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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to owl Jun 22. 2024

소설) 악보(惡步) 04

딸아이가 그 사람을 데리고 왔을 땐 내심 안심되었다.

무당집 딸년이라 항상 괄시받던 애를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조심 다루는 게 그녀로서는 내심 부러웠는지 모르겠다.

비록 수양딸이긴 하지만 사위를 맞이 한단 기쁨과 한편으론 지난 시절 그녀가 맺은 그분과의 계약에 딸아이가 희생될 미안함에 순옥의 감정은 복잡 미묘했다.


예비 사위를 방 안으로 들여 살짝 관상을 보니 자식은 보이지 않았다

이는 딸아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 나중에 홀아비 혼자 살면 과부를 들이기도 수월하겠지.’ 하고 순옥은 생각했다.


그는 순옥과 담소를 나누던 중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무슨 말을 꺼내려는 듯했다.

순옥은 이내 딸아이와의 결혼얘기 일 것이라 짐작했다.

딸아이 역시 살짝 숨을 고른다.


“어머님, 실은 미선이가 제 아일 가진 것 같습니다.”

이 말에 순옥은 몹시나 놀랐다

그녀의 놀란 표정에 그는 큰 야단이라도 들은 마냥 움츠렸으나 이내 말을 이었다

“제가 다 잘못 한 겁니다. 미선이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말단 경찰이지만, 미선이도 아이도 먹여 살릴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님… 부디 노여움은 가라앉히시고 저희 결혼 허락해 주십시오”


예비 사위는 넙죽 엎드린 채 자기에게 주어질 벌을 기다리고 있는 것 마냥 그렇게 있었다.


하지만 순옥은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분명 자신의 눈으로 그와 딸아이의 관상을 살 폈을 때 아이는 없었다.

더군다나 딸아이의 생년월시는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그 운세를 풀이했던 터라 순옥은 당황스럽다 못해 이 상황이 두렵다 느껴질 정도였다.


“자네 생년월시가 어찌 되나? 내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니 자네랑 우리 딸 궁합이나 함 봐 볼 테니”

남자는 자신이 혼날 거란 생각과 달리 자신의 생년월시를 묻는 말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으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의 생년월시를 말했다.


역시 순옥이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딸아이가 데리고 온 이 남자 역시 자식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딸아이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어떤 존재란 말인가?

순옥은 딸아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긴장한 얼굴로 순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꼭 잡고 있는 손을 보자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세상의 삼라만상을 자신이 훔쳐본다는 게 얼마나 오만한 행위인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자네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나? 갑작스레 방문한 터라 상이 마땅치 않을 것 같구려…”

그 말에 딸 역시 몸을 일으켜 저녁을 준비하려 했다.

가족이 늘었다.

듬직한 사위와 손주 또는 손녀…

순옥에게 그날 저녁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는 그런 날이었으리라…


“옥아~~~”

다음날 새벽…

순옥이 모시는 분이 방문했다.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


“옥아, 너도 느꼈겠지? 너의 수양딸이 품은 존재 말이다.

인간의 사주에 자식이 없다는 건 종종 있는 일이지. 그것이 애초부터 없다는 건 아니니까, 가령… 사고라든가 병이라든가 그런 것으로 자식을 앞세우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저건 너무나 이질적인 존재다.

너와 나의 계약엔 이런 것이 없었다.

나는 온전한 제물을 원했다.

하지만 만약 너의 수양딸이 출산을 한다면 온전한 하나를 얻을 수가 없게 된다.

불완전한 둘이 될 테니…

출산은 혼의 갈래를 만들어내지.

나뭇가지처럼 뻗어 자신 이전의 모습이 투영되고 계속 뻗어 나간다.

난 뻗지 못하는 가지 하나를 꺾어 내 기분대로 휘두르고 싶을 뿐이다.

이렇게…”

그녀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 순옥에게 강한 바람이 몰아 쳤다.

순옥은 옷깃으로 눈을 닦자 그녀는 어느덧 처녀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옥아…

너는 어찌하고 싶으냐?

이제 난 너의 수양딸을 취할 수가 없다.

이는 곧 너와의 계약을 종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건 너의 잘못이 아니므로 벌을 내리진 않겠다.”


“신령님… 저는 …”

순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수양딸을 제물로 삼으려 했으나 뱃속의 아이는 제 어미를 지킨 것이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거짓어미로 산지 수십 년…

그런 것인가. 그 아이는 지 어미를 지키기 위해 잉태된 것이다.


“괜찮다.

내가 너에게 현현하지 않는다 하여 곁에 없는 것이 아니니…

하지만 조심하거라.

그 아이가 어떤 존재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뭐…

그런 건 그 아이가 태어나면 알겠지…”

순옥에게 신령이라 불리는 존재는 다시 어린아이의 모습이 되어 문밖을 나서고 있었다.


순옥이 손을 뻗는 순간 그녀는 눈을 떴다.

몸이 무겁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가 조금 넘었다.

그녀가 몸을 일으킬 때 자신에게 영력이 조금도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보통 할머니가 되어있었다.


부엌에선 딸아이가 부산스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순옥은 그것으로 되었다 생각했다.


뱃속의 손주가 나의 길을 바로 잡아주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건 몇 개월 뒤 그 아이의 출산 때 알아버렸다.

그 존재는

제 어미를 양분 삼아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와 동시에 순옥이 모셨던 그분 역시 현현했다.

“옥아… 보이느냐…

저 이질적인 존재가…”


순옥은 새파랗게 질린 체 웅얼거렸다.

“왜…

왜… 제 앞에 명계의 아이가 있는 겁니까?”

순옥은 꽉 진 손을 부르르 떨며 남들은 보지 못하는 그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울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딸의 출산 중 사망이라는 소식에 슬퍼하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순옥은 생각했다.

이 아이가 성장한 뒤의 삼라만상은 얼마나 왜곡될 것인가?

하지만 지금 아무 힘도 없는 그녀는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하나…

태어난 손녀가 자신의 태생적 존재를 모른 체 인간으로 살아가거나,

아니면

손녀를 지울 만큼 강한 존재가 등장하길 바라는 것…


순옥의 손녀는 우렁차게 울며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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