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귀가 간지러운 이유
요즘 들어 귀가 자주 가렵다. 예전에도 에어팟 때문에 귀가 간지럽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 링크 : 에어팟 끼고 일해도 될까요? ) 이번에도 에어팟 때문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이번에는 누가 어딘가에서 내 욕을 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이미 정황 증거는 확보되었다. 150명이 수강하는 교과목의 기말고사 문제 때문에 에타(에브리타임의 약자로, 대학생들 익명 커뮤니티)가 불타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대학원생들이 해준다.
그렇다면 기말고사 때문에 욕을 먹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공 교과목에는 전공필수가 있고 전공선택이 있다. 전공필수는 졸업을 하기 위해 반드시 들어야 하는 교과목이고, 전공선택은 말 그대로 학생들이 듣고 싶으면 수강하는 교과목이다. 이 두 과목 중 어느 교과목을 강의하는 게 더 편할까?
당연히 전공선택 강의가 훨씬 편하고, 더 신이 난다. 기본적으로 선택 교과목은 학생들이 듣고 싶어서 제 발로 찾아오는 과목들이다. 주로 강의하는 데이터 사이언스에 흥미가 있는 학생들이 수강하기에 수업 집중도가 좋다. 질문도 많이 하고, 학기가 마칠 때쯤이면 적극적인 학생들은 방학 때 더 공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한다. 대학원의 늪으로 빠져드는 전형적인 과정이다. 아 물론 대학원은 아주 천국 같은 곳이다.
하지만 전공필수의 경우 모든 학생들이 수강을 해야만 한다. 내가 가르치는 전공필수 교과목 역시 우리 학부생들은 졸업 전에 반드시 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해당 분야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도 억지로 수강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수업 집중도도 선택과목에 비해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필수 교과목에서는 전공에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개론 내용들만을 다루게 된다. 즉, 수업의 재미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전공필수 수업은 진행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전공선택 교과목은 시험 문제를 내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다. 기초적인 것부터 응용적인 부분까지 출제를 하면 된다. 아이들도 열심히 공부하기에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하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전공필수 교과목은 난이도 조정부터 쉽지 않다. 게다가 나는 현재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 올해 왔기에 아직 학생들에 대한 파악이 덜 된 상황.
150명이 수강하는 거대 과목의 중간고사 문제를 내야한다. 아이들의 참여도가 높지 않았기에 기초적인 내용을 위주로 문제를 출제하였다. 그런데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30점 만점에 25점이 평균이 나와버린 것!
너무 문제가 쉬워 변별력이 떨어지고 만 것이다. 만점을 받은 학생들도 다수이고, 1~2점 차이 점수대에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성적을 매길 때도 문제가 생긴다.
학생들을 너무 과소평가한 나머지 중간고사 난이도 조정에 실패하고 말았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 같기에 기말고사는 난이도를 조금 올려서 출제를 했다. 그렇게 채점을 해 본 결과.
60점 만점에 평균이 27점이 나와버렸다. 기말고사 종료 직후, 에브리타임이 불탄 이유이다.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는 성토가 쏟아졌다고 한다. 다행인 건 에브리타임에 접속을 할 수 없어 마음 아픈 글들을 직접 보지 못한다는 것. 그걸 봤다면 쿠크다스 같은 나의 멘탈은 바사삭 녹아버렸을 것이다.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아직 첫해이다 보니 학생들에 대한 파악이 잘 되지 않아 난이도가 널을 뛰고 말았다. 내년에는 올해의 실수를 본보기로 삼아 난이도를 잘 조절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들은 학생들에게 미안할 뿐. 하지만 성적은 어차피 상대평가이기에 성적을 받는 입장에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온냉탕을 오고 간 시험을 봤다는 점이 마음 아플 뿐.
아무튼 기말고사 성적 공지를 마쳤다. 난이도에 충격받은 학생들이 자신의 점수를 보고 또 충격을 받고, 평균을 보고 또또 충격을 받을 장면이 눈에 선하다. 에타에서 또 욕을 먹겠지? 어쩌겠는가 나의 업보인 것을.
아무튼 이제 방학시작이다! 욕먹으며 상콤하게 시작한 방학! 즐겁게 보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