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학습 방식을 보여주는 인공지능
초등학교 시절, 라디오 조립이 인기였다. 손이 투박한 초등학생이 트랜지스터를 비롯한 칩들을 꼽고, 납땜으로 연결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나, 매캐한 특유의 향이 머리를 아프게 하는 납땜은 뜨거운 인두가 무섭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세밀한 컨트롤이 안 되던 초등학생 시절이라(지금도 안 되지만), 툭하면 인두로 녹인 납이 삐져나가 버려 조립에 실패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늘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바로 아버지였다. 나와는 달리 손재주가 좋으시고 전자기기를 잘 다루시던 아버지는 어린 시절 내게 슈퍼맨과 다름없었다. 계속되는 실패에 짜증을 부리고 있으면, 언제나 곁에서 도와주셨고, 덕분에 여러 개의 라디오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중 잘 만들어진 것으로 교내 대회에서 상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물론, 상보다는 완성된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지지직거리는 AM 라디오 소리가 더 기분 좋았고, 아버지와 함께 무언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이 더 컸던 것 같다.
이제 나에게도 다섯 살 아들이 있다. 놀랍게도(?) 아이 역시 전자제품에 큰 호기심을 보인다. 특히 공구에는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데, 얼마 전 현대모터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는 자동차 수리 공구 세트 앞에서만 30분을 넘게 시간을 보냈다. 만져 볼 수밖에 없는 전시용 공구였는데도 말이다. 당연히, 컴퓨터 같은 전자기기도 유독 좋아한다. 얼마 전에는 컴퓨터의 원리를 설명하는 동화책을 읽고는 며칠 내내 이것저것 설명해 달라며 쉴 새 없이 물어보았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이 고장 난 AI 스피커였다. 작동이 안 돼서 새로운 걸로 바꾸면서 구석에 처박아둔 녀석인데,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스피커를 분해해 보기로 한 것이다. 하나씩 뜯어보니 안에는 온갖 칩과 회로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책에서만 보던 회로들을 실제로 보게 된 아이는 완전히 흥분해서는 이것저것 만져보려 안달이었다.
한참을 신나게 가지고 놀던 녀석은 갑자기 질문을 던진다.
아빠, 이거 무슨 역할이야?
아! 나도 칩의 정확한 기능은 모른다. 그걸 알면 내가 전자과에 가있겠지. 잘 모르겠다고 하니 아이가 실망한 눈치다. 그때 번쩍 든 생각!
챗GPT에게 물어보자!
스마트폰을 꺼내 인공지능 스피커 분해 사진을 찍고, 챗GPT에게 기능을 물어보았다.
놀라운 결과 아닌가? 사진 한 장으로 전문가 수준의 설명이 뚝딱 나온다. 예전 같았으면 아이의 질문에 답하려고 전자공학 책을 뒤적이거나 아는 사람을 수소문했어야 했을 텐데, 이제는 인공지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물론 처음 받은 답변이 너무 어려워서 나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없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줘'라고 다시 물어보면 되니까. 그렇게 받은 설명을 아이에게 들려준다. 다섯 살 배기가 얼마나 이해했을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궁금했던 것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그 과정 자체가 더 의미 있으니까.
이렇게 인공지능은 우리가 쓰기에 따라 새로운 배움의 도구가 된다. 예전에는 책을 보고 직접 해보는 것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인공지능 덕분에 더 넓은 세상의 지식을 손쉽게 만날 수 있다. 마치 호기심 많은 아이의 끝없는 '이건 뭐야?' 질문에 지치지 않고 답해주는 또 하나의 선생님처럼.
물론 인공지능의 답변이 완벽하진 않다. 그 유명한 '할루시네이션' 때문에 아까 받은 답변들 중에도 틀린 게 있을 것이다. 전자공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정확히 어디가 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백 퍼센트 장담하건대 오류는 있다. 그래도 아이의 호기심을 채워가는 과정에서는 이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저 내용으로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니고, 만약 정말 중요한 보고서 작업이었다면 인공지능이 가끔 헛소리를 한다는 걸 알고 한 번 더 찾아보면 그만이니까.
더 중요한 건, 아이가 호기심을 이어가고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첫걸음을 뗐다는 거다. 우리가 어릴 적 이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나라>나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로마인 이야기>로 세계사에 빠져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두 책 모두 오류도 많고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이 너무 강하다는 비판을 받지만, 수많은 어린이들의 인생 책으로 남아있다. 첫 입문서로는 이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도 충분히 이런 역할을 해낼 수 있다. 그저 가끔 헛소리를 한다는 점만 유의하면 되니까.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정신없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글 쓸 여력이 전혀 없어 간단한 글 하나 짬내서 올립니다. 12월이 원래도 바쁜데, 개인적인 일까지 많이 겹치네요. ㅠㅠ
12월 3일 밤에 있었던, 눈과 귀를 의심케 한 뉴스를 보며 개탄을 금치 못하다가도 계엄사령부의 포고문에 언급된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를 보며, 그러면 마감이 임박한 책들의 집필이 연기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 정도로 바쁜 나날입니다. (다들 뉴스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다가도, 내일 회사 가야 하는 건가, 학교 가야 하는 건가 고민하시지 않으셨나요? 이런 생각 한 번도 안 하신 분들만 돌을 던지시길 쿨럭)
그래도 평온한 일상이 다시 찾아왔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혼란이 최소화되기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다음 글은 차주는 되어야 업로드가 가능할 듯 합니다. 여러 벌려놓은 시리즈들이 있는데, 짬을 내지 못하고 있네요. 죄송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