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본 글에 등장하는 사례는 실제 사례를 각색한 것이며, 한 학교에서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교수 커뮤니티 및 타학교 지인 교수님들과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례임을 미리 밝힙니다.
이제 2023학년도 학사 일정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특히나 성적 마감 처리가 끝이 났기에 본격적인 방학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도 교수에게도 가장 민감한 부분은 성적이다. 장학금이나 취업에 학점을 많은 영향을 주기에 학생들은 상당히 성적에 민감하다. 그래서 교수들도 성적을 주는 데 있어 신중에 신중을 가하고, 공정함을 1순위 가치로 두고 있다.
나 같은 경우에도 학기 시작할 때 성적을 어떻게 줄 것인지에 대한 공지를 미리 한다. 절대적 기준을 강의계획서에서부터 공개하는 것이다. 또한, 중간고사의 경우 답안지를 직접 확인하게 하고, 기말고사 역시 점수 공개 및 희망 학생에 한해 본인의 답안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기말고사 이후 바로 방학이기에 학교에 답안지를 보러 오는 학생들에게만 공개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점수 분포에 대해서도 중앙값뿐만 아니라 4 분위 점수를 다 업로드하기에, 학생들은 본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성적에 대한 클레임이다. 성적 공시 이후, 며칠간 교수들의 메일함은 불이 난다. 내가 직접 겪은, 그리고 주변의 여러 학교 교수님들이 겪은 사례를 통해 학생들의 최근 성적 클레임 양상을 알아보자.
성적 공시 이후, 메일을 보내오는 다수의 학생들은 예의가 바르다. MZ가 어쩌고 할 학생들은 후술 할 몇몇 학생들 밖에 없다. 많은 학생들은 자신이 전체 점수에서 몇 등, 정확하게는 몇 퍼센트의 위치에 해당하는지를 궁금해한다. 대부분의 대학이 상대평가를 실시하고 있고, A학점은 30퍼센트, A~B 학점은 70퍼센트까지 부여할 수 있는 것이 규정이다.
코로나 시기 대학들은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는 것을 보완하고자 절대평가를 실시한 바 있다. 2020~21년 대학을 다닌 학생들은 원격수업을 받은 세대이며 동시에 학점 인플레를 겪은 세대이다. 그렇기에 상대평가로 전환된 현시점에서 본인의 학점에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줬던 걸 빼앗긴 기분일 것이기에.
특히나 A와 B 경계, B와 C 경계에 위치한 학생들의 문의가 많다. 또한 A0나 B0를 받은 학생들은 +를 받은 학생과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궁금해한다.
이러한 성적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예의 바른 메일을 보내는 학생들도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예의 바르게 물어본다. 자신의 향후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메일을 보낸다면서, 어디서 감점을 받았으며, 자신의 등수는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는 식으로 물어보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에게는 자연스레 보완해야 할 점을 자세히 피드백하게 된다.
일부는 다짜고짜 자신이 몇 등 했냐고 물어본다. 물론 이러한 문의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자신의 등수가 궁금할 수 있기에 친절히 회신을 해준다. 그런데 이런 문의를 하는 학생들 중 또 일부는 열불 나게 하는 답장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바로.
어떤 학생에게 한 교수가 퍼센트 기준으로 어느 위치인지 알려주었다. 그러니 돌아온 메일.
"성적을 B+로 올려주실 순 없나요?"
보통 학점을 올려달라고 하는 경우는 A0나 B0를 받은 학생들이 +를 만들기 위한 경우가 많다. 간혹 B학점 대이면서 A를 받을 수 없는지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학칙상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대부분 알기에 이런 문의는 거의 없다. 대신 제로나 플러스 비중에 대한 학칙은 없는 학교가 대부분이기에 제로를 받은 학생이 플러스를 받기 위해 교수에게 요청을 하는 것이다.
성적을 올려달라고 하는 학생들의 유형도 다양하다.
우선, 인정에 호소하는 학생들이다. 수업도 열심히 들었고, 이것도 열심히 했고, 저것도 열심히 했지만 시험 볼 때 몸이 안 좋았다고 하는 학생. 부동산 PF 때문에 나라 경제가 힘들어져 취업 걱정 때문에 학업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학생. 온라인 시험에 익숙지 않아 시간 배분을 못해 시험을 망쳤다는 학생. 교수님 수업이 너무 좋아 열심히 들었지만 결과가 잘 나오지 못해 속상하다는 학생 등. 인정에 호소하며 자신이 받은 B0 혹은 A0 학점에 붙은 제로를 플러스로 바꾸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장학금 핑계를 대는 학생들도 있다. 외부 장학금이나 국가 장학금을 받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 학점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목의 B0 학점이 B+가 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제발 학점을 올려 받을 수 없냐고 요청을 하는 경우도 여러 곳에서 목격된다. 어디 학점 클레임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인지.
그냥 막무가내형도 있다. 자신이 B+를 받기 위한 방법이 없는지 물어오는 학생도 있고, 다짜고짜 학점 올려주시면 안 되냐고 하는 학생도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성적 클레임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교수도 사람이다 보니 성적을 채점하는 과정에서 실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실수는 클레임으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여기서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유로 학점을 올려달라고 하는 행위이다. 성적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나가게 된다. 그런데 본인이 근거 없는 청탁으로 성적을 올리게 되었을 때 발생하는 공정성 이슈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메일들을 받고 동료 교수님들과 얘기를 나눠본다. 그러면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일부 학생들은 자신이 들은 모든 교과목 교수들에게 성적 클레임 메일을 보내기도 한단다. 마음 약한 교수가 한 과목이라도 올려줄 수 있기에 밑져야 본전 식으로 던져보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는 극소수이지만 충격적이긴 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이러한 클레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선배 교수님들은 당연히 무시하라고 이야기한다. 성적을 매기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고, 거기에 맞춰 채점을 한 것인데, 여기에 학생이 클레임을 했다는 이유로 성적을 올려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생들의 근거 없는 성적 향상 요구는 '부정 청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특히나 '김영란 법' 발효 이후 교수들이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이 바로 부정 청탁이기에, 학생들의 요구는 무로 칼 자르듯, 단칼에 거절해야 한다.
오는 1학기 수업부터는 학기 첫 수업 때 공지를 해야겠다.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단순 성적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경우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