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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더하기 Jun 19. 2019

글로 표현된 가장 아름다운 밤길

메밀꽃 필 무렵 - 이효석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초 단편 미니 소설이다. 그러나 그 파장은 대하소설과 비견될 만큼 크게 번진다.

모든 책에 대해 독서 후기를 쓴다는 건 매우 부담스럽고 부족한 마음을 갖게 하지만, 메밀꽃 필 무렵처럼 엄청난 부담을 주는 독서 후기도 드물다. 그만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방문하는 경주처럼 이 책은 독서 후기의 필수 코스처럼 느껴진다.

국문학자 김형중 선생님은 이 소설을 두고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우리 문학사 상 가장 아름다운 밤길'이라고. 그렇다 봉평에서 대화까지의 칠십리 그 밤길은 글로 표현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밤길인 것이다. 그 아름다운 밤길을 함께 걸어보자.

- 보름이 갓 지난달은 부드러운 빛을 흔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리 밤길......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루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

동파 소식의 매화성개 중 '남해의 신선이 사뿐히 땅에 내려 달빛에 흰옷 입고 와서 문을 두드린다'는 시구가 절로 생각난다. 이 부분만을 떼어내어 시로 발표해도 될 만큼 그 화려함이 극에 달한다. 메밀꽃 필 무렵은 한 편의 소설이기도 하지만 한 편의 순수시로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소설 전반에 걸쳐 흐르는 문제가 화려하고 아름답다. (대체로 이효석 님의 글이 시적이다.) 하지만 그 화려함이 사치스럽지 않으며 부자연스럽지 않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

메밀꽃 필 무렵에 표현되는 문체의 화려함은 소박하고, 아담하고, 포근하고, 흥겹고, 풍속적이며 너무나도 담백하고 순수하다. 아니다. 그 어떠한 미어(美語)로도 나는 그 화려함을 표현하지 못한다. 


글이 짧고 간결하지만 그 속에 내포된 의미는 많은 것을 함축적으로 담아내는 힘이 메밀꽃 필 무렵에는 있다. 이효석 선생님은 그 의미를 표현하지 않았는데 내가 스스로 그 의미를 알 수 있으니 참으로 신기한 소설이다.

수컷은 동물이든 사람이든 여색을 탐한다는 묵언의 암시가 허생원, 동이, 나귀를 통해서 전달된다. 

또한 허생원의 인생은 하룻밤 단꿈과 같은 여인과의 만남도 우연이요, 아들일지도 모를 동이와에 만나도 우연이니 그네의 인생은 굴곡 없는 삶 속에서 가끔 단비가 내리는 정도의 인생이다. 그러니 허생원은 매번 밤길을 걸으며 내가 오래전 녹음테이프 속에 한 가수의 노래를 늘어져라 듣던 것처럼 무한 반복하여 물레방아 간에 송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짤디 짧은 단막 속에서도 복선이 등장하며 물레방아, 나귀, 왼손 등의 매개체가 유연하게 표현되는 기술적 글 솜씨는 가히 놀랍다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으며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나의 문학유산 답사기'는 어떨까? 만약 그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그 첫 번째 답사지는 평창 봉평의 이효석 생가가 될 것이다.

허생원이 운명의 만리장성을 쌓았던 물레방앗간도 조촐하게 마련되어 있고 그 옆으로 자리 잡은 메밀 음식점과 길 건너 펼쳐지는 메밀꽃 밭은 책 속에 등장하는 그 화려함을 모두 전해주지 못하지만 그 정취만큼은 느낄 수 있게 한다.

이효석 선생님의 문학관도 들러 그분의 삶과 문학적 가치에 대해서도 공부해보고 주변으로 구성된 공원을 산책하며 자연을 느끼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등장인물 채 5명 남짓의 소탈한 소설 속에서 참깨에서 기름 나오듯 짜낼 수 있는 이야기가 넘쳐나도록 글을 전개할 줄 아는 이효석 선생님의 글 솜씨와 재주가 너무도 부럽고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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