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OWL ESS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luto owl Aug 26. 2022

나는 도망자...

어제 그러니까 25일 목요일, 나는 인천을 떠나 다시 양산으로 돌아왔다.

약 5개월의 타향살이...


그 기간 동안 내 손에 쥐어진 건 약 500만 원과 무너진 자존감 그리고 망가진 나 자신이었다...

앞에 '내 하루의 삶을 1X만원에 팝니다...'란 글에도 적었지만, 일을 시작한 다음날 시작된 극심한 무릎 통증을 시작으로 관절이란 관절은 곡소리가 날 정도로 점점 심해졌다.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내 몸은 허약함 그 자체였다.

그래도 늙은 노모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해 보자 했던 다짐은 현장 아재들의 욕설로 너무나 쉽게 무너졌다.

욕받이 그 이상은 아닌 듯싶었다.

일은 늘지 않고, 욕은 매일 먹고, 자존감은 떨어지고...


내가 원해서 한 일이 아니었기에 실력이 안 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 이런 변명을 늘어놓는 들 어느 누가 알아주겠는가?

그들 눈에 어쩌면 난 그냥 현장에 와서 적당히 시간만 때우며 일당을 챙기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김 부장에게 욕먹고, 사수에게 욕먹고, 흔한 담배심부름에 온갖 잡일, 난 목수가 아니라 그냥 목수를 돕는 잡부 정도였다.


더군다나 이번에 옮긴 현장은 생각보다 고돼서 모두가 예민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나의 실수가 사수에겐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물론 그들이 무조건 미운건 아니다.

어느 정도는 나 역시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누적된 자존감의 상실이 감사한 마음보다 크달까?

나 역시 잘하는 게 있는데, 여기서 손에 익숙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자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어김없이 고함과 욕설이 들려온다.

또 실수했다.

그의 고함소리에 더욱 움츠려 든다.

그리고 머릿속 끈이 하나 '툭'하고 끊어진다...



다음날 난 몸이 아프단 핑계로 현장을 쉬었다.

그리고 이모와 이모부께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8월 초에 한번 그만두겠다고 말했다가 이모부께서 좀 더 다녀보라 하셔서 그렇게 했으나, 이번엔 더 이상 다니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 이미 마음이 떠난 상태에서 지금까지 이렇게 어정쩡한 마음가짐으로 현장을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매번 현장에서 실수하고 욕먹는 거 아니겠는가?


아는 지인에게 원룸의 짐들을 옮겨 양산으로 가져갈 시기를 의논했다.

마음 같아선 이번 주에 짐을 싣고 양산으로 내려가려 했으나, 원래 추석 때 같이 내려가려 약속했기에 그냥 추석 전날에 짐을 싣고 내려가기로 했다.

짐은 그렇게 하기로   남은  나의 거취였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컴퓨터와 속옷 몇 점을 챙겨 내려갈 준비를 했다.

이모의 식당으로 가려니 비가 온다...

내가 부산으로 가려하면 항상 비가 온다.

이번에도 그렇다...


처음엔 취소할까 하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모에게 인사하고 가방을 둘러메곤 터미널로 향했다.

나머지 짐은 다음 달 6일에 올라와 정리하자 생각한다.


시간에 맞춰 고속버스에 올라탄다.

이내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양산으로 바로 가는 차편이 없어 부산 사상터미널에 내려 양산으로 가는, 약간은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다시 여기로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긴장이 풀려서인지 버스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다시 눈을 떴을 땐 구미쯤이었다.

막힘없이 잘 가는 버스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저 멀리 양산이 보였다.

저기 어디쯤 나의 집이 있구나 생각하니 가슴 한편에 뭉클함이 느껴졌다.


5시간이 조금 넘어서 부산에 도착했고, 다시 1시간 정도를 지하철과 버스를 타서 양산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 후 어머니와 이모에게 도착했단 연락을 드렸다.


나의 집은 오랫동안 사람의 흔적을 안 타서 약간은 퀴퀴한 냄새가 났다.

난 에어컨을 켜고, 캔들을 녹였다.

캔들의 향기가 방에 맴돈다...


소파에 앉아 나의 집을 둘러봤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약간은 어색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죄책감이 돋아났다.

그건 어쩌면 인천에서 비겁하게 도망쳤기 때문일까?

뭔가 큰 목표를 갖고 시작한 타향살이는 나의 무기력함만 확인하는 걸로 마무리됐다...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침대에 몸을 뉘 운다.

그날의 밤은 맥주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집이란 안도감 때문인지 보통의 밤이었다.

부디..

내일도 보통이 밤이 이어지길...




어쩌면 난 나의 이런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나의 선택이 다음 길로 가기 위한 이정표가 되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의 밀도가 옅어지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