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나를 찾아줘...

by 헤엄치는 새

그날 어머니는 급히 집으로 돌아오셨다.

이유는 나 때문이다.

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외할머니, 외삼촌들과 함께 뒷산 약수터를 비롯해서, 초등학교, 놀이터 등 동네에 내가 있을법한 곳을 찾아 헤매었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나...

행여 유괴라도 된 건가 싶어, 경찰서에 실종 신고도 넣었다.

시간은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해는 져서 거리가 어둑어둑 해진 상황,

이제 곧 밤이 되면 나를 더더욱 찾기 어려우리다.

그래도 어머니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의 전부였던 혈육이 보이지 않는데, 해가 졌다고 포기하고 돌아갈 수 없지 않은가!


늦은 저녁까지 찾고 있던 중, 헐레벌떡 뛰어오는 외할아버지.

'찾았다!, 그 녀석 범일동 파출소에서 보호하고 있단다!'

어머니는 산을 내려와, 외할머니와 택시를 잡아타고 범일동 파출소로 향했다.


나는 왜 범일동에 있었을까?


'네! 확인했습니다. 왼쪽 발에 화상 자국 있네요.'

경찰관은 어딘가에 통화를 하며 나의 인적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양말을 신자마자, 위층 어딘가로 데려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경찰관들의 생활관(?)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생활관이라 생각한 그곳에는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무료해진 나는 그 녀석에게 짓궂은 장난을 쳤다.

어디서 주방세제를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고양이의 환심을 산 후,

신나게 고양이 머리 위에 주방세제를 뿌렸다. 마치 머리라도 감겨줄 것처럼 말이다.

고양이를 쫓아다니며 주방세제를 뿌리고 다녔으니 결국엔 경찰관에게 혼이 났다.


하악질 하는 고양이와 그걸 보면서 생글거리는 나...


지금 우리 동네에선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도 모른 체, 나는 낯선 곳에서 고양이와 즐겁게(?) 뛰어놀고 있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오전에 난 어머니를 만나고자 했다.

그것이 약속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즉흥적인?

이런 즉흥적인 실행은 아마도 어머니랑 함께 몇 번 가본 길이었거니와, 더불어 6살 꼬맹이의 자신감도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나는 유치원 가방에 위인전을 가득 채워 넣고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내가 탈 버스는 99번.

난 99번 버스를 타고 범일동으로 향할 것이다.

저 멀리서 버스가 다가온다.


그리고 불행은 시작되었다.

나는 내가 내릴 정류장보다 한 코스 일찍 내렸다.

아뿔싸!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이정표로 삼을 건물들이 하나도 안 보인다.

순간 난 몸이 굳었다. 심장은 요란하게 펌프질을 하고, 호흡은 거칠어졌다.

그냥 길 위에 서있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도 안 날 때 아주머니 한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사실대로 길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때가 점심시간이었는지, 아주머니는 밥 먹고 파출소에 데려다주겠다 약속하시고는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가 점심밥을 손수 해주셨다.


다행히 유괴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분의 배려 덕분에 난 그렇게 파출소에 인계(?)되었다.


그 시각 집에선 난리가 났다.


외할머니는 손주가 없어진걸 한참 뒤에 알았다.


처음엔 주변 공터에서 놀고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점심이 돼서도 애가 안 들어오니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노느라 밥때도 잊은 건가 싶어 찾아 나선 외할머니는 손주가 주변 어디에도 없단 걸 안 순간 사색이 됐다.


그때는 유괴도 빈번했기에 더욱 그랬다.

주변에 손주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바로 어머니께 연락을 했다.

얼른 집에 오라고, 애가 없어졌다고...


그때부터 온 집안사람들이 나를 찾느라고 난리였다.

외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외삼촌, 숙모 할 것 없이 내가 갈만한 데는 찾아봤지만, 어디 보이겠는가?


도착한 어머니는 혼비백산이었다.

다시 처음부터 가볼 한 곳을 찾았다.

특히 뒷산 약수터 가는 길엔 작은 저수지가 있는데, 혹시나 거기 빠졌을까 싶어 장대로 찔러보기까지 했다.


약수터, 초등학교, 오락실, 공터, 시장 등등 그 어디에도 나의 흔적은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파출소에 가서 실종 신고를 했고, 어머니는 계속 그 주변 나를 찾아 헤매었다.


그렇게 저녁이 되고, 밤이 될 때쯤 나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


범일동 파출소에 도착한 어머니와 할머니의 모습은 땀범벅에 머리가 헝클어져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반면 나는 고양이와 신나게 놀고 있었으니 아마 허탈해하셨으리다.


그렇게 경찰관에게 맡아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동안 어머니께 약간의 혼이 났다.

사실 어머니는 예나 지금이나 엄하신 분이라 그 정도 끝난 게 신기할 정도다.

어쩌면 그날 나를 찾느라 기력을 다 소비하셔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렇게 놀아도 여섯 살 때는 잠도 많을 때라 꾸벅꾸벅 졸으며 집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잠시 눈을 떴을 때 보게 된 건물이 '서울' 모텔이었다.

서울? 잠시 졸았는데 서울은 왜?라고 의아하게 생각하다 다시 졸았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집으로 가는 대로변에 그런 이름의 숙박 시설이 있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한 후 다음날 난 외할머니께 제대로 혼이 났다.

원래 무서운 분인데 그날은 몇 배는 더 무서운 분이 되셔서 세상의 혹독함에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그 뒤 외할아버지, 삼촌, 숙모 순으로 세상의 쓴맛(?)을 주제로 체험도 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가내 수공업식 봉제 공장을 했던 터라 유괴되면 이런 삶을 살 것이다라는 주제(?)로 어른들 허드렛일을 거드는? 체험을 했달까?


그 뒤 얼마 동안 난 어딜 가면 벽 한 면에 외출계(?)를 작성하고 돌아다녀야 했다.

그리곤 수시로 막내 외삼촌이 작성한 그곳에서 잘 놀고 있나 확인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몇십 년이 흘렀다.

예전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서면을 가려면 서울 모텔 자리를 지나야 했다.

이제 서울 모텔은 없어지고, 원룸식 건물로 바뀌었지만, 그곳을 지날 땐 늘 '왜 서울에 왔지?'라는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난 운이 좋은 덕에 유괴도 안 됐고, 어머니 곁에 잘 돌아왔다.

한편으론 왼쪽 발의 화상이 아니었으면 난 보육원 같은 곳으로 가 영영 가족들이랑 생이별을 했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화상 자국이 나에겐 애증의 관계인 듯싶다.

불편해도 고마운 존재랄까?


친척들은 내가 고등학생 때까지 명절 때마다 그 얘기를 안주삼아 얘기하곤 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기억이 오래 남아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점심밥을 주시고, 파출소로 데리고 가준 아주머니...

그분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어릴 때라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는데...

아마 살아계신다면 팔순은 족히 넘으셨을 듯하다..


나의 가족들 그리고 아주머니...


정말

나를 찾아줘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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