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다시 하면 돼!
2019년 U-20 월드컵. 현재 라리가 마요르카에서 맹활약하며 꿈의 클럽인 파리생제르망 행을 현실로 두고 있는 이강인을 필두로 한 청소년 대표팀은 FIFA 주관 대회에서는 대한민국 최초로 결승전에 오르며, 아쉽게 준우승을 하였습니다. 준우승이었지만 최초로 결승전에 진출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었는데요. 당시 최우수 선수가 되었던 이강인 선수는 '날아라 슛돌이'의 꼬마에서 국민적 스타로 발돋움하는 기회가 되었었죠.
4년이 지난 2023년. 다시 U-20 월드컵이 열립니다. 지난 U-20 월드컵 대비 언론이나 대중의 관심은 크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골짜기세대라는 말까지 들으며, 기대가 크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청소년 대표는 "One-Team"이 되어 세계 강호들을 차례로 격파, 4강까지 진출하였습니다. 비록 4강전에서 강호 이탈리아와 후반 막판까지 1-1 동점으로 잘 싸우다가 통한의 프리킥 골을 허용하며, 두 대회 연속 결승 진출은 좌절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4강에 진출한 우리 어린 태극전사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냅니다.
2023년 U-20 월드컵 이탈리아와 4강전은 6월 9일 금요일 오전 6시에 시작되었습니다. 출근을 준비하며, 티비를 틀어 응원을 하며 이제 30개월이 된 우리 아들 밥도 먹이며 정신없이 아침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응원을 했지만 결국 패배하게 되었고, 아쉬움에 가득 차 아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아빠: 대한민국이 졌어
아들: 괜찮아. 다시 하면 돼
그렇습니다. 아직 어린 U-20 선수들이기에 기회가 아직 창창합니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이름을 알린 청소년 대표들은 이제 자신의 미래를 향해 훨훨 날아갈 것입니다. 이번 패배에 좌절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서 달리면 되는 거죠. 이 월드컵은 그들의 커리어에 또 다른 발판일 뿐, 끝이 나는 종착점이 아니라는 거죠.
이 사실을 30개월 아기에게 배웠습니다. 아들을 육아하며 느끼는 건데 아기들은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고 화도 내고 짜증도 내지만, 곧잘 다시 좌절을 딛고 다시 도전합니다. 하던 것이 안 되어도 다시 시도하고 시도해서 새로운 걸 해내게 되죠. 막 돌을 지났을 때 집에 들여놓은 작은 미끄럼틀을 못 타서 울던 아기는 이제 미끄럼틀 위를 날아다닙니다. 처음에는 끌고 다녔던 씽씽이 역시 이제 곧잘 타고 다닙니다. 실패에 주저앉아 있지 않고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다시 도전을 하여 성공을 하였기에 아기는 어린이로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저 4강전 패배에 아쉬워하며 졌다고 한탄만 하던 저에게 아기가 철 없이 한 말.
"다시 하면 돼."는 아침 출근길 내내 저에게 울림을 주는 한 마디였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는 요즘의 대학생들을 보면 그저 대견하면서도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 대학은 기말고사 기간입니다. 오늘도 잠시 후에 기말고사 감독을 하러 가야 하는데요. 과제 하나, 퀴즈 하나, 시험 점수 하나, 과목 학점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점수에 좌절하는 학생들을 보면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괜찮아. 이건 단지 하나의 과정일 뿐이야."
물론, 이러한 위로의 말이 누군가에겐 가식적으로 뜬구름 잡는 소리라 생각하겠지만요. 막상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면 대학에서의 하나하나 과정에서 울고 웃고 그리고 성취를 해나갔던 경험들이 하나하나 쌓여 내적 성숙도가 완성이 되는 건데, 우리는 너무 하나의 과정에만 집착하여 성공 혹은 실패, A+ 혹은 F 로만 단순화해서 생각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학생들에게 이건 단순히 과정이고 이를 경험 삼아 더 잘해보자라는 조언이 뜬구름 잡는 소리로 밖에 안 느껴지는 건 사회 구조가 클 겁니다. 유치원부터 시작된다는 입시 경쟁에서 실패는 용인되지 않고 대학까지 달려왔고, 대학만 오면 해결될 줄 알았더니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죠. 여기서 또 낙오하게 되면 뒤가 없다는 생각에 학생들은 학점, 자격증, 인턴 등에 그렇게 목을 멜 수밖에 없는 거죠.
사람은 본능적으로 실패를 하면 다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우리 아들이 저에게 한 말처럼 "또 하면 돼"라는 사회적 풍조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의 사회는 어떠한가요? 대학 입시에 실패하면, 아니 요즘은 중/고등학교 입시도 중요하다죠. 그리고 대학에서 학점을 잘 못 받게 되면? 대기업에 못 들어가게 되면? 연애를 못 하게 되면? 결혼을 못 하게 되면? 자가를 못 마련하게 되면? 우리 사회는 끊임없는 경쟁과 남들과의 비교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패에 다시 해보자 툭툭 털고 갈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차고에서 시작한 구글 등의 사례를 보며 왜 우리는 저러한 혁신 기업이 없는가 묻습니다. 우리는 차고에서 시작한 외국의 스타트업처럼 모험을 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많습니다. 모험을 통한 실패를 받아줄 수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없다는 거죠. 그러니 그 누가 모험을 하고 도전을 하겠습니까. 그저 잘 닦여진 길에서 남들보다 빨리 달려 제일 앞에 가는 것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거죠. 뭐 이런 길을 달려온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요.
실패를 딛고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주자라고 하는 얘기는 쉽습니다. 그 대안을 만드는 게 어려울 뿐이죠. 뭐 여기에서 대안을 만들자는 것 보다는 경쟁 위주의 사회에 숨통을 트여줄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우리 어른들이 생각해 보자는 거죠.
U-20 월드컵 4강전을 보며 그 나이 또래의 우리 학생들이 떠올라, 주저리 주저리 해보았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며 암기하고 있을 우리 학생들 파이팅!
아침에 들은 우리 아들의 코멘트를 가족 단톡방에 공유해봤습니다.
무지와 제이지는 감탄하는 반면에 어피치는 현실적입니다. 다시 하자고 시키는 현실적인 어른은 과연 누구일까요?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