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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Nov 12. 2024

교수로서 보람

교수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석사와 박사 학생들이 졸업할 때? 이때의 감동도 클 것 같지만, 이건 당연한 거라 좀 약하게 보인다. 사실 졸업하는 순간보다 저널에 퍼블리케이션이 확정되었을 때 감동이 더 큰 경우가 많다. 저널 실적이 갖춰져야 졸업할 수 있기에, 저널에 논문이 억셉되었다는 소식이 뜨면 그날 연구실은 보통 회식하러 간다. 


석사와 박사를 지도하는 것도 보람찬 일이지만, 학부생들의 성장을 돕는 건 또 다른 측면에서 지도자로서 보람을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석박사 과정 학생들 지도와는 별도로 학부 연구생 제도를 도입하여, 전공에 대해 깊이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작년 이맘때쯤, 수업을 듣던 학부생들이 좀 더 배우고 싶다고 연구실로 찾아왔고, 이 학생들에게 어떤 주제를 연구하게 할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때마침 타대학에 있는 교수님이 산불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면서, 이를 분석하는 공동 연구를 제안하였다. 그래서 이 산불 관련 데이터를 학생들에게 분석하는 미션을 내려줬다.


아마 학생들은 처음에 의아했을 것이다. 이 주제가 경영학부 학부생들에게 적절한지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산불 데이터를 기반으로 피해를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한다는 주제는 경영정보학, 비즈니스 애널리틱스의 범주와는 동떨어져 보인다. 그럼에도 이 과제를 시킨 것은 데이터 분석에는 도메인도 중요하지만, 적용 방법론이 더욱 중요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지만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싫은 내색을 할 법도 하지만, 학생들은 주제에 굴하지 않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추가 데이터를 하나하나 수집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늘 '하나'를 시키면 '둘' 이상을 가져오는 친구들이었다. 그러면서 프로젝트는 점점 범위가 커져 단순 분석을 넘어, 경영학과 데이터 사이언스 관점에서 산불 피해 예측 모델을 만드는 단계까지 가게 되었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는 여름의 학회 발표로 이어졌다. 대학원생들이나 현직 교수님의 연구를 발표하는 자리에, 학부생들은 당당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발표를 하였다. 현장에서 좋은 평을 받았으며, 당시 나온 피드백으로 더욱 심화된 분석에 돌입하였다. 이제 최종 목표는 저널에 투고할 아이템으로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소방청과 소방안전빅데이터플랫폼이 주관하는 <소방안전 빅데이터 활용 및 아이디어 경진대회>가 열린 것이다. 주제가 지난 1년 간 진행해 온 연구와 정확히 부합한다. 만약, 소방 데이터가 경영학과 관련이 없다고 그냥 지나쳤으면 이 기회는 당연히 놓쳤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좋은 기회가 아닌 것 같아도, 최선을 다했더니 우연히 찾아온 행운의 순간을 잡을 수 있었다.


물론, 이 대회는 전 국민이 참여가능하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무려 행정안전부 장관상이 수여된다. 그만큼 경쟁률도 치열했다. 대회에 참가한 팀은 무려 110팀이 넘었다고 한다. 우리도 여기에 당당히 응모하였고, 1차 심사를 통과하여 최종 발표 심사에 초청된 8팀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최종 심사가 어제인 11월 11일, 세종시에서 개최되었다. 전 국민 대상 경진대회였던 만큼 실무 경력이 풍부한 성인들로 구성된 팀이 다수 보인다. IT 기업의 직원들이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현직 공무원, 소방관 팀들도 눈에 띄었다. 학부생이 명함을 내밀기에는 다소 버거운 무대가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그간 노력을 반영하듯 발표를 성공리에 마쳤으며,

그 결과 전체 3위에 해당하는 우수상,

한국화재보험협회장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꽃다발을 들고 있는 사람이 나 ㅋㅋ


지금까지 이룬 그 어떤 업적보다 감동스러운 순간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달성한 거보다 더 뿌듯했고,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이래서 누군가를 지도하는 것이 보람스러운 일인가 보다. 


이제 논문 쓰자, 얘들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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