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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솔직함

글쓰기와 과학, 기록으로 만나다

by 플루토씨
글을 쓰는 일과 하늘을 관측하는 일은, 얼핏 전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둘 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남긴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오늘 브런치스토리는 꼬꼬무과학 3화와 4화 사이,

아침과 점심 사이의 브런치처럼, 가볍게 떠나는 과학 산책입니다.





솔직함을 기록한다


솔직하게 쓴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어딘가에 글을 게시하면

나를 좋아하는 지인들뿐 아니라 이 글을 싫어할 이들에게도 보여야 하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완전히 벗겨낸 솔직함’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솔직함’을 기록하려 합니다.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실험결과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가 따로 있기도 했으니까요.


게다가 어떤 과학자들은 관측을 기록했지만,

그것을 영원한 진리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관찰을 근거로 하기 보단 자신만의 신념이 작용하기도 했거든요.


ChatGPT Image 2025년 8월 18일 오전 03_12_49.png



사라진 행성, 벌칸


과학사 속엔 이런 기록의 수정이 자주 있었습니다.


1846년, 해왕성을 발견하며 명성을 얻었던 프랑스 천문학자 르베리에는 수성 궤도의 근일점이 조금씩 이동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태양과 수성 사이에 ‘벌칸(Vulcan)’이라는 보이지 않는 행성이 있다고 가정했습니다.


당시에는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었지만,
1915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등장하며 벌칸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는 태양의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만든 효과였던 것이죠.


글쓰기 또한 그렇습니다.
그 순간엔 완벽한 해답처럼 보였던 문장도, 시간이 지나면 더 넓은 시야에서 고쳐지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받아들여지지 못한 관측


17세기, 갈릴레이는 목성 곁에서 네 개의 작은 점—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를 발견했습니다.

이는 “모든 천체는 지구를 돈다”는 믿음을 흔드는 관측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회는 그 기록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국 갈릴레이는 재판까지 받게 되었죠.


재판에서는 순응했지만

그는 “내가 본 것을 기록했다”는 철학과 신념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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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실이든 처음엔 거부되더라도,

기록은 남아 축적되고 시간이 흐르며 힘을 얻습니다.


솔직한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낯설어 거부될 수 있지만, 결국 시간이 그 의미를 증명해 줍니다



다시 그려지는 우주 지도


우주 지도 역시 늘 다시 그려져 왔습니다.

망원경이 없던 시절, 하늘은 신화의 별자리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망원경이 등장하자 별빛은 새로운 세계가 되었죠.

1990년 허블우주망원경은 심우주 속 수천 개의 은하를, 2021년 제임스웹은 초기 우주의 모습과 외계 행성 대기까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의 영향으로 수천년간 지속되어 온 정적인 우주는 역동하는 우주로 바뀌었습니다.


우주 지도는 정지된 그림이 아니라, 도구와 시선이 바뀔 때마다 새로 그려지는 기록입니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적는 이 문장도 언젠가 다시 고쳐질 수 있습니다. 더 넓은 경험을 가진 미래의 제가, 오늘의 기록 위에 새로운 내용을 더할 겁니다.



끝으로


과학자의 실험노트가

“왜, 어떻게, 무엇을 관측했는가”를 남기듯,


글쓰기도 지금의 나를 남기는 기록입니다.


우리가 남기는 건 영원한 진리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변할 수 있는 한 조각의 단면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단면들을 이어 붙여 우리는 더 큰 그림을 만들어갑니다.


별을 바라보던 옛사람들이

자신이 본 하늘을 그림과 이야기로 남겼듯,
저도 오늘의 우주를,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플루토씨입니다.




다음 시간엔, 브런치북 4화

《우주는 시작이 있었을까?》로 다시 찾아올게요.


우주의 영원성과 빅뱅의 시작,

그 물음을 따라 함께 걸어가 보겠습니다.


정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틀림을 인정하면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 질문이 우리를 우주의 시작으로 이끌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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