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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Jun 25. 2023

학생들 닉네임에서 알아보는 MZ대학생 성향

기말고사 답안지 제출에 쓴 본인 닉네임

안녕하세요, 슈퍼피포입니다.


온라인 세상이 된 후, 흔히 볼 수 있는 닉네임 소개이다. 온라인에서는 실명보다는 본인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닉네임을 쓰는 것이 더 흔해졌다. 온라인 세상 이전에는 필명이라는 것이 본인의 정체성을 나타냈다. 하지만 오프라인 세상에서는 본명으로 소통을 많이 한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모임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상, 오프라인에서 ‘저는 슈퍼피포입니다.‘라고 인사하는 경우는 없다.


내가 수업하고 연구하는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최 아무개 교수로, 학생들은 각자 이름을 가지고 소통을 한다. 하지만 최근 학생들의 닉네임을 조사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바로 기말고사




중간고사와 달리 기말고사는 시험이 끝나면 종강이다. 학생들을 볼 수가 없다. 즉, 중간고사 성적은 이후 수업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기말고사 성적은 이후 수업이 없으니 성적을 오프라인으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학교의 온라인 수업 관리 도구인 LMS는 오프라인으로 진행된 시험의 성적을 학생 개인이 확인하는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말고사 성적 공지 없이 바로 최종 학점만 알려주는 것은 학생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학생들에게 공지사항에 기말고사 점수를 엑셀로 업로드해주기로 하였다. 여기서 문제. 학생들이 점수를 확인하려면 본인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름 - 점수로 공개하는 건 프라이버시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수업을 함께 듣는 학우들에게 점수가 공개되는 걸 원치 않는 학생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럼 대안은 무엇일까? 나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정도의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1. 학번 - 성적으로 공개한다.
2. 학번과 전화번호를 해시값으로 만든 후, 해시값-성적을 공개한다.
3. 학생이 답안지 제출 시, 닉네임도 적어서 제출하고, 닉네임- 성적 공개


1번 방법이 젤 쉬우나 학번은 친구들끼리 알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 바로 제외. 2번 방법은 해시값을 통해 나와 학생만 아는 암호를 만들 수 있으나, 해시를 푸는 방법을 모르는 학생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간혹 전화번호와 학번 같은 건 서로 알 수도 있으니 보안성이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 2번도 제외.


그래서 나는 기말고사 답안지 한켠에 닉네임도 함께 제출하라고 공지하였다. 그리고 채점을 해보니 평범한 닉네임부터 기상천외한 닉네임까지 아주 다양하였다. 마치 본인의 개성을 대변한다고나 할까? 학생들 닉네임을 한 번 분류해 보면서 다양한 학생들의 개성을 함께 엿보자.




1. 제일 무난한 닉네임형


학생들이 제출한 닉네임의 약 40% 전후는 유튜브, 블로그, 브런치 등에서 흔히 쓸법한 닉네임이었다. 혹은 귀여운 애완견 이름 느낌? 마치 기안84, 빠니보틀, 덱스와 같이.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과거 닉네임은 블로그, 유튜브 등에서만 쓰고 공중파에서는 본명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방송 활동명도 필명인 기안84나 유튜브 활동명인 빠니보틀 등을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학생들도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닉네임을 적어 제출하였다. 닉네임을 보고 그 뜻이 바로 유추되는 경우도 있었고, 이건 무슨 뜻의 닉네임일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하튼 본인의 이름을 귀엽게 변형한 닉네임이나 뜻은 알 수 없지만 유튜브, 블로그 닉네임과 유사한 형태를 적어낸 학생이 제일 다수를 차지하였다. 마치 온라인 게시판을 옮겨 놓은 것과 같이.



2. 조금은 심심한 아이디 형태


이 경우는 1번 닉네임과는 유사하면서도 조금 다른데, 본인 이니셜이나 영어 이름 같은 것을 적어낸 것이다. 마치 김민수 학생이 mskim 을 적어내거나, 영어이름인 피터나 제인을 적어낸 경우가 여기 속한다. 비중으로는 약 20% 정도?


여기에 속하는 닉네임들은 잘은 모르지만 넘겨짚자면 효율을 중시하는 타입이 아닐까? 닉네임 고민 할 시간에 시험 문제에 집중하자! 내가 오버해서 생각하는 것이겠지만 학생들의 아이디와 같은 닉네임을 보며 혼자 잠시 심리테스트를 해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닉네임들이었다.



3. 본인 소망을 닉네임으로 제출


‘재수강은 노’

‘중간만 가자‘


위와 같은 형태의 눈에 띄는 닉네임도 몇 개 있었다. 학생들의 절박한 소망을 표현한 닉네임. 안타깝지만 저런 닉네임을 제출한 학생들의 성적은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간만 가자는 거나 재수강만은 피해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건 본인도 아는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것을.



4. 간절한 소망을 담은 닉네임


‘노력만은 A+’

‘시험 너무 어려워 ㅠㅠ‘


3번 유형과 비슷하지만 다른 결을 보여주는 학생들이다. 노력만은 에이뿔. 얼핏 봤을 때는 성적이 나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고, 노력만이라도 봐달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노력은 했지만 시험이 어렵게 느껴졌다고도 해석이 가능하다. 두 번째 닉네임. 시험 너무 어렵다는 학생도 어려워서 시험을 잘 못 봤다는 의미처럼 보인다.


시험을 어렵게 느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학생은 시험이 어렵다는 것 자체를 알 수가 없다. 시험이 어렵다는 것을 아는 학생들은 십중팔구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역시나 ‘노력만은A+’ 학생은 노력뿐만 아니라 성적도 A+을 받았고, 시험이 어렵단 학생 역시 고득점을 받았다. 간절함이 있다는 것은 노력을 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기타) 사회생활 잘하는 유형


수업시간에 예를 들다 개인 선호를 밝힌 바 있다. 어쩌다 보니 야구는 롯데자이언츠, 축구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를 좋아하는 것을 챗GPT에 대해 이야기하며 밝힌 바 있다.


이걸 듣고 그런 건지 닉네임에 롯데자이언츠의 상징인 갈매기를 넣은 학생. 맨유를 닉네임에 넣은 학생도 있었다. 성적에는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학생들의 살짝은 보이는 의도가 밉지 않고 귀엽게 보였다.




닉네임만으로 학생들의 개성을 속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MBTI를 보듯 약간의 성향은 느껴지는 것 같아 쉽지 않은 기말고사 채점에 작은 즐거움이었다. 이제 채점도 끝났고 성적 공시도 끝났고 이제 방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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