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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Jan 22. 2024

컴퓨터의 어원을 아시나요?

벌써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는 아이

내일이면 37개월이 되는 우리 아이는 컴퓨터에 관심이 많다. 엄마와 아빠가 집에서 컴퓨터로 일할 때마다 유심히 지켜본다. 아직 우리 아이에게 컴퓨터는 놀이의 대상이 아니라 엄빠가 일할 때 쓰는 도구이다. 아직 컴퓨터로 노는 모습을 안 보여줬기에 그 진가를 백 프로 알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컴퓨터가 신기한지 계속 지켜본다. 두 눈이 빠지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컴퓨터 뚝딱뚝딱하고 있다고 아빠를 부른다. 가봤더니 아래 사진과 같이 자신만의 컴퓨터를 만들어 놀고 있다. 블록 담는 통은 모니터, 동그란 스티커 종이는 키보드란다. 그러면서 타이핑하는 모습을 흉내 내며 좋아하는 녀석. 본능적으로 컴퓨터에 아직 모르는 재미난 것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만 같다.


자신만의 모니터와 키보드를 가져와 컴퓨터 놀이 중




오늘날 사회에서 컴퓨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컴퓨터 하면 우리 아이처럼 모니터와 키보드, 그리고 마우스가 갖춰진 익숙한 전자 장치를 떠올린다. 하지만 컴퓨터의 어원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단어의 역사는 매일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한다.


컴퓨터 단어부터 살펴보자. 'Computer'라는 단어를 뜯어보면, 계산하다는 뜻의 'Compute'에 '-er'이라는 접미사가 붙어있다. 그대로 해석해 보자면 계산을 수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컴퓨터라는 단어는 사람을 지칭했다. 말 그대로 '계산자(尺 or 者)'이다.


컴퓨터라는 단어는 약 17세기 경부터 사용되었다. 뉴턴의 위대한 발견 이후 물리학에 본격적으로 수학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또한, 천문학, 탄도학, 항해에 있어서도 복잡한 수식 계산이 요구되었다. 심지어 초기 금융 시스템에서도 수학을 필요로 했다. 이에 학자들은 단순 계산을 위한 계산원들을 고용했다. 수학적 계산만을 담당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컴퓨터가 역사에 등장한 것이다.


20세기 초반까지, '컴퓨터'는 주로 인간 계산자를 의미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동안, 인간 컴퓨터들은 군사 작전과 무기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복잡한 궤도 계산과 탄도 표를 만드는 데 수많은 인간 계산자들이 동원되었다. 이들은 여성들이 많았으며, 그들의 계산 능력은 전쟁의 여러 측면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손으로 계산 작업을 하는 인간 컴퓨터들


그렇다면, 이들 인간 컴퓨터는 손으로 그 복잡한 계산을 했을까?


물론 아니다. 인간이 계산을 기계로 대체하고자 하는 노력은 상당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먼저 살펴볼 것은 바로 1630년 영국의 수학자 윌리엄 오트레드가 처음 발명한 계산자(slide rule)이다. 계산자는 로그 스케일을 도입하여 덧셈, 뺄셈은 물론 곱셈과 나눗셈 같은 복잡한 계산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계산자의 핵심 개념은 바로 '커서(cursor)'이다.


우리가 컴퓨터에서 쓰는 용어인 커서의 어원이 계산자의 커서이다. 커서는 슬라이드 룰 위를 이동하며 다양한 스케일 사이에서 정확한 값을 찍어내는 투명한 지시자였다. 아래 그림에서 움직이는 아들자(slide)의 눈금 같은 것이 바로 커서이다. 오늘날 쓰는 컴퓨터 커서와 유사한 모양이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저 계산자와 커서를 움직여 사칙연산을 수행할 수 있다.


계산자와 커서


계산자는 이후 등장하는 기계식 계산기에 밀려 점차 사용이 줄어들지만, 20세기 중반까지도 비교적 활발히 활용이 된 도구이다. 20세기 초반 엔지니어들은 계산자를 이용하여 다리의 하중 계산, 항공기 연료 소모량 추정, 심지어 로켓 설계에 필요한 복잡한 계산까지 수행하였다.


하지만 계산자는 정밀 계산에 들어가면 오차가 발생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기계식 계산기이다. 파스칼과 라이프니츠가 발명한 계산기가 유명하지만, 20세기 중반 널리 활용된 기계식 계산기는 영국의 수학자 찰스 배비지가 고안한 차분기관과 해석기관을 기초로 한다. 이후 천공카드가 등장하고, 기계식 계산기와 시너지를 내며 복잡한 계산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특히 1940년대 2차 대전에서 이들이 세운 공은 어마어마하다. 아직 전자식 컴퓨터가 발명되기 전이었기에 기계식 계산기는 유일하게 믿을 만한 계산 기계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모든 국가의 전력을 전쟁에 쏟아부었다. 전쟁 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더불어 대규모 전쟁 수행을 위한 작전 계획을 수립해야 했다. 이를 위해 수많은 학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복잡한 수식을 만든다. 그리고 이를 '인간 컴퓨터'인 계산원에게 넘겨준다. 그러면 계산원은 기계식 계산기를 활용해 수식을 푼다. 이렇게 도출된 최적의 작전 계획을 통해 전쟁이 수행된다. 이 과정을 통해 미국은 태평양전쟁과 서부전선이라는 양면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르게 된다.


여기서 파생한 학문이 바로 'Operation Research', OR이다. 오퍼레이션은 군사 작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군사 작전의 효율화를 고민하다가 나온 이론들이 OR이라는 학문으로 집대성된다. 그리고 이 OR을 나를 포함한 많은 산업공학도 학생들이 아직도 배우고 연구하고 있다.


1940년대 널리 활용된 기계식 계산기 ( 출처: 국방 TV 유튜브 '역전다방' )




이렇듯 컴퓨터라는 단어의 뿌리에는 인간의 지적 노력이 녹아 있다. 처음에는 단순 계산을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키던 이 단어가 기계적 발명을 거치며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리고 1950년대 이후에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전자기술과 융합하여 오늘날의 컴퓨터가 탄생한다. 더 이상 우리는 컴퓨터라는 단어에서 사람이라는 존재를 연상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컴퓨터의 어원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끊임없는 탐구와 혁신의 역사를 되새길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 보겠다. 전자식 컴퓨터는 1950년대에 나왔지만, 1960년대 NASA의 우주 탐사 계획 당시에도 말 그대로 컴퓨터, 인간 계산원의 활약이 엄청났다. 흑인 여성들이 위주가 된 이들 계산원은 우주선의 궤도 비행경로를 손으로 계산을 한다. 대중들은 잘 모르는 미국 우주 탐사의 숨은 주역들이다.


2017년 개봉한 영화 <히든 피겨스>는 NASA에 근무한 흑인 여성 계산원을 다루고 있다. 극 중 주인공 중 한 명인 도로시 본은 NASA 유색인종 계산팀의 리더이다. 그녀는 손으로 복잡한 수식을 계산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NASA에 IBM 컴퓨터가 도입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컴퓨터가 도입이 되면 계산원들의 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당시 사회는 흑인이자 여성인 그들을 계속 고용하지 않을 것이라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그녀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손으로 계산하던 그녀들이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다


흑인 여성 계산원들이 살아남을 길은 컴퓨터를 습득하는 것이라 생각한 도로시 본은 IBM과 프로그래밍 언어 포트란을 독학한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NASA 전산 분야의 선구자로 자리 잡게 된다. 빠른 변화의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빠르게 실천에 옮긴 것이다.


마치 오늘날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인한 변화를 보는 것만 같다. 최근 다보스포럼에서 언급이 된 것처럼 프로그래밍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인공지능 때문이다. 이미 인공지능 없이 코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1년 만에 세상이 바뀌었다.


전자식 컴퓨터가 도입이 되며 계산원이 사라진 것처럼,

인공지능이 도입이 되면 코더(coder)가 사라질 수 있다.


세상의 변화에 끝없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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