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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Jul 18. 2024

인간은 생각하는 기계다

마빈 민스키 (1927 ~ 2016)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란 이름을 탄생시켰으며, 훗날 인공지능 학계를 이끌어가는 어벤저스를 탄생시킨 '다트머스 워크숍(Dartmouth Workshop)'. 다트머스 워크숍에 참석했던 학자 중 많은 이들이 유명해지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은 바로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이다. 인공지능 분야의 선구자 중 하나인 그는 컴퓨터를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1927년 태어나 비교적 최근인 2016년 별세한 그는 MIT에서 오랜 세월 교수로 지내며 큰 발자취를 남긴다.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의 노벨상인 튜링상을 1969년 수상하기도 하였다. 


* 다트머스 워크숍에 대해서는 아래 글 참고


민스키의 연구 철학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생각하는 기계다


그는 인간의 생각과 마음도 하나의 복잡한 기계로 보았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생각, 감정, 기억 등 모든 정신 활동은 뇌라는 기계가 처리하는 정보의 결과이다. 이러한 생각은 민스키가 인공지능 연구에 접근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사고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었다.


마빈 민스키 (1927 ~ 2016)


그가 위대한 학자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대중과의 소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986년 민스키는 그의 대표 저서인 <마음의 사회(The Society of Mind)>를 발표한다. 그간 학술적 자료만 발표하던 것과 달리 대중서를 출판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인공지능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인지과학, 심리학, 철학 등 인문학을 아우르는 그의 통찰력이 담겨 있다. 




민스키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의 핵심은 마음이 에이전트(agent)라고 불리는 작은 과정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에이전트들은 개별적으로는 지능적이지 않지만, 상호작용을 통해 복잡한 행동을 수행한다. 민스키는 이 에이전트들의 협력적인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회(society)'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각 에이전트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작용하게 된다.


좀 더 쉽게 풀어보자. 민스키는 우리의 뇌를 사회에 비유하였고, 그 안에 수많은 작은 '에이전트'들이 함께 모여 생각, 감정, 행동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머릿속에 수천 명의 작은 에이전트들이 각자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어떤 에이전트는 시각을 담당하고, 어떤 에이전트는 언어를 처리하며, 어떤 에이전트는 기분 변화를 관리한다. 또한, 에이전트들은 혼자 일하지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력하며 사회를 이뤄간다. 


<마음의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계층적 구조


민스키는 우리의 뇌에 에이전트들이 단순히 여럿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층적으로 조직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윗 그림이 그가 제시하는 예시 사례이다. 이처럼 상위 에이전트는 하위 에이전트들의 활동을 조정하여 더 정교한 인지 및 수행을 가능하게 한다. 이 계층 구조 덕분에 상위 에이전트는 하위 에이전트들의 간단한 행동을 조정하여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민스키 이론에서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은 프레임 K-라인이다. 민스키의 세계에서 기억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K-라인은 정신적으로 연결된 가상의 선으로, 다른 에이전트를 연결하여 기억을 만든다. 무언가를 회상할 때, 이 K-라인이 활성화되어 특정 에이전트 네트워크를 트리거하며 기억을 재현한다. 


프레임은 에이전트가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개념이다. 만약 우리가 식당에 갔다고 하면, '식당 프레임'이 메뉴, 분위기, 과거 먹었던 맛 등을 인식하도록 도와준다. 다양한 상황을 맥락에 맞게 해석하도록 돕기 위해 뇌는 프레임을 이용한다. 




마빈 민스키는 기계가 우리처럼 사고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우리의 사고를 먼저 분석했다. 그는 우리의 뇌를 수많은 에이전트들이 함께 일하는 활기찬 사회로 묘사한다. 얼굴 인식부터 감정 관리까지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전문 에이전트들이 우리의 뇌에서 활동한다. 


이 이야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픽사에서 제작한 명작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어린 소녀 라일리의 일상을 보여준다. 라일리의 뇌에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라는 감정을 담당하는 존재가 있다. 각 감정은 자신을 상징하는 독특한 성격이 발현되도록 한다. 이들은 서로 협력도 했다가, 반목도 하며 라일리의 일상 경험을 안내하고 있다. 마치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감정들이 민스키가 얘기하는 개별 에이전트 같지 않은가?


<마음의 사회>와 <인사이드 아웃>


마음의 사회와 인사이드 아웃은 많은 공통점을 가진다. 마음의 사회에 속한 에이전트들이 자신이 맡은 특정의 영역에서 일하는 것처럼, 인사이드 아웃의 감정들은 특유의 성격을 발산하며 라일리의 행동과 반응을 조종한다. 에이전트와 감정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뇌를 동작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상호작용이다. 민스키의 세계에서 에이전트들은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력하여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는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인사이드 아웃의 감정들 역시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재미와 감동을 느낀다. 종종 이들은 충돌하지만 결국 라일리가 세상을 탐색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일한다. 


물론 차이도 있다. 마음의 사회에서 기억은 K-라인이라 하는 이론적 배경을 토대로 한다. 인사이드 아웃은 이를 좀 더 생생하고 감정적으로 묘사한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억은 빛나는 구체로 등장하며, 장기 기억에 저장되거나 기억의 쓰레기장으로 보내진다. 기억의 쓰레기장으로 사라지는 '특정 존재'로 인해 관객들은 눈물바다가 된다. 또한, 민스키의 에이전트들은 감정보다는 생각의 기계적인 측면에 집중하여 기술적 통찰을 제공한다. 반면,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을 자극하여 라일리와 그녀의 감정을 통해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감정적 기복을 보여준다. 


두 작품 모두 복잡한 마음의 경이로움을 묘사하고 있다. 마음의 사회는 과학적 접근을 통해 이를 풀어보고자 했으며,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화된 캐릭터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해석해 준다. 민스키의 복잡한 이론을 통해 이성적인 마음을 이해해 본 후, 픽사의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함께 감동의 모험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성과 감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마음 탐구 여행이 될 것이다. 




다시 민스키의 마음의 사회로 돌아와서.


민스키의 연구에 대한 비판과 논란 역시 끊이지 않았다. 추후 글로 다뤄볼 <퍼셉트론> 관련 논란이 가장 컸지만, <마음의 사회>에 나온 이론 역시 비판을 받는다. 일부 학자들은 민스키의 이론이 너무 복잡하고 인공지능 시스템에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또한, 민스키의 주장이 의식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마음의 사회 모델이 우리의 인지 기능을 설명하지만, 주관적 경험이 에이전트의 상호작용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비판이 존재함에도 마빈 민스키의 <마음의 사회>는 인공지능과 인지과학 분야에서 여전히 중요한 저서로, 지능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하고 있다. 그의 아이디어는 인지과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의 에이전트 기반 모델은 인지기능이 뉴런 네트워크 간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한다는 현대 신경과학 이론과도 그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공지능 학계에 미친 영향이 크다. 단순히 계산하는 기계가 아닌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고자 했던 그의 신념은 후배 학자들에 의해 실현이 되고 있다. 하나 안타까운 건 그가 별세한 3일 후, 구글이 인수한 딥마인드에서 만든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의 연구 결과가 네이처에 게재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달 뒤,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을 제압하며 인공지능의 부활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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