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
몇 달째 큰 창에 붙어있다.
그리고 투박한 두 글자 아래에서는 부동산의 상호명과 공인 중개사의 이름, 마지막으로 그의 연락처가 적혀 있다.
임대가 붙어 있던 그 공간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편의점이었다.
주인은 바뀌어도 간판은 망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업종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원상 복귀를 마친 채 금방이라도 새로운 임차인을 맞이할 듯했다.
이렇게 임대가 붙은 것도 이해가 된다.
이 작은 동네에 편의점이 3개나 있었으니 말이다.
이 편의점의 주 고객은 약 700세대가 있는 우리 아파트 단지와 길 건너 조금(?) 더 많은 세대수를 보유한 아파트, 마지막으로 주변의 집들이 전부다.
가장 큰 A편의점은 24시간 영업을, B와 C 편의점은 새벽 1시 전에 영업을 종료한다.
A편의점과 건널목 한 개를 사이에 두고 장사한 B편의점은 당연히 경쟁력이 없었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매장이 큰 것도 아니었다.
매출의 부진은 아무 관련 없는 내가 봐도 알 수 있었다.
A편의점 이전의 일반 마트였을 땐 B편의점도 나름 괜찮았다.
그때는 B편의점이 심야까지 했기에, 필자도 가끔 맥주를 사러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마트가 영업을 종료하고 A편의점으로 탈바꿈하자 24시간 영업과 다양한 상품 전시로 상권을 잡기 시작한다.
2배 이상 넓은 공간, 깔끔한 환경, 다양한 아이템 등 충분히 B편의점의 고객을 끌어올 법했다.
그리고 가장 무시할 수 없는 건 동선의 편의였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부터 B편의점엔 아르바이트생 대신에 사장님으로 보이는 듯한 남자분이 매장을 지키셨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으리라.
이 작은 동네에 노인층이 주류인 시골동네에 편의점이 3개나 있는 건 너무나 비 효율적이다.
그나마 C편의점은 주변에 일반 집과 우리 아파트 단지와 가까워 A편의점과 교집합이 작을 뿐이지만 수입 저하가 아예 없는 건 아닐 것이다.
C편의점은 교집합으로 그치지만 B편의점은 아예 합집합 수준이었다.
종국엔 B편의점은 폐업의 수순을 밝게 된다.
어디 편의점뿐인가?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도 그러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듯 공격적 마케팅을 하고 그렇게 한 곳이 나가면 승자독식의 퍼레이드를 준비한다.
여기저기 '임대'가 붙어있다.
정육점 자리에도,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도, 샌드위치 가게에도
프랜차이즈 브랜드만 갈음만 반복하는 커피점도 있었다.
그렇게 폐업과 오픈, 재오픈만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 나의 유년기시절의 구멍가게가 생각이 났다.
그 시절엔 편의점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편의점이 하나, 둘 생길 때 즈음 든 생각은 비싸다, 24시간 영업한다? 그 정도였다.
물을 사 마신다라는 의식이 아직은 어색했던 그때...
카드결제, 삼성 페이도 없었던 시절...
금액에 맞게 동전이나 지폐를 챙겨나가던 그때의 동네 구멍가게...
두부나 콩나물을 사고 행여 돈이 모자라면 '다음에 갖다 주렴'하고 웃으시던 주인아주머니의 배려는...
바코드 소리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 시절의 정(情)은 상품의 바코드소리와 퉁명한 아르바이트생의 얼굴로 바뀐 지 오래다.
오늘따라 '임대'란 글자가 내 눈에 각인된 이유는
채울 수 없는 시간의 향수에 묶여, 이미 오래전 휑해진 나의 빈 마음이 아닐는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먼지가 둥둥 떠 다니는 내 맘 구석에 '임대'를 붙이면,
어떤 아련한 기억이 이 공허함을 메워줄까...
그렇게 나는 반창고 붙이듯 붙여 본다.
나는 기대한다. 그래서 기다린다.
마음...
임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