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게 느렸다. 아니 지금도 느리다...
어렸을 땐 동생에게 말을 배울 정도로 말하는 게 더뎠고, 행동은 늘 어딘가 굼떠 보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난 남들보다 조금은 늦게 나의 세계를 배워 나갔다.
그 당시 이런 게 크게 불편하진 않았으나, 제일 불편했던 건 역시나 군대였지 않을까 싶다.
남들처럼 부지런히 움직여 보려 했으나 항상 느렸고, 아침 점호 땐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 기상 20분쯤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온 후 눈만 감은체 깨어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늘 늦었다.
심지어 밥 먹는 게 늦은 탓에 선임에게 혼난 후 평상시 먹는 밥보다 적게 담아 먹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느림은 군대 후임에게 무시당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대학생활도 그랬다.
남들은 슥슥 해 나가는 과제도 난 몇 번의 실패 끝에 겨우 제출할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에서도 손이 굼뜬 나머지 몇일치 급료를 받고 잘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정말 억울해 미칠 거 같았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움직였는데도 그들에겐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하게 보였던 걸까?
난 왜 그들처럼 빠르질 못할까? 하고 책망 아닌 책망을 했다.
그래서일까?
난 조금 일찍 움직였다.
헐레벌떡 시간에 맞춰 학교나 알바에 가지 않았다.
항상 여유롭게 도착하고 그 조용함을 좋아했다.(물론 아르바이트하는 곳은 그렇지 못하다...)
아르바이트는 일찍 가면 바로 일해야 했기에 도착 후 근처 어딘가에서 혼자 어슬렁 거려 10분 전에 들어가곤 했다.
이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지각은 손에 꼽을 정도로 거의 없었다.(아예 없진 않았다.)
나는 나의 느림을 조금의 부지런함으로 커버해보려 했다.
다만 그게 먹힐 때가 있었고, 그렇지 못할 때가 있었다.
사실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느림과 부지런함은 아무 관계가 없다.
느린데 부지런하다?
부지런한데 느리다?
그것은 현대의 직장인에겐 놀림거리였다.
사회에 나오니 부지런하고 빠릿빠릿한 인재가 넘쳐났다.
그런 그들에게 비교하기 좋은 게 딱 나였던 것이다.
난 나의 장점을 다 잃은 듯했다.
아니 아예 장점 따윈 없는 잉여인간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들의 등을 바라보며 헐레벌떡 뛰기는 했어도 그 등엔 닿을 수가 없는 거였다.
그러던 중...
누군가 나를 평가해준 말이 있었다.
'넌 느리다, 일머리도 없고 요령도 없다.
하지만 딱 하나 너에겐 뛰어난 게 있다.
그건 인내심...
남들은 금방 그만두는 걸 넌 일이 되든 안되든 끝까지 마무리 짓고 답을 내려한다'
평상시 내가 어려워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살짝 당황했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순간 그 말은 나를 인간 그 존재 자체로 만들어준 말이었다.
인내심...
그래서일까?
지금 나의 글이 나의 그림이 아직 세상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지도 보이지도 못하지만 꾸준히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나의 시간은 느리다.
어떤 이는 나보다 어린 나이에 돈, 명예, 지위 등을 얻었을 수도 있다.
그게 뭔 대수인가?
나의 시간은 그들과 다른 것을...
누군가의 성공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나라고 그런 성공을 못하겠는가?
다만 좀 그들보단 늦을 뿐이다.
마지막에 내가 원하는 걸 얻는 순간이 백발의 노인이 된다 한들 이뤘으면 된 거 아니겠는가?
당신의 걸음은 어떠한가?
항상 뛰고 있고 있진 않은가?
그렇게 뛰다 힘들면 걷고, 잠시 쉬는 게 우리의 시간이라 생각한다.
멈춰 섰다고 걱정하지 마라...
우린 지금 부지런히 잘 걷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나와 나의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필요한 건 약간의 흥얼거림 정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