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편지 - 법정
입 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신선도 될 수 있다.
무소유 법정 스님은 적지 않은 책을 남기셨는데, 나는 그중에서 이 ‘오두막 편지’를 사랑한다. 잔잔한 메시지를 내 귓전에 속삭이면서도 그 울림이 쩌렁쩌렁하다.
책을 마음에 양식이라 한다. 법정 스님의 책은 마음에 양식으로서 나약한 우리의 마음을 배불리 채워줄 충분한 영양소를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성숙된 자아를 위해 옛 성인들의 말씀을 즐겨 찾는다. 논어, 사기, 도덕경, 주역, 중용, 명심보감, 손자병법 등등 여러 고서를 곁에 두고 읽으며 자아성찰의 본보기로 삼고자 한다. 옛 성인들의 고전만큼이나 오두막 편지 또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잔잔하게 일러준다. 그 가르침을 공유해보자.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그래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느냐?'
이 말은 법정스님의 가르침이 아니고 마르틴 부버가 '인간의 길'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우리는 진정 어디쯤 와 있으며, 더 나아갈 곳이 있는 것일까?
책 속에 이 말은 물질적 욕망을 쫓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말인데,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지금의 금전 지향적 자본주의와 너무나도 어울린다.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어서 이러쿵저러쿵 논할 처지는 못 되지만, 일련에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 유럽의 경제위기에서 오는 국가 부도 사태 등이 자본주의에 마지막 종착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안내 방송으로 들리는 기분이다.
법정 스님의 선견지명이 실로 감탄스럽다. 자본주의 시대를 뒤로한 경제는 무소유주의를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시간을 살리기 위해 만나는 친구야야말로 믿을 수 있는 좋은 친구 사이다.'
요즘 내게 가장 힘든 일은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이다.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실타래 같은 것이 인간관계인 듯싶다.
사회가 각박해지며 친구의 의미도 되새기기에 벅찬 이 시대에 사람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새삼 느끼고 있다. 이기적인 인간보다 이타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 하지만 어느 순간에 방어적인 자세가 되어 버리는 내 모습이 처량하다.
법정 스님의 이 말씀은 인간관계를 포괄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우리가 친구를 만날 때 되새겨 봄직하다.
만약 당신에게 매우 중요한 약속이 있는데, 그 약속 시간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남았다고 하자. 그때 당신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찾는 그 진정한 친구가 믿을 수 있는 좋은 친구인지 생각해 볼만하다. 당연히 그 친구는 당신에게 소중하고 멋진 친구이다. 하지만 그 친구가 그 시간을 의미 있고 보람된 시간으로 채워 준다면 정말 믿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 누구도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는 이름 어머니.
'한 사람의 어진 어머니는 백 사람의 교사에 견줄 만하다는데 지당한 말씀이다. 한 인간이 형성되기까지에는 그 그늘에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이 따라야 한다.'
부인하기 힘들지만 우리 곁에는 언제나 어머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그 그늘을 벗어나 햇빛을 보고자 한다. 아직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어머님의 그늘 아래서 몹쓸 비바람과 뜨거운 저 햇빛을 피해 왔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 삶이 고단하고 괴롭다면 나를 낳아주신 어머님을 생각해서라도 힘을 내어야 할 것이며, 현재에 내 삶이 그나마 부족함이 없다면 우리에 어머님의 기른 정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어머니가 될 것이다. 내가 앞으로 어떠한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면 다음의 일화를 보기 바란다.
미국의 유명한 교육학자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어머니는 신랑이 사업에 실패하여 거지가 될 형편에 놓이자 그날 저녁 잔칫집처럼 푸짐한 식탁을 차렸다고 한다. 그것을 보고 식구들이 깜짝 놀란다. 아버지가 이를 보며 정신 나갔냐고 꾸짖자 어머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즐거움이 필요한 때는 내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에요.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 행복이 필요한 때에요.'
참 지혜롭고 현명한 처사이다. 지식보다는 지혜로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겨 볼 만한 일화이다.
나에게도 어머님은 아련한 연민이 베어 나온다. 지금 어머님께 전화 한번 드려보자. 전화할 어머님 계신 것이 얼마나 기쁜 행복인가.
법정 스님은 송광사 불일암에 흔적이 많으신데, 송광사와 더불어 조계산에 유명한 사찰 중에 하나인 내가 좋아하는 선암사에는 봄이 되면 돌담길 사이로 황홀한 매화가 피어난다. 이런 매화의 아름다움을 법정 스님은 중국의 유명한 문인 소식(蘇軾 - 소동파(東坡))의 매화성개(梅花盛開)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남해의 신선이 사뿐히 땅에 내려, 달밤에 흰옷 입고 와서 문을 두들긴다.'
참 언제나 멋진 시를 보면 혀가 저절로 천장을 때리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문구를 생각하려면 난 얼마나 더 많은 내공을 쌓아야 하는 것일까?
광해군 시대의 역사를 참 즐겨 찾고 좋아한다. 불운한 개혁군주 광해군에게서 왠지 봉화 군(君)에 향기가 난다.
조선 어느 시대를 두고 인물이 없겠냐마는 광해군 시절 주변으로는 참 우리가 아는 많은 인사가 있었다. 일일이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몇몇 살펴보면, 앞선 시대에 학문적 대가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이 있었고, 정치적으로도 우리에게 오성과 한음으로 더 유명한 이항복과 이덕형, 동의보감의 허준, 그리고 문인으로도 당대 최고의 허균이 있었다.
허균의 이야기를 잠깐 하려 하는데, 허균은 문인으로서는 당대 최고의 작가로 칭송되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추앙받지만, 정치적으로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더욱이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다고 친구라 믿던 관송(觀松) 이이첨에 의해 이슬처럼 사라지니 그 삶이 매우 허망하다.
허균의 외가는 강원도 오대산 근방인데 우리가 아는 것처럼 허균의 호 중에 하나가 교산이었다. 허균은 오대산에서 뻗어 나온 나지막한 산줄기가 교산이었는데 이를 자신의 아호로 삼았다고 한다. 법정 스님의 오두막이 이 일대 근방이었던 것 같다.
‘절약하지 않으면 가득 차 있어도 반드시 고갈되고, 절약하면 텅 비어 있어도 언젠가는 차게 된다.’
무소유 법정 스님다운 말씀이시다. 우리는 가끔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금전 지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처럼 느껴진다.
내 기준으로 볼 때 절약이 힘든 건 있으면 쓰고 없으면 쓰지 않는 버릇 때문이다. 마치 10여 년 전 내손에 핸드폰이 없어도 행복하고 아름다웠는데 말이다.
사회 변화에 얼마만큼 무감각해야 절약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을까? 어지간한 마음 가지고는 나는 힘들어 보인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절약은 지금 내게 없는 것을 채우는 욕심을 조금 줄이면 어느 정도는 실천이 가능해 보인다. 현재 내게 주어진 것들이 내 삶을 풍족하게 채워주지는 못하지만 부족함이 없으니 말이다. 지금 내게 그 물건이 존재하지 않아서 필요한 것이 아닌, 필요 없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 가르침으로 법정 스님의 ‘과유불급(過猶不及)‘과 같은 말씀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일은 완벽하게 끝을 보려 하지 말고, 세력은 끝까지 의지하지 말고, 말은 끝까지 다하지 말고, 복은 끝까지 다 누리지 말라.’
일전 여름, 휴가차 내려간 남도 여행에서 순천 송광사에 잠시 들렀다. 법정 스님 하면 송광사 불임암이 먼저 생각나므로 그곳에 가면 법정 스님의 자취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송광사로 가는 그 2Km 남짓한 편백나무(?) 빼곡한 숲길이 법정 스님에 곧은 가르침과 잘 어울린다.
솔직하게는 이 거대 절집 송광사와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씁쓸하다. 그러고 보니 조계산 자락에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사찰이 양옆으로 펼쳐 있구나. 우 선암사, 좌 송광사가 조계산을 찾는 또 다른 묘미 일 것이다.
선암사에 들러 자연 그대로의 그림 한 폭을 감상하고, 송광사에 들러 법정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면 마음 한편이 뿌듯할 만하겠다.
대부분의 인생 지침서들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와 너무나도 기막히게 들어맞는다는 놀라움을 준다. 그 시대가 어느 때이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도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를 통한 작지만 큰 가르침에서 소유하지 않아도 풍족한 삶을 이루기 바란다. 공자 맹자 장자도 좋지만, 우리에게도 법정스님과 같은 근 시대를 살다 간 위대한 철학자가 계신다. 다시 한번 내가 법정 스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르침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입 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신선도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