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정원 - 황석영
나에 고향은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이다. 어린 시절을 대부분 그곳에서 보냈고, 내가 지금 친구들이야 하고 부르는 이들도 다들 이곳 출신들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과 같은 그런 고향을 가진 분들과 어찌 감히 비교가 되겠냐마는 그래도 내게는 내 고향 영등포가 언제나 가슴 한편 아련하게 자리 잡고 있다.
부유하지 못한 나에 어린 시절 탓인지 그때의 감성적 내 자아가 한해 한해 지날수록 더욱 생각난다.
그러니까 내가 신길 4동, 신풍시장과 우신초등학교 뒤편으로 꼭짓점처럼 만나는 어디쯤 되는 곳에 3층짜리 건물 맨 위 층에 살 때였다. 초등학교 3학년, 4학년쯤 되는 시기였을 거다. 이때는 세월이 그래서인지 아니면 나의 가정형편이 어려워서인지 알 수 없지만 늦은 밤 내 여동생과 단둘이 잠들던 나날이 많았다.
이 당시 어둠이 내린 신길동 뒷골목은 매캐한 최루탄 냄새와 찢어질 듯 울리는 호루라기 소리, 누군가를 뒤쫓는 발자국 소리, 목청껏 고함을 지르는 소리, 무엇인가에 쫓겨 허겁지겁 담을 넘는 소리까지 그야말로 혼란한 밤에 연속이었다.
장성한 지금 어머님께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머님의 반응은 “그래?”하며 의아해하곤 하신다. 하기야 당신은 굴곡진 삶에 짐을 지고 바쁜 걸음을 한창 걷고 있을 때였으니 이런 시대적 주변 환경에 무감할 만할 것이다.
이렇게 1980년대 대한민국은 찬란한 봄을 향해 아픈 눈물을 흘려야 했던 시기였다. 이 암울한 시대를 관통하는 드라마틱한 소설 한 편이 있으니 그것은 황석영 선생님의 ‘오래된 정원’이다.
사실 이 작품은 황석영 님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문체가 상당히 어려운 편이다. 화자도 중간중간 바뀌고, 기행문, 편지, 독백 형식 등등 내용을 전달하는 형식도 매우 다양하다. 그래도 선생님의 입심, 아니 글 심은 역시 범접하기 힘들다.
소설은 사회주의 운동가 오현우에 대한, 애인 한윤희의 망부석(望夫石) 같은 이야기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를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오랜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오는 오현우에게서부터 시작된다. 오래전 자신을 숨겨주었던 여인 한윤희와의 과거가 남겨진 갈뫼를 찾으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오현우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한윤희에 생활과, 간간히 등장하는 오현우에 활동 모습 등이 교차적으로 등장하여 소개된다. 한윤희에 이야기는 주로 편지를 통해서 전달되고 오현우에 이야기는 과거 회상을 통해서 전달한다. 이들의 회상과 편지를 통하여 전해지는 장면 장면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그대로 전달된다. 특히 오현우의 수감생활을 그린 부분과 80년대 후반의 공장 노동자들의 데모 현장은 매우 사실적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많은 장면들이 있겠지만 말이다.
‘오래된 정원’에서 가장 소설적인(?) 부분을 뽑자면 오현우가 안양에 있는 어느 작은 공장에 일하는 시기를 전하는 장면이다. 당시 공장 노동자들의 생활을 소탈하게 그려나간다. 퇴근 후 선술집에서 소주를 기울이는 장면과 같은 처지의 노동자 남녀가 알콩달콩 하는 장면들은 그 당시의 공장 노동자들의 일면을 여실히 보여 준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한윤희 주변인으로 등장하는 최미경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을 이 소설의 백미라 꼽는데, 소설 속 미경이라는 인물은 크게 영향력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 파장만큼은 어떤 인물보다 긴 여운을 남긴다.
그녀가 처음 한윤희를 만나 법대를 그만두고 인천에 있는 어느 공장에 취직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 이미 이 사람 범상치 않다는 희미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한참 만에 다시 등장한 미경은 역시나 엄청난 임팩트를 가하며 사라지게 된다. (이 장면에서 화자(話者)는 최미경이다. 한윤희가 남긴 편지 속에서 다시 최미경의 편지가 등장하는 형태인데, 마치 영화 ‘인셉션’처럼 복잡한 구성이다. 하지만 글을 이해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역시 황석영 선생님!!)
이처럼 소설 오래된 정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극한의 이념적 대립을 보여주는 한윤희에 아버지, 사상의 정당화를 외치는 오현우, 시대에 편승하는 송영태, 온몸으로 민주화를 지킨 최미경, 냉전의 장벽을 함께 허무는 이희수, 이러한 모든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고 겪는 한윤희 까지 모두 의미심장하다.
주인공 한윤희는 끝내 암으로 사망한다. 그렇게 오매불망 민주화를 외치던 사람들에 희망대로 봄이 올 무렵 스치는 봄처럼 그렇게 사라진다.
한윤희에 삶에서 지금 우리 사회에 단면이 비치는 건 왜일까?
‘이제 저러다가 큰 코 다칠 텐데. 타성에 빠진 대중, 이상주의가 없어지고 쾌락만 남은 젊음, 위선과 기회주의가 가장 빠르게 이길 수 있는 덕목이 되어버린 정치, 여론의 노골적인 조작과 왜곡, 대중이 타락되는 것은 과거의 폭력적인 지배의 상처 때문일 거예요.’
지금 우리네 사회를 말해주는 한윤희에 마지막 넋두리이다.
‘당신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겠지요.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어 왔던 가치들은 산산이 부숴 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 가운데서 빛나고 있어요.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또 한 번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혹시 바위틈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 들어가 갑자기 환하고 찬란한 햇빛 가운데 색색가지의 꽃이 만발한 세상을 본건 아닌가요.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하지만 이런 역사적 아픔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다가온 봄은 생각처럼 찬란하지 못하다. 마치 저 북극에 얼음이 녹아 지구 온난화 현상이 심화되고, 우리에게 봄은 잠시 스치는 계절이 된 것처럼, 우리가 꿈꾸던 찬란한 봄은 자연현상처럼 잠시 스치고 사그라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 나에 선배들이 목숨 걸고 지키고 찾으려 했던 그 찬란한 봄이 오래 지속되고, 봄다운 봄으로 우리에게 남기를 바란다면 지금부터라도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사회를 단순한 이분법적 개념으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 과거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로 나누고, 지금은 빈과 부로 나누는 이런 사회에서는 봄은 오래가지 못한다.
나는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다양성은 언제나 존중되어야 한다.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나와 형편이 다르다고 배척하고 무시하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봄은 아닌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래전 ‘5.18 민중항쟁 기념 서울 청소년 백일장’에서 시 부분 대상을 차지한 시 한 편을 소개해 보겠다. 이 글을 쓰는 대략 10여 년 전, 그러니까 2007년(정확한 연도가 기억되지 않는다.) 즘으로 기억이 된다. 당시 신문을 통해 접하고 노트에 적어 놓은 이 멋지고 아름다운 시를 또다시 읽어 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하다. 이때 작자의 나이 18세였다고 한다.
그날 -정민경-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 고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쟤.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