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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to owl Jan 27. 2021

에세이 & 짧은 글) 나는 늘 서성인다...

"아이고 총각, 무슨 맥주캔이 이리도 많아?"

일요일 분리수거를 하면서 어느 어머님께 들은 말이다.

나는 혼나는 아들처럼 약간은 쭈뼛거리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ㅎㅎ"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쓰레기 분리를 하는 몇 분 동안 그분은 과음은 몸에 해로우니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고 하시며, 그렇게 당신의 재활용품을 용도에 맞게 정리하셨다.

나는 '네'하고 짧게 대답한 뒤 정리 후 나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관문을 잠그고, 잠시 멍하게 있었다.

안면조차 없는 낯선 분이 내 몸 건강(?)을 염려해준 것에 대한 신기함과 또 한편으론 그런 염려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생각해보니 요즘 나의 음주량이 제법 늘었다.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재활용 바구니에 쌓인 빈 맥주캔은 앞의 말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즐비하게 쌓여있었다.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냉장고엔 아직 뜯지 않은 맥주캔이 바구니의 빈 캔만큼이나 빽빽이 채워져 있단 것이다.


지금의 나는 무엇이 문제일까?


무기력하다.


예전에 했던 거라곤 커피일이 전부인데, 이젠 커피는 하고 싶지 않다.

더는 커피로 수입을 내는 게 아니라 이쁘게 꾸며 값비싸게 파는 임대업처럼 되어 버린 듯해서 맘에 안 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물음에 내가 하는 말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살고 싶다는 것이다.

이게 어디 뜻대로 되는 일인가?

평생 글을 쓰고 배운 이조차 쉽지 않은 진로인데, 난 너무 이쪽 세계를 물로 보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부엉이를 주인공으로 한 4컷 만화도 간신히 그리며 머리를 쥐어짜던 내가 지금은 글로 밥 벌어먹고 싶어요라고 하니 내가 봐도 할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처자식이 없는 것이요.

그래도 불행을 꼽아보자면, 아들 장가 못 보낸 우리 부모님 정도일 듯싶다.

지금 내가 허구한 날 술을 마시며 허우적거리는 게, 아직 나의 쓰임을 못 찾아서 그런 거 아닐까 싶다.

그런 와중에 나이는 꾸역꾸역 먹어 어느덧 중년의 몸뚱이가 됐지만, 머릿속은 사춘기 소년처럼 공상에 몸을 맡기며 이리저리 뛰 놀 궁리만 하는 터라 육신과 뇌 이 둘 사이 갭이 너무 큰 게 문제다.


나는 지금 어딜 바라봐야 할까?

내 주변 친구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가장으로 살아가는 반면, 나는 아직도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른 체 멍하니 이정표 앞에서 서서 발걸음 하나 떼지 못하고 있다.

두 다리는 흡사 오랜 고목의 뿌리처럼 그 자리에 붙들린 체 지나가는 시간만 아쉬워하며, 꽃 조차 피우지 못하는 그러면서 이 자리에 있는 자신만 원망할 뿐이다.


답답하다고 술을 마시고는 애먼 화분에 분풀이를 한다.

방안에 흩날린 흙을 바라보며 씩씩거리는 것도 한순간, 결국 쓰레받기랑 빗자루를 들고 와 정리하며 나의 이런 행동에 후회만 할 뿐이다.

그리고 또 맥주캔을 딴다.

멍한 눈으로 꿀떡꿀떡 삼키며 거친 트림을 뱉어낸다.

그리고 또 반복해서 나에게 묻는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혼자 선문답을 주고받으며 밤을 보내다 새벽녘에 내 몸을 누인다.

내일은 멋진 글을 써야지.

재밌는 웹툰을 그려야지.

모두를 위한 공익적인 글도 적고, 좋아요도 많이 받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달래 봐도 도돌이표처럼 다시 시작되는 나의 걱정 때문에 쉽사리 잠도 오지 않는다.


결국 아직 오지도 않은 불안감에 눈물을 글썽이며 하루를 마감함과 동시에 망쳐버린다.

사는 건 누구나 힘들다.

그렇게 힘든 오늘...

 난 사춘기 소년처럼 공상으로 열어젖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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