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52를 한국에서 보다
지난 주말 아이와 함께 박물관에 갔다. 그간 자주 가던 국립중앙박물관이 아닌 그 위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에 방문했다. 아빠의 사심이 가득 섞인 선택이었다. 전쟁기념관 실내에는 우리나라가 그간 겪은 전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기록해놓고 있다. 실내도 전시가 잘 되어있지만 전쟁기념관의 메인은 야외 전시관이다.
야외에는 연평해전에 참여한 참수리357호정을 비롯해 2차 세계대전, 625 전쟁 등에 참여한 다양한 비행기, 탱크, 전차 등이 전시되어 있다. K-1 전차도 위용을 드러내고 있고, 1983년 북한 공군의 리웅평 대위가 몰고 귀순한 MiG-19 전투기도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그중 단연코 눈길을 끄는 것은 'B-52 폭격기'이다.
전쟁기념관의 B-52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 전신인 B-29 슈퍼포트리스에 대해 살펴보자. B-29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개발한 장거리 전략 폭격기로, 태평양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본과 결전을 벌이던 미국은 일본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단이 필요했다. 이에 육군 항공대는 B-29 프로젝트에 착수했고, 무려 30억 달러 이상의 예산이 소요되었다. 맨해튼 프로젝트가 약 20억 달러, VT신관(근접신관) 개발에 약 10억 달러가 투입된 것을 보면, B-29 프로젝트가 얼마나 어마어마했는지 알 수 있다.
B-29 개발을 적극 주창한 건 미 육군 항공대 사령관이었던 헨리 아놀드이다. 일본이라는 섬 나라를 공격하는데 전략폭격이 필요하다 여긴 그는 B-29개발을 강하게 요청한다. 당초 B-29는 일본의 핵심 군사/산업 시설을 전략적으로 폭격하는데 활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오지마와 오키나와에서 벌어진 상륙전에서 미군은 엄청난 피해를 보았고, 일본군의 목숨을 버리는 '가미가제' 전술에 학을 띄고 만다. 작은 섬인 이오지마와 오키나와도 이리 상륙하기가 힘든데, 1억 옥쇄를 외치는 일본 본토에 상륙했다가는 엄청난 인명 손실이 발생하는 것은 자명한 일. 그래서 헨리 아놀드는 결심한다. 사이판과 이오지마에서 폭격기를 출항시켜 일본 본토를 무차별적으로 폭격하기로. 타깃은 일본의 모든 도시이다. 말 그대로 융단 폭격이다. 이를 위해서는 더 높은 고도에서, 더 먼 거리를 비행하여, 더 많은 폭탄을 쏟아부을 폭격기가 필요하다. 그것을 실현시킨 것이 바로 B-29이다.
B-29는 말 그대로 일본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여에 투입된 것도 B-29이다. 그리고 우리는 의외로 잘 모르지만 원폭 투여 이전에 일본을 쑥대밭으로 만든 대공습에도 B-29는 그 위용을 뽐낸다. 특히 1945년 3월 10일 도쿄대공습에서 B-29가 뿌린 소이탄에 1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다. 히로시마 원폭 사망자수보다 많은 수이다. (이후 방사능 피폭까지 감안하면 원폭 피해자수가 더 많지만)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B-52 폭격기는 B-29의 후속작이다. B-52는 B-29보다 무려 약 1.5배 크다. 속도와 항속 거리 역시 B-29를 아득히 뛰어넘는다. B-52가 실전에서 활약한 곳은 바로 베트남 전쟁이다. 특히, 라인배커 작전의 주력으로 활약한 B-52는 북베트남을 융단폭격하며, 이는 파리 평화 협정으로 이어진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 공군을 이끌던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이런 말까지 한다.
"베트남을 폭격해서 석기시대로 돌려놔야 합니다"
베트남 전쟁 내내 베트남을 폭격해서 석기시대로 만들겠다는 발언을 자주 한 르메이 장군. 우리나라 밀덕들에게 석기시대 마니아로 통하는 이유이다. 그가 석기시대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바로 B-52 폭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략 자산인 B-52는 아직도 현역에서 활약 중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아들 3대가 B-52를 몰았을 정도로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당분간은 은퇴할 생각도 없다. 2023년 B-52가 한반도에 떴을 때 주변 국가에서 경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 것만 봐도 B-52의 위용을 알 수 있다.
아직도 현역에서 활약 중인 B-52가 국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심지어 전 세계 3개 국가 영국, 호주, 그리고 한국에만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 배경을 보기 위해서는 전쟁기념관 개관 당시로 돌아가야 한다. 1994년 개관을 앞두고 당시 초대 회장이던 이병형 회장이 미군에 요청하여 폭격기를 공여받게 되었다. 당시 들여온 여러 미군의 비행기 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자명한 사실. B-52의 존재 하나만으로 전쟁기념관이 세계적인 전쟁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 전시 과정에서 러시아가 적극 반대에 나선다. 당장 현역으로 활용 가능한 전략 자산인 B-52가 한반도에 들어온다는 것은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엔진 등 핵심 부품은 빠지고 껍데기만 들어오게 된다.
지금은 전쟁기념관 한편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B-52 폭격기. 여기에 담긴 기나긴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보기만 해도 그 웅장한 자태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 같은 밀덕은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전쟁 기계를 보며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담긴 군사 역사와 기술 발전을 되짚어 봐야 한다. 그래야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평화를 열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