.

영웅본색(英雄本色) 때문이다.

첨밀밀(甛蜜蜜) 때문이다.

화양연화(花樣年華) 때문이다.


장국영이 부른 영웅본색의 주제가 ‘당년정(當年情)은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다.

특히 클래식 키타 선율로 듣는 당년정은 정말 나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라이브의 묘미다.

홍콩 특유의 기름 찌든 바람이 부는 것 같다.

아마도 나의 감수성은 영웅본색으로 인해 완성되고 정립되었을 지 모른다.

그만큼 내게 많은 영향을 준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만화 같은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볼 때마다 재미난다.


수없이 많은 영화에서 키스신이 나온다.

남녀 주인공의 달콤한 키스신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세상에서 나보다 키스를 잘하는 남자가 있다면 떠나도 좋다.’던 ‘렛 버틀러’의 불타는 타라농장에서의 키스신.


야구심판과 유명 여배우의 마운드 위에서 나누던 ‘해가 서쪽에서 뜰’만한 키스신.


모두 내게는 두근두근한 장면이다.

그리고 이 장면.

첨밀밀의 장만옥과 여명의 자동차 경적(Klaxon) 키스신이다.


경적 소리에 반응하던 여명의 발걸음.

후회 섞인 장만옥의 당황한 표정.

뒤돌아 그녀를 향해 다가가는 여명의 또 다른 발걸음.

다가오는 그를 바라보는 백 미러(Back mirror)속 장만옥의 설렘 가득한 또 다른 표정.

다가갈 듯 조심스러웠던 두 사람의 입술.

최고의 키스신이다.


역시 장만옥은 최고의 홍콩배우다.

누가 그러냐구?

내가 인정한다.

그녀의 또 다른 영화 화양연화는 꽤나 어려운 영화다.

20대에 처음 보고 지루하기 그지없었던 그 영화가 다시보면 30대에 다르고 40대에 다르다.

영화 전반에 걸쳐 흐르는 색채가 매혹적이다.

특히 장만옥이 영화속에 입고 등장하는 모든 옷 태와 색감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그 감성을 느끼고자 화양연화로 유명해진 홍콩의 그 식당을 찾아 그 메뉴를 먹지만, 내게는 전혀 그런 분위기가 연출되지 않는다.


감수성이 폭발하는 요즘이다.

그리고 그 감수성에 기름을 붙는 건 역시 80, 90년대 홍콩영화다.

내 나이 또래의 대부분이 가지는 홍콩스런 감수성.

찌든 생활에 달달한 감수성은 비타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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