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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더하기 Feb 10. 2019

대한민국인에 고함

백범일지 - 김구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묻는다면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또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또 묻는다면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고 말할 것이다.

애국심.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내가 자랄 때에 비하면 참 그 의미가 많이 사라져 간 단어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해야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일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나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하여 민족의 지도자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님의 '백범일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백범일지'는 독립운동의 산 교과서이며 생생한 증언이다. 일제 식민지를 관통하고 해방 후까지의 생생한 기록이 담겨있다. 그 이야기가 선생님의 어린 시절부터 시간에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소개된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본명은 김창수이다. 본향은 해주이며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학문을 키우며 성장하였다. 잠시 동학에도 몸담았던 선생님이 방황하던 시절 고산림 선생님의 문하에서 큰 가르침을 받게 된다.

내가 백범일지를 읽으며 초반부 너무나 감명 깊게 읽어 내려간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인데 고선생님께서 문하에 드는 백범에게 이르는 말이다.

'사람이 자기를 알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하물며 남의 일을 어찌 알랴. 그러므로 내가 그대의 장래를 판단할 힘은 없으나 내가 한 가지 그대에게 확실히 말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성현을 목표로 하고 성현의 자취를 밟으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힘써 가노라면 성현의 지경에 달하는 자도 있고 못 미치는 자도 있거니와, 이왕 그대가 마음 좋은 사람이 될 뜻을 가졌으니 몇 번 길을 잘못 들더라도 본심만 변치 말고 고치고 또 고치고 나아가고 또 나아가면 목적지에 달할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괴로워하지 말고 행하기만 힘쓰라.'

비록 내가 직접 고 선생님께 생생한 목소리로 들은 말씀은 아니지만 언제나 가슴 깊이 생각하며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글귀로 삼고 있는 명언이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그 누구에게나 훌륭한 선생님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만 한 영광과 행복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을 둔 사람이 어찌 민족의 지도자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일본이 서서히 국권을 강탈해 나갈 무렵 청년 김창수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벌어진다. 을미사변 때 황후(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대해 원수를 갚고자 일본인 중위 쓰치다를 살해하여 인천감옥에 투옥되는 사건이다. 이때 일본 순사 와타나베가 심문할 시 청년 김창수는 이렇게 호령하였다.

'소위 만국공법(萬國公法) 어느 조문에 통상, 화친하는 조약을 맺고서 그 나라 임금이나 왕후를 죽이라고 하였더냐. 이 개 같은 왜놈아. 너희는 어찌 우리 국모 폐하를 살해하였느냐? 내가 살아서는 이 몸을 가지고, 죽으면 귀신이 되어서 맹세코 너희 임금을 죽이고 너희 왜놈들을 씨도 없이 다 없이 해서 우리나라의 치욕을 씻고야 말 것이다.'

의기로움은 단순한 충동으로 그 뜻이 모두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모양이 충동이였다 할지라도 그 뜻이 이와 같이 심오하고 그 결의가 눈부신 것이다.

'득수반지무족기(得樹攀枝無足奇)현애철수장부아(懸崖撤手丈夫兒)'. 즉 장부는 나뭇가지를 잡아도 발에는 힘주지 않고, 언덕에 매달려도 손에 힘주지 않는 것이라 한다.

이 말은 선생님께서 해주에 또 하나의 은사 이신 안진사에게서 전해 들은 말씀이시다. 참고로 안진사는 민족의 대영웅이요 독립운동 집안인 의사 안중근 선생의 아버님이시다.

다시 한번 올바른 스승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새삼 깨우친다.


일본인 장교 쓰치다를 살해한 협의로 인천 옥에 투옥된 선생님은 끝내 탈옥을 결심한다.

'상하가 다 내가 살기를 원하나 나를 놓아주지 못하는 것은 오직 왜놈 때문이다. 내가 옥중에서 죽어 버린다면 왜놈을 기쁘게 할 뿐인즉 내가 탈옥을 하더라도 의리에 어그러질 것이 없다.'

선생님이 인천 옥을 탈옥하고 전국을 유람하실 때 무주에서 지인 유인무 선생님으로부터 호를 연하(蓮下) 이름을 김구(龜)로 개명하여 얻게 되신다. 이는 본명 김창수로 도망자의 신분을 벗어나기 힘들고 생활하기 불편하다는 생각에 변성명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세월을 벗 삼아 전국을 유람 아닌 유람하며 도망자의 신분을 이어가시던 선생님이 애국의 깃발로 꺼내 든 생각이 교육이었다.

나라 잃은 백성에게 계몽과 교육은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김구 선생님 역시 이점을 알고 교육에 많은 공을 쏟으셨으며 계몽에 앞장서셨다. 그 시작은 황해도 안악에 양산 학교에서 교장으로 책임을 다하시면서이다.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삼천리강토와 2천만 동포에게 충성을 다하여라.'

이러한 일련의 활동은 이 당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애국계몽운동(愛國啓蒙運動)과 맞물린다. 이 운동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사고의 '실력'과 나라 잃은 조선민족의 '실력'차를 인정하고 모든 백성이 '힘'과 '실력'을 길러 민족의 힘으로 국권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국권회복운동의 중심 운동인 것이다.


일본은 이런 지식계급과 선각자를 없애 버리는 것이 조선을 강제로 빼앗는 첫 번째 지름길이라고 생각한 건 당연하다. 그리하여 양산 학교에 재직 시 수없이 많은 지식인과 부호가 잡혀 들게 되는데, 선생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다시 투옥된 감옥생활에서 가슴 벅찬 일화가 있어 소개해 보려 한다.

이때 함께 투옥되어 같을 방을 쓰게 된 이종록이라는 청년이 있었다고 한다. 이 청년은 친척도 없을뿐더러 그를 따르는 무리도 없어 사식을 들여 줄 이가 없었다. 반대로 사식을 받을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선생님은 함께 나누지 못함이 늘 마음이 많이 아팠다. 받아온 사식을 한방에서 먹게 되면 불편 없이 함께 나눠 먹을 수 있지만 딴 방에서 불러내 먹이니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사식을 먹으러 나오면 밥과 반찬을 한 입 가득 물고 방으로 돌아와 제비가 새끼 먹이듯이 다시 뱉어내 입에서 입으로 그 청년에게 옮겨 먹였다는 것이다.

이 일화를 뜬금없이 소개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작은 것을 소중히 하고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다. 큰 것을 보고 민족을 외치는 이면에는 이렇듯 작은 정성과 사랑이 내면에 든든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고통은 나누면 절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한다. 

내 배부르면 종 배고픈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지도자 분들이 한 번쯤 생각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巍巍落落赤裸裸 獨步乾坤誰伴我 (외외낙락적나라 독보건곤수반아) 홀로 높고 정갈하여 구애됨이 없으니 천하를 홀로 걸으매 누가 나를 짝하랴.

선생님의 두 번째 수감생활은 반환점과도 같은 시기이다. 최초 15년형을 받은 선생님은 그 형이 줄고 줄어 5년이 되었을 시 이미 3년을 옥에서 보내고 형기가 2년 남은 시점부터 새로운 활동계획을 세우시게 된다.

'나는 세상에 나가면 무슨 일을 할까. 지사들이 옥에 다녀 나가서는 왜놈에게 순종하여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니 나도 걱정이 되었다. 나는 왜놈이 지어준 뭉우리 돌대(모난 데가 없이 둥글둥글하게 생긴 큼지막한 돌)로 가리라 하고 굳게 결심하고 그 표로 내 이름 김구(金龜)를 고쳐 김구(金九)라 하고 당호 연하(蓮下)를 버리고 백범(白凡)이라고 하여 옥중 동지들께 알렸다. 이름자를 고친 것은 왜놈의 국적에서 이탈하는 뜻이요, '백범'이라 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하다는 백정과 무식한 범부까지 전부가 적어도 나만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하는 내 원을 표하는 것이니 우리 동포의 애국심과 지식의 정도를 그만큼이라도 높이지 아니하고는 완전한 독립국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우리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이자 선각자이신 백범 김구 선생님의 존함은 이렇게 탄생된 것이다.

임시정부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당시 국무총리 대리를 하시던 도산 안창호 선생님에게 김구 선생님이 요청한 임무는 임시정부를 지키는 문 파수(把守), 즉 문지기였다. 이것은 선생님께서 감옥에 계실 때 생전에 한번 우리 정부 정청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는 것이 소원이라 하나님께 기도드리셨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작은 내가 흘러 큰 강을 이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임시정부에서의 활동과 그 후 대한의 독립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순전히 선생님의 눈을 통해서 보는 임시정부의 모습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얼마나 그 고통이 힘겨운 것인지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등등 그분들의 활약상에 감춰진 역사적 뒷이야기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나의 소원'에 나오는 정치 이념에 대한 부분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떤 일개인 또는 일 계급에서 온다.'     

'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 한 걸음 물러나 세상을 보니 꿈속의 일만 같구나. 나의 칠십 평생을 회고하면 살려고 하여 산 것이 아니요, 살아져서 산 것이고 죽으려고 하여도 죽지 못한 이 몸이 필경은 죽어져서 죽게 되었다.'

되도록 이번 '백범일지'에 대한 소개는 책에 내용을 요약하고 정리하는데 무게 중심을 두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내 생각보다는 김구 선생님의 그 큰 뜻을 고스란히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백범 김구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을까?

'그대 큰 꿈을 꾸고 정진하는가? 미력하나마 내가 작은 보탬이 되어 주겠네.'

선생님의 스승이신 고산림 선생님의 말씀처럼 위대한 선각자를 본으로 삼아 그 뜻을 따르고 밟음에 백범만 한 분이 있겠는가?

'백범일지' 지치지 않고 쉼 없이 달리는 영원불멸의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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