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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Sep 04. 2023

손흥민 골 직관하고 '갑분싸'해진 썰

손흥민 직관기 -2- (2019.11.23 )

웨스트햄의 상징 비눗방울 / 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린 '버블스(Bubbles)'


드디어 나에게는 역사적인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첫 직관 경기이자, 토트넘 입장에서도 나름 역사적인 스페셜 원 무리뉴의 데뷔경기가 시작되었다. (앞선 경기장 입장 관련 글은 다음 링크 참고: 훌리건 중심에서 '손흥민'을 외치다) 손흥민의 토트넘 핫스퍼의 상대팀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경기는 웨스트햄의 홈구장인 런던의 런던 스타디움에서 열렸고, 경기 시작 전 비눗방울이 스타디움 전체로 뿌려지며 "I'm forever blowing bubbles'라는 노래가 불려진다.


이 전통은 웨스트햄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 이미지로, 경기 시작 전 함께 노래를 부르는 관중들과 더불어 날리는 비눗방울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미국 팝송과 비눗방울이 웨스트햄의 상징이 된 이유로는 여러 가지 썰이 있는데, 1920년대 초 웨스트햄에서 뛰던 한 선수가 영국의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린 '버블스(Bubbles)'라는 작품에 나오는 소년과 닮아 별명이 '버블스'였고, 그를 응원하기 위해 이 노래가 불려졌다는 설이 가장 대세이다. 처음에는 관중들이 직접 비눗방울을 만들기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구단에서 구장에 기계를 설치해 비눗방울을 엄청나게 뿜어내는 장관을 연출하게 된다.


웨스트햄을 상징하는 수많은 비눗방울과 함께, 경기는 킥 오프 된다.


(좌) 비누거품과 몸푸는 손흥민 / (우) 킥오프 직전 비누거품과 손흥민, 자세히 보면 무리뉴도 보인다.




벌써 4년 가까이 전에 벌어졌던 경기라 라인업 분석, 경기에 대한 해설 등은 불필요할 듯하다. 주요 사건 위주로만 짚어보면 전반 시작부터 손흥민의 토트넘은 웨스트햄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전반 초반 손흥민의 중거리 슛이 키퍼 선방에 막히며 손흥민 골을 직접 보기는 힘든 건가 아쉬워한다.


그러던 전반 35분.

드디어 손흥민의 골이 터진다.

개인기로 한 번 접고 왼발로 툭 차 넣는 환상적인 손흥민의 전매특허 골 장면!!


어렵게 구한 당시 손흥민 골 장면 (출처 하단 명기)


운이 더 해진 것인지 관람하는 사이드에서 골을 넣은 손흥민! 눈앞에서 골이 들어가는 모습에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앞뒤좌우의 무서운 인상의 아재들을 봐서인지, 날이 추우서 웅크리고 싶어서였는지 얌전히 속으로만 소심하게 손흥민을 응원하고 있었건만 이때만큼은 위협을 감지하는 두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역사적인 골 장면 앞에서 마치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는 조건 반사인 건지, 무릎을 망치로 맞고 무릎이 자동으로 펴지는 무조건 반사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의 몸은 자동 기립을 하게 되고 나의 목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마치 멀리서 내가 있던 관중석을 봤으면 아래 사진의 아이유가 홀로 기립하여 박수를 치는 모습과 유사했을 것이다. 같이 동행한 전 여친이자 현 와이프 역시 나를 외면한 채 앉아만 있는 상황.


홀로 기립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유사하구나


그야말로 주변이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된 상황. 웨스트햄의 실점으로 웨스트햄 팬들의 욕설이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그 상황에서 겁 없이 동양인이 혼자 서서 좋아하는 모습을 다시 상상해 보니 얼마나 기괴스러웠을까?


이미 경기 시작부터 주변 웨스트햄 팬들의 욕은 고막을 자극하고 있었다. 특히 손흥민에 대한 욕은 경기 내내 계속되었다. 주변 웨스트햄 팬들은 "Fuxkxng 쏜 막아!!!!"를 계속 외치고 있었다. 손흥민이 워낙 잘 뛰어다니며 위협적인 기회를 만들었기에 손흥민에 대한 비속어 섞인 욕이 경기장에 가득하였다. 그렇기에 조용히 얌전히 경기를 관람하려고 했건만.


다행히 갑분싸가 된 주변 분위기는 다시 상대방 팀에 대한, 그리고 부진한 응원팀에 대한 욕설로 넘쳐나고, 나는 황급히 자리에 앉으며 더 이상의 불상사는 없었다. 이후, 손흥민의 도움으로 토트넘은 더 달아나고, 경기는 토트넘의 분위기로 급속도로 기울게 된다. 하지만 후반 막판 방심을 했는지 2골을 실점하며 경기는 펠레 스코어로 알려진 3-2 토트넘의 승리로 마무리된다.


스코어만 봤을 때는 대 접전이었지만 경기 분위기는 일방적으로 토트넘이 밀어붙이는 경기였고, 웨스트햄의 추격골도 후반 추가시간에 나왔기에 경기장 분위기는 약간 루즈하며 썩 좋지는 않았다. 많은 웨스트햄 팬들의 실망한 듯한 분위기가 경기장에 가득했다. 거기서 또 분위기를 깰 수는 없는 노릇. 열심히 경기에 집중하며 얌전히 손흥민 사진만 찍으며 소심한 응원전은 마무리된다.


(좌) 손흥민 첫 골 후 축하를 위해 모인 동료들 / (우) 후반 수비를 열심히 하는 손흥민




손흥민 싸인 받기 도전기! - 런던 스타디움도 싸인 받는 것이 가능할까?


얌전히 경기장을 빠져나오니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기는 아쉬운 노릇. 손흥민 선수 싸인 받기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하지만 여기는 웨스트햄의 홈구장이다. 웨스트햄의 홈구장인 런던 스타디움은 올림픽 주 경기장으로 활용한 후, 축구를 위한 스타디움으로 개조를 해서 관중석과 필드 사이의 거리가 먼 편이다. 육상 트랙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거리가 띄워져 있다. 그래서 제일 앞줄에 가서 싸인을 받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손흥민의 관심을 받기 위해 아래 사진과 같이 태극기 등을 준비하면 싸인 받기가 용이하지만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황!


토트넘 홈경기는 그래도 싸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 듯하다.


소싯적에 야구장을 드나들며 선수들에게 싸인을 받았던 기억을 되새김질해 보면 퇴근길에 싸인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장에서 싸인을 받기는 힘들 것으로 판단하고는 경기장 주위를 둘러본다. 집에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일부는 푸드 트럭에서 또 맥주를 마시고 있다. 우리의 목적은 맥주가 아닌 선수들 퇴근하는 입구를 찾는 것. 경기장을 계속 돌다 보니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보인다.


경기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한국 분들도 꽤 보인다. 아 여기가 싸인 받을 수 있는 곳인가 보다 하며 흥분해서 달려갔다. 하지만 런던 스타디움은 선수들 퇴근하는 길이 일반 관중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곳과 분리가 되어 있었다. 관중들은 2층 높이에서 선수들이 퇴근하는 모습을 눈으로만 볼 수 있었다. 대략 아래 사진처럼 유명 선수들을 멀리서 볼 수 있다는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좌) 당시 웨스트햄 감독 명장 펠레그리니 / (우) 당시 토트넘 최고 스타 크리스티안 에릭센 (눈꼽만큼 보임 ㅋㅋ)


위 사진처럼 선수들이 퇴근하는 모습이 보인다. 홈팀 선수들이 먼저 나온다. 좌측 사진처럼 맨체스터 시티 감독을 거친 당시 명장으로 꼽히던 마누엘 펠레그리니 감독의 퇴근 모습도 볼 수 있었고, 웨스트햄의 주전 선수들이 여럿 나온다. 이를 지켜보던 웨스트햄 팬들은 선수 이름을 부르며 기를 북돋아 준다.


주변에 한 5~6 팀의 한국 분들이 계셨다. 고독하게 웨스트햄 팬들 사이에 둘러싸여 손흥민을 속으로 응원한 동지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전우애를 느끼며 여기서 기다리면 손흥민 싸인을 받을 수 있을지, 아니 하다못해 퇴근하는 모습이라도 볼 수 있을지 얘기를 나눠보는데 아무도 사전 경험이 없어 모르는 상황. 게다가 토트넘은 원정팀이라 단체로 퇴근을 할지 자차로 퇴근을 할지 알 수도 없는 노릇.


마냥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며 웨스트햄 선수들만 퇴근하는 모습을 실컷 보다가, 드디어 토트넘 선수들이 퇴근하기 시작한다. 경기가 런던에서 열려 토트넘 선수들도 개별 출퇴근을 하나보다! 루카스 모우라 등 얼굴을 알고 있는 선수들이 부인과 함께 퇴근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당시 토트넘의 에이스였던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퇴근 모습도 지켜볼 수 있었다. 옆에 있던 얌전한 한 영국팬이 에릭센이 나오자 "크리스티앙~~~~~~~~"을 외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였다.


한 시간 반 이상을 대기하였지만 우리의 쏜은 보이지 않는다. 주변 전우들과 오늘 맹활약을 펼쳐 인터뷰를 하느라 늦어지는 게 아닌가 얘기를 나눠본다. 결국 더 기다렸다가는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기에 아쉬움을 남기며 런던 스타디움을 떠나게 되었다. 오랜 시간 선수들 퇴근길을 지켜보며 남은 건 EPL 선수들은 세단은 벤츠, SUV는 레인지로버를 선호한다는 개인 기호일 뿐.


혹시나 검색으로 들어오시는 분들 계시면 런던 스타디움은 선수와 팬의 동선이 구분되어 있어 경기 후에 싸인을 받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다. 싸인을 받고 싶다 하시면 경기장에 태극기를 들고 가는 것이 방법일 텐데, 원정팀 선수는 경기장을 한 바퀴 안 돌고 서포터즈 있는 곳에만 가서 인사를 하기에 경기장에서 싸인을 받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을 듯하다.




이상으로 손흥민 골 직관기 마칩니다.

조만간 메시의 최전성기 시절, MSN 트리오를 바르셀로나 캄프 누에서

직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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