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때도 바쁩니다
2023년 7월 12일 수요일 오전 10시 16분
지금 이 글을 적기 시작한 시간이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맥북 앞 풍경은 다음 사진과 같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도 어언 2주가 훌쩍 넘은 지금. 나를 아는 누군가가 이 글과 사진을 본다면 방학이라고 놀러 간 건가 생각하기 쉬울 것 같다. 방학이 되니 역시 교수들은 노는 건가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나도 학부 시절만 해도 교수님들은 방학 때마다 노는 줄 알았으니.
내가 평일 이 시간에 자라섬과 북한강이 보이는 스타벅스에서 망중한을 즐기게 된 이유는 후술 하기로 하고, 오늘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교수들은 방학 때 무얼 하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놀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밝히기 위함도 있고.
대학원 생활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사람들은 알지만 교수라는 직업은 수업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학부생들에겐 수업하는 교수가 가장 익숙하겠지만, 교수의 가장 큰 본업은 바로 연구이다. 연구실적이 교수를 평가하는데 가장 중요한 지표로 인정되고 있다. 좋은 논문을 몇 편 썼는지, 과제를 얼마 수주했는지 등이 교수의 가장 중요한 성적표인 것이다.
교수라는 직업은 기본적으로 계약직이다. 나도 현재 학교와 2년 계약 중 1년 차 계약을 수행 중인 계약직이다. 조교수, 부교수를 거쳐 정교수가 되어야지만이 평생 직업으로 교수를 할 수 있게 된다. 2년마다 재임용 평가를 받고, 조교수에서 부교수로, 부교수에서 정교수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학교마다 정한 기준에 따라 심사를 받는다. 이 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연구 실적'이다.
재임용이 되기 위한 연구 실적은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달성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많은 교수님들이 대학원생들과 함께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다. 학기 중에는 수업을 보통 9학점 정도 하기에 연구에 시간을 온전히 쏟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방학은 연구하기 아주 좋은 시간이다. 많은 교수님들이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연구를 진행한다. 주변의 많은 교수님들은 방학 때도 밤낮 주말 할 것 없이 열심히 연구를 하신다. 방학 때도 수많은 연구실의 불이 밤늦게까지 꺼지지 않는 이유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번 방학 기간 동안 SCIE 1편, 국내 학회 1편 논문 작성이 목표이고, 투고한 SCIE 논문 리비전도 있을 계획이라 밤낮없이 바쁠 예정이다. 브런치에 글이 자주 올라오는 거 보고 할 일이 없나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브런치 글은 오전에 뇌를 깨우기 위해 1~2시간 가볍게 쓰는 것이고 나의 본업은 브런치 글을 마무리하고 시작된다.
많은 교수님들은 스스로를 자영업자에 많이 비유한다. 학교에서 나오는 월급이 있긴 하지만 월급 외에 수입을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크게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를 통한 과제 수주를 통해 수입을 만들 수도 있고, 출판이나 강연, 자문 등의 활동 역시 교수 본인이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많이 늘려갈 수 있다.
오늘 내가 가평 남이섬 근처 스타벅스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평 근처에 있는 기관의 자문 요청을 받아 이곳으로 오게 되었고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스타벅스에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잠시 들른 것이다.
학기 중에는 외부의 일을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 매주 진행되는 수업에 대학원생들 미팅에 시간을 보내고 나면 외부 자문 등의 일을 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외부 활동, 자영업으로 비유하면 영업 활동을 방학 때 중점적으로 해야 한다. 나만 해도 방학 이후 외부 자문 2건, 외부 강연 1건, 서면 자문 1건 등을 처리하였다. 오늘도 외부 자문을 위해 멀면서도 가까운 가평까지 와 있는 것이고.
사실 오늘 글을 적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교수는 방학 때 노는 거 아냐?' 하는 시선에 조금이나마 변명을 해보기 위해서이다. 남이섬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며 브런치에 글 쓰는 것을 업무의 연장이라고 애써 합리화해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애써 합리화하고 변명해 봐도 나는 알고 있다. 회사도, 정부연구소도 모두 경험을 해 봤기에 지금의 생활이 가장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정말 바쁜 주에는 주 70시간 이상 업무를 하기도 하고 제안서 제출 전주에는 날밤을 며칠씩 새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간섭 없이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 교수직의 최대 장점이 아닌가 싶다. 나만의 연구실에 출근을 해서 커피를 한 잔 하며 소위 말하는 업무시간에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는 사치를 누릴 수 있는데 얼마나 좋지 아니한가?
자꾸 내 글이 오해를 살까 사족을 달게 되는데, 내가 아는 정말 많은 교수님들은 회사에서 업무를 하시는 분들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연구를 하는데 시간을 쏟으신다. 밤낮없이 연구, 수업에 매진하는 교수님들이 많다는 것은 꼭 알아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