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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최애 아이스크림의 유래

배스킨라빈스 31

by 최재운

여느 아이들처럼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36개월 우리 아들. 최대한 자극적인 음식들은 늦게 알려주고픈 마음에 맥도날드의 우유 아이스크림만 먹어오다가, 어느 날 가게 된 배스킨라빈스! 신세계를 접한 것 마냥 여러 개 아이스크림을 한 번에 먹는 것을 보면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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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만 먹다 배스킨라빈스를 접하고 문화충격 받은 우리 아들


아이스크림 가게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배스킨라빈스일 것이다. 이 프랜차이즈는 1948년 미국인 2명, 어바인 라빈스와 버턴 배스킨이 각각 운영하던 아이스크림 가게를 합쳐 탄생한 것이다. 합칠 당시 동전 던지기를 했는데 배스킨이 이겨서 배스킨라빈스가 된 것은 나름 유명한 이야기이다. 만약 라빈스가 이겼으면, 우리는 라빈스배스킨이라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을 것이다.


배스킨과 라빈스는 동업자이기 이전에 혈연관계로 이어져 있었다. 배스킨이 라빈스의 여동생과 결혼한 것. 하지만 이보다 더한 인연은 두 사람 모두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으로 참전했다는 것.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둘의 임무가 미 해군을 위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것!

심지어 아이스크림 보급함 쿼츠에서 말이다!






누구보다 아이스크림에 진심이었던 미 해군


배를 타는 건 중노동 중 중노동이다. 대항해시대 선원들이 럼(Rum)이라는 술을 배급받았던 것은 썩지 않는다는 특성도 한 원인이지만, 고단한 배에서의 노동을 이기는 데에는 알코올이 필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해전에 참여한 미 해군에게 내려진 불호령. 바로 술이 금지된 것이다. 해군 장병에게 술이 금지된다는 것은 치명적인 사기 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 해군이 도입한 것이 바로...


아이스크림 배급이다.

(미 해군은 잠수함에 선텐 기기를 보급할 정도로 복지(?)에 신경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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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은 술을 먹지만, 미 해군은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문제는 군함에 함포를 넣는 것만으로도 공간이 부족했던 것. 그나마 순양합급 이상의 함선은 아이스크림 기계를 넣을 공간이 조금은 있었지만, 구축함급 이하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래서 미 해군에서 만든 함선이 바로 쿼츠(Quartz)이다. 이 배는 그 어떤 군사적 임무도 수행하지 않고 아이스크림 생산 및 보급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당초에는 다른 목적으로 건조되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이스크림만! 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이스크림 팩토리 쿼츠. 이 배는 한두 척 만들어서 생색을 내는 수준이 아니라, 무려 12척이 운용되었다. 앞서 언급한 배스킨과 라빈스가 해군에 입대하여 근무한 곳도 바로 이 쿼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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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팩토리 쿼츠 군함의 모습


미 해군이 누구보다 아이스크림에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다양한 일화들이 있다.


필리핀 해전에서 많은 파일럿들이 격추, 연료 부족 등의 이유로 바다상에 추락하고 만다. 당시 미 해군 함대를 지휘하던 마크 미처 제독은 이들의 구조 작업을 위해 아이스크림을 미끼로 건다. 바로 파일럿을 구조하는 배에는 아이스크림을 좀 더 배급하겠다고 선언한 것! 실제로 당시 전투비행대 대대장이던 킬러 케인(본명은 윌리엄 R. 케인)을 구조한 구축함에서는 본대에 다음과 같은 통신을 남긴다.


"킬러 케인의 몸값은 아이스크림 몇 갤런인가?"


구조된 파일럿이 비행대장이라는 주요 직책이었기에, 그를 구출한 구축함은 무려 25갤런, 약 95리터의 아이스크림을 받았다. 이후 미 해군의 많은 배들은 파일럿들을 구하는 데 더 적극적이 되었다고 한다. 동료를 구출하는 목적도 있지만, 아이스크림을 더 먹기 위해서 말이다.


또 유명한 일화는 새치기 사건.


전함 뉴저지에서 아이스크림을 배급할 때 벌어진 일이다. 아이스크림 배급시간이 되면 장교고 병사고 할 것 없이 모두 줄을 서서 기다린다. 그때 소위 한 명이 병사들 사이를 새치기하며 끼어든다. 이 순간 뒤에서 들린 욕설. 수병이 장교에게 욕설을 하는 것은 상상도 못 하기에 누군가 싶어 돌아봤더니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바로 포스타 윌리엄 홀시!


참고로 이 홀시 제독은 태평양전쟁을 좋아하는 역덕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로, 레이테 해전에서의 삽질과 태풍에 대한 대처 미흡으로 큰 비난을 받는 제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미 해군을 상징하는 베테랑 중 베테랑으로 미 해군 원수에까지 오르는 입지전적인 인물. (Kill Japs, KILL MORE JAPS 로도 유명한 황소이자 싸움닭이 바로 홀시 제독이다)


그 유명한 홀시 제독도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는데 겨우 소위가 새치기를 하니 욕설이 날아드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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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아이스크림을 당근으로 건 미처 제독 / (우) 새치기는 용납 못하는 홀시 제독






아이스크림과 같은 재밌는 일화로 2차 대전을 풀어보았지만, 전쟁은 그 자체로 끔찍한 일이다. 인명 피해는 물론 자원 소모까지 어마어마한 재앙 그 자체가 전쟁이다. 당시 미국 등의 연합국과 전쟁을 벌인 추축국인 독일과 일본은 자원 고갈로 어마어마한 고난을 겪는다. 민간인은 물론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에게 줄 식량도 부족한 실정이었는데, 미국은 아이스크림까지 나눠주니 상대편의 사기 저하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유럽의 서부 전선에서도 미군의 케이크를 보고 충격을 받는 독일군 이야기가 있다)


식량 부족 문제는 추축국뿐만 아니라 연합국인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영국이 선택한 방안은 아이스크림을 자국 내 판매 금지한 것. 대신 선택한 것이 바로..


아이스 생당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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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아이스크림 마구 먹는 미 해군 파일럿 / (우) 아이스 생당근을 먹는 영국 어린이



전쟁 중임에도 아이스크림을 배급하는 천조국 미국의 위엄 덕분에 우리는 배스킨라빈스라는 아이스크림을 만날 수 있었다. 끔찍하고 처참한 결과를 낳은 2차 대전의 몇 안 되는 긍정적인 점이 아닌가 싶다. 물론 배스킨라빈스가 없어도 되니 전쟁이 없으면 더 좋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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