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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to owl Jun 03. 2024

소설) 악보(惡步) 03

아... 그러니까 이게 너무 즉흥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저도 좀 경황이 없네요.

그래요.. 사실 난 그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냥 보통 커플이니까 눈살만 좀 찌푸려진 거죠.

그런 거 있잖아요. 길거리에서 뽀뽀하고 지들끼리 좋아 죽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들 중에 하나라도 죽으면 남은 한쪽은 과연 며칠이나 슬퍼할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죽이고 싶잖아요.


그래서 생각했죠.

남자를 먼저 죽일까, 여자를 먼저 죽일까?

그런데 보니까 남자가 비실비실해 보이고, 나보다 덩치도 작고 하니 뭐 어느 쪽을 먼저 죽여도 상관없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저 둘 중에 버스를 타든, 택시를 타든 남은 쪽을 처리하자 생각했죠.

남자 녀석 지지리도 재수도 없지.

남자애가 먼저 여자애 버스를 보내는 거예요.

물론 여자가 버스 자리에 앉자마자 손으로 하트를 하는 둥 보기 싫은 짓은 다했죠.

아니다 나도 옆에 있었으니 나한테 한 하트 뿅이랄까?

그렇게 여자가 먼저 가고,

남자가 버스를 기다리더군요.

그동안에도 계속 카톡질이잖아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몇 달은 못 본 줄 알겠네…크크크…


잠시 후  남자랑 같이 XXXX번 버스를 탔어요.

그 녀석 뒤에 앉아서 보자니 가는 내내 줄곧 여친이랑 카톡을 하더라고요.

녀석, 오늘이 마지막 카톡인데, 뭐 맘껏 하트나 날려라 생각했죠.

그렇게 한 40분 갔나?

버스도 한번 환승하고 어째 저째 그 녀석 동네에 내렸어요.


그렇게 내리고 보니까 잠시 갈등이 생기더라고요.

저 녀석을 죽여 말어?

사실 제가 그 녀석을 죽이면 말 그대로 '묻지 마'잖아요.

그냥 내 기분이 뭐 같으니까 나의 스트레스 해소로 좀 죽어준다는 거?

그래도 살인은 무서우니까, 그냥 내가 뭔가 홀렸구나 하고 돌아서려고 했어요.


근데 전화 멜로디가 울리더라고요.

그랬더니 그 녀석 닭살 돋게 칭얼거리잖아요.

그때 생각했죠.

역시 죽여야겠다.

그 목소리가 너무 짜증 나는 거예요.

그래서 뒤에서 걷다가 통화가 끝나길 바랐는데,

아니 통화가 안 끊기는 거예요.

그리고 더 지랄 같은 건 그 녀석이 통화 중 뒤돌아 보며 절 봤다는 거죠.


그 녀석 뭐가 불만인지 나한테 불쾌한 눈빛이나 쏘고 말이야.

내 얼굴도 봤겠다, 저 눈까리를 확 뽑아 버리자 생각했죠.


더는 안 될 거 같아서 그 녀석이 코너를 도는 순간 앞으로 쑥 나가면서 옆구리를 콱!!!

찌른 거죠.

이렇게 밑에서 위로 간을 찌른다는 느낌?

그 손맛. 아실는지 모르겠네.

이게 또 낚시랑 달라. 그렇다고 고기 써는 그런 맛도 아니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함이 있단 말이지.

암튼 이게 타이밍이 좋은 건 내가 찌르자마자 통화도 끊긴 거야!

더 좋은 건 뭐다?

주위에 아무도 없어.

CCTV도 안 보여.

아니 여기 못 사는 동네도 아닌데 내가 딱 죽이려 드니까 주변에 사람들도 금세 사라지고,

크크크크

믿어져요?

아주 그냥 오늘 즐거운 살인 하세요 하고 하늘이 날을 잡아준 거잖아.

근데 그래도 사람 생명이 질긴 게 헐떡이며 살아있더라고요.

혹시라도 고함치면 곤란하니까 바로 한번 더 쑤셔줬죠.

이렇게!!!


그렇게 죽이고 나니까

시벌 옷에 피가 묻었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본 거죠.

여기 시장골목이야.

그리고 앞에 구제 옷집이 있네.

바로 윗도리는 가방에 넣고, 유리하나 깨서는 구제집에서 하나 장만해 걸쳤죠.


마치 영화 같지 않아요?

스파이물 그런 거 있잖아요.

주인공이 타깃을 죽이고 휘리릭 변장하는 장면 그런 거… 크크킄


이제 남자를 죽였으니 여자를 죽여야 하는데…

여자는 뭐 어디에 사는지 알 수가 있나?

그놈 손가락이랑 스마트 폰이라도 갖고 가야 하나 생각했지만, 재수 없게 위치추적 걸리면 안 되니까…

뭐 어디서든 만나면 그때 그년을 죽여야겠다 생각한 거죠…

이런 걸 순장이라고 해야 하나? 크크크


와이씨

그런데 다음날 뉴스에 떡하니 뜬 거야.

내가 죽인 놈, 학생이라며 학교도 나오고, 수사한다고 그러니 괜히 졸리는 거 있잖아요.

그래서 괜히 나돌아 다니면 체포라도 될까 싶어 며칠은 방구석에서 나오지도 않았어요.

근데 너무 몸이 근질근질한 거 있죠.


어서 그년 목도 그어야 이 근질근질함이 사라질 거 같은데…


어이 아저씨… 듣고 있어요?

아저씨랑 얘기하려고 살살 휘둘렀는데 말이지…

아저씨…

어이어이…

아 시벌, 뭐 이렇게 간단하게 뒈져?

이래서 노숙자는 죽이는 맛이 없단 말이야.

뒤통수 한대 후려쳤다고 바로 뒤지긴…

그놈처럼 팔딱팔딱거려야 후리든 찌르든 맛이라도 나는데…


에이 시벌

돈 2000원이 전부야?

요즘 노숙자들은 동냥질도 안 하나…

카악 퉤~~~


근데 그러나 저러나 존나 신기해…

왜 이렇게 죽일 땐 타이밍이 기가 막힌단 말이지.

이러다 유명인 돼서 나중에 감방에서 책이라도 내는 거 아냐? 크크크

아니지 감방은 무슨 감방.

이렇게 잘 돌아다니며 그날그날 스트레스 푸는 거지…

아 맞다 사진도 찍어둬야 하니까…

아저씨 웃어요… 기임치이~~~

컬렉션도 한 장 장만했고…


얼씨구… 비까지 내리기 시작하네… 역시 타이밍 죽인다니까…


다음 얘기 나눌 상대는 어디서 찾는 담?

잡히면 재미없으니까 좀 쉬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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