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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더하기 Feb 03. 2019

누구냐 너?

사람의 아들 - 이문열

아하스 페레츠가 야훼에게 묻는다. 

'왜 선과 악의 판단을 미천한 인간에게 선택하도록 고통을 주십니까? 처음부터 선한 세상에서 살도록 하셨으면 어떠셨습니까?'

또다시 아하스 페레츠는 묻는다. 

'어찌하여 내세(來世)에서의 천국만을 말씀하십니까? 현세에서 천국에 살면 안 되나이까?'

내가 묻고 싶던 질문을 아하스 페레츠가 대신 물어준다. 왜 선과 악은 나눠지며 그 결정을 미약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책임을 묻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그분은 인간으로 하여금 선악과(善惡果)를 통해 시험에 들게 하고 그것으로 유혹하여 굳이 죄를 짓게 하였다. 그리고 다시 사람의 아들을 통해 구원을 하시겠다고 하신다. 처음부터 구원해 주시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듯 반기독교적인 정서를 기본으로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는 난해하지만, 비기독교 인들이 한 번쯤은 궁금해할 부분을 이야기로 풀어주는 소설이 바로 이문열 님의 '사람의 아들'이다.

이문열 님의 소설은 참으로 신기하다. 선생님의 글은 너무나 난해하고 복잡하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식의 깊이도 그렇지만 매번 사용되는 어려운 단어나 한자 그리고 끝 간 데 없이 이어지는 엄청난 문장길이. 그런데 희한하게 벌써 끝인가 싶게 술술 읽혀 내려간다. 거기에 재미는 보너스다.

이문열 님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특급 베스트셀러 중에 하나인 '평역 삼국지'를 생각할 것이다. 조금은 엉뚱하게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무엇일까? 내가 정확한 통계를 근거로 얘기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성경'이 아닐까? 성경 자체를 문학으로 분류하기 곤란하니 범위를 좀 더 좁혀 생각하면 작품으로는 단연코 이문열 님의 '평역 삼국지'가 아닐까 싶다.

아이러니한 부분은 성경만큼은 아닐지라도 이에 필적할 만한 엄청난 판매 부수를 자랑하는 평역 삼국지를 쓰신 이문열 님에 기독교적 사고에 대한 조용한 반문이 소설 '사람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선생님 소설이 그렇지만, 본 소설은 시답지 않게 글을 쓰는 나에게 엄청난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지식을 섭렵하여야만 책 한 권을 쓸 수 있는 것일까? 소설 한 권을 쓰기 위해 엄청난 공부를 해야 한다는 현실 그 자체만으로도 심각한 자괴감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보면 나를 위해 그리고 책을 보는 독자를 위해 대신 공부하고 분석해서 보기 좋은 상을 차려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본 소설은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고도 주인공 자리를 꿰찬 지식의 어두운 그림자 민요섭과 그가 남긴 글 속에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질문을 혼자서 구하고 다닌 지식의 색다른 시선 아하스 페레츠라는 인물을 통해 두 가지 이야기로 전개된다.

보통 이런 형식의 이야기 구성을 액자소설이라 한다. 간단히 말하면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구성된 형태를 의미하는데, 본 소설은 현세와 과거를 넘나들며 매우 빠르게 전개된다.

현세의 민요섭과 과거의 아하스 페레츠는 신에 대한 공통된 의심을 품은 동일선상의 인물로 비친다. 민요섭은 실체이고 아하스 페레츠는 민요섭의 궁금증을 대신하여 풀어주는 꿈속의 인물과도 같다. 즉 환상이다. 그런데 본 소설이 시작은 민요섭의 죽음을 통해 이야기가 시작되게 되니 결과적으로 민요섭도 아하스 페레츠도 손에 잡히지 않는 환영에 불과하다. 

두 사람 모두 장래가 촉망되고 충실한 교육을 통해 앞으로의 성직자의 길이 환히 밝혀진 전도유망한 청년 들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당시, 현세이든 과거에 그 시점이든,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의구심을 품으며 밝혀진 그 길을 거부하고 방황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찾아 헤매던 그 의구심에 대한 후련한 대답은 없다. 한 사람은 죽음으로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자신을 만들어낸 사람의 죽음으로 그 결말이 희미하게 사라지고 해답을 찾지 못한다.

다만 민요섭과 아하스 페레츠는 나 같은 비 기독교인이 한 번쯤은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질문과 생각을 사람의 아들이 태어난 그 시대로 회귀하여 거침없고 담대하게 대신하여 물어봐 준다. 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이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질문을 하는 사람은 존재해도 대답을 줄 그분은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니까 말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본 책은 엄청난 기독교적 사전 지식과 자료를 통한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다. 소설이 끝나는 부분에 각주(主)를 따로 모아 10페이지 남짓하게 나올 정도로 어렵고 난해하다.

그 수없이 나열되는 신들의 이름, 지명 그리고 사람들까지 너무도 방대한 기록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정리되어 담겨 있다.

또한 민요섭이란 청년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본 소설은 그 죽음을 수사하는 과정 속에서 현재의 사건을 다루지만 과거를 통해 그 실마리가 풀리는 복잡한 구성을 띠고 있다.

글은 전반적으로 난해하다, 어렵다, 복잡하다 등등 이해하기 힘든 단어들로 유혹하지만 흐름은 그렇지 않다. 이문열 님의 여타 작품들이 주는 느낌처럼 몰입도는 최고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비하고 경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의 추리적 성격도 이 책을 흥미롭게 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부분 이 책을 접한 분들이라면 그 범인이 누구인지 대충은 짐작할 만하지만 그 짐작할 만한 틈을 허용치 않는다. 오히려 범인이 누구일까를 생각하는 것보다 민요섭은 왜 죽었으며 누군가 죽였다면 왜 죽여야만 했을까 하는 의심을 계속 유발시킨다. 그것이 수사과정상에 밝혀지는 것이 아닌 민요섭이 쓴 글 속의 주인공 아하스 페레츠를 통해서 전달되는 오묘함은 참으로 신비롭다.     

'너희는 지나치게 많이 가짐을 구하지 말라. 많이 가짐이 악이어서가 아니라, 그러함으로써 네 이웃이 가난해지는 게 악이기 때문이다.'

위 문장은 소설 사람의 아들에서 가장 인상 깊은 문장으로 내가 꼽은 것이다. 과연 선과 악을 구분 지을 수 있을까?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인지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있을까? 명확하다면 그것은 누가 그 기준을 정한 것일까?

세상에 어떤 종교도 인간을 나쁜 길로 인도하지 않는다. 참된 방향으로 인도하여 올바를 판단과 바른생활을 하도록 거친 파도 위에 돛대가 되어준다. 그러나 맹목적인 믿음과 절대적인 강요는 누구에게나 반감을 갖게 한다. 배려와 존중. 그러면 선과 악이 존재가 무의미하지 않을까?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될 때까지 책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글을 읽는 것만큼 따분하고 한심한 일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책에 대한 전환점을 이루게 된 소설이 부끄럽게도 이문열 님의 평역 삼국지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어렵고 긴 문장을 중학교 2학년짜리가 읽고 이해했다는 게 신기하다.

그러니 이문열 님은 내게 평생의 친구이며 영원불멸의 지도자인 책을 선물해준 매우 고마운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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