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평가에 대처하는 자세
어느덧 방학도 절반을 지나고 있다. 벌써 2학기 강의계획서를 입력하라는 공지도 올라왔다. 다음 학기 강의를 계획하면서 지난 학기 강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열어보기 두려운 익명으로 제출한 주관식 강의평가 역시 다시금 곱씹어 보았다.
교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바로 강의평가이다. 강의평가 결과가 좋지 않으면 재계약이나 승진에 영향을 주기도 하기에 강의평가 점수는 늘 신경을 쓰게 된다. 특히나 익명으로 제출하는 주관식 강의평가의 경우 적나라한 평가가 수반되는 경우가 많아 상처를 받을 때도 많다. 또한 공식적인 강의평가 이외에도 '에브리타임'이나 '김박사넷' 같은 대학생들, 대학원생들 커뮤니티에는 학생들의 적나라한 평가가 공유된다고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강의평가이지만 다음학기 수업 개선을 위해서는 몸에 쓴 약을 삼키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의견들을 곱씹어 보았다.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다음 학기 수업 난도도 조절해 보고 학생들의 성향을 파악해 만족할 수 있는 수업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게 된다. 이번 학기 만난 학생들은 중복 포함해서 150명이다. 이들의 의견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어느 정도 그루핑이 가능하였다. 하나하나 의견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강의평가를 보며 가장 빵 터진 평가이다.
"다들 안 웃어서 안 웃긴척했지만 사실 웃겼습니다 교수님!!!"
다양한 청중 그룹을 대상으로 강연한 경험이 있는데 20대 초반의 대학생 그룹은 강연하기가 쉽지 않은 그룹 중 하나이다. (강연에 호응이 좋은 그룹은 30대 이상의 여성분들이 많은 그룹이며, 가장 어려운 그룹은 남자 중학생들이었다.) 재밌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주로 소비하는 계층이기에 웬만해서는 웃지 않는다. 그나마 본인들이 듣고 싶어 선택한 전공선택 교과목은 참여도가 좋은 편이지만,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전공필수 교과목 수업을 듣는 애들은 참여도도 떨어지고 웬만해서는 웃지 않는다. 저 위의 평가 역시 전공필수를 듣는 학생의 평가이다. 최대한 재밌게 해 주기 위해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나름 재밌게 해주려 하는데 아무도 안 웃는 뻘쭘한 상황. 그래도 재밌게 생각해 주는 학생이 있어 다행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다양한 철학들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 중 하나가 학생들의 흥미 유발이다. 그래서 난 최대한 재밌게 가르치려고 노력을 한다. 위에서 받은 한 학생의 평가는 중간고사 이후 수령한 평가였으며, 기말고사 평가에서는 다행히도 재밌게 들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다음 학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학생들과 함께 재밌게 수업하기 위한 방안은 계속 고민을 해야 할 듯하다.
전공필수 수업은 이론 위주이고 해당 분야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도 수강을 해야 해서 수업을 흥미 있게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전공선택 과목은 다르게 접근을 해야 한다.
특히나 이론이 아닌 실습을 함께 하는 교과목. 문과 위주로 구성된 학생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야 하는 교과목들의 특성상 가장 내가 집중을 한 것은 학생들 수준에 맞는 난이도 조절, 그리고 흥미 유발이었다. 부임 첫 학기라 처음 나를 만나는 학생들을 위해 열정을 다해 모든 것을 쏟아 강의 준비를 했고 피드백도 나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만족할 수 있는 수업들이었다.
진로에 도움이 되었다거나, 다음 학기에도 듣고 싶다는 의견은 큰 감동을 주기도 하였다. 학생들이 얘기해 준 좋은 피드백들은 더욱 살려보아야겠다. 쉽고 친절하게, 하지만 추후 사회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교과목을 구성하기 위해 남은 방학을 불살라 보자.
좋은 피드백들만 반영해서는 발전이 없다. 당연히 개선해야 할 피드백들이 강의평가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다음은 개선해야 할 피드백들의 내용을 정리해 본 것이다.
너무 사례 위주라 이론적 깊이가 부족하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범위의 난이도 차이가 너무 크다.
개념적 설명이 부족하다.
수업 시간에 나온 질문에 대한 피드백이 부족하다.
난이도 조절 및 사례와 이론 비중 조절은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통과 관련된 부분은 챙기기가 쉽지 않기에 의식적으로라도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겠다. 한 학기라는 짧은 기간에 많은 걸 알려주려고 하다 보니 눈 감고 귀 막고 나의 페이스에 맞춰 수업을 했던 건 아닌지 반성을 하게 된다. 좀 더 귀를 열고 의견을 들어가며 천천히 적은 내용이라도 중요한 내용만을 확실히 전달할 수 있는 방향으로 2학기는 준비를 해봐야겠다.
다행히도 이번 학기 익명의 주관식 강의평가에는 브런치에 차마 올릴 수 없는 평가는 없었다. 하지만 이전의 경우 "강의하지 마세요"와 같은 상처를 받을 만한 평가를 받아보기도 했고, 다른 교수님들은 직접적 욕설만 아니었다 뿐이지 욕설과 유사한 수준의 워딩으로 구성된 평가를 받기도 한다. 대학교는 아니지만 중, 고등학교에서는 성희롱에 가까운 교원평가로 사회적 논란이 된 바 있다.
평가를 받아서 개선점을 찾을 수 있는 교원평가, 강의평가의 취지에는 백번 공감한다. 다만 익명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창을 마구 던지는 평가들은 필터링해줄 수 있는 시스템 도입도 필요하다. '비난'이 아닌 '비판'이 가능한 시스템 구축을 모두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