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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운 Sep 29. 2023

메시의 그냥 댄스 직관기

'15.12.30 @ Camp Nou

최근 스포츠계에서 유행하는 워딩(wording)들이 있다. 바로 GOAT(The Greatest of All Time)와 라스트 댄스(Last Dance)이다. GOAT는 특정 분야 역사상 최고의 인물을 의미하는 용어이지만 스포츠 분야에서 많이 사용한다. 철자가 같은 'goat(염소)'를 활용한 언어유희도 많아, 외국에서는 염소 이모티콘을 스포츠 선수 SNS 댓글로 다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고, 국내에서도 GOAT 대신 염소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라스트 댄스는 스포츠 선수들에게 '마지막 마무리를 잘 하자'는 의미로 은퇴가 예고된 레전드 선수들의 마지막 무대를 의미한다.


GOAT와 라스트 댄스 모두의 원조 인물은 바로 NBA의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Micheal Jordan)이다. 농구계의 GOAT는 누가 뭐라고 해도 마이클 조던이라 할 수 있다. (르브론 제임스 팬들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라스트 댄스 역시 마이클 조던 때문에 스포츠계 유행어가 되었다. 마이클 조던의 은퇴 시즌 당시 소속팀 시카고 불스의 감독이었던 필 잭슨이 선수들에게 나눠준 팀 다이어리 표지가 'The last dance'였다. 이후 은퇴를 앞둔 노장 스포츠의 마지막 무대를 라스트 댄스라 부르게 되었고, 특히 2020년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마이클 조던 다큐멘터리 제목이 라스트 댄스였기에 대중들에게 이 용어가 깊게 각인되었다.


최근 두 용어에 대한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고 나서는 슈퍼스타가 등장하였다. 바로 축구계의 GOAT 리오넬 메시(Lionel Messi)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축구계의 GOAT는 이견이 꽤 있었지만 브라질의 펠레(Pele)를 꼽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그 아성을 위협하는 선수가 바로 메시였다. 클럽 커리어는 펠레 이상이지만 월드컵 우승 경력이 없어 GOAT에는 등극하지 못했던 메시. 하지만 메시는 자신의 라스트 댄스 무대였던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커리어 첫 월드컵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GOAT로 등극한다. 이 과정에서 국내외 언론을 수놓은 'GOAT'와 '라스트 댄스'. 이제 이 두 워딩은 리오넬 메시의 차지가 된다. (축구계 GOAT 논쟁은 펠레, 마라도나, 극히 소수지만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등으로 인해 논란이 조금 있으며, 최근 메시는 2026 월드컵도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혀 라스트 댄스가 아직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오늘은 추석 연휴를 기념하여 가볍게 옛날 추억을 하나 떠올리고자 한다. 바로 2015년 스페인 여행에서 메시의 최전성기 시절 경기를 바르셀로나 캄프 누(Camp Nou)에서 직관한 이야기이다. 현재의 메시는 황제에 등극하여 라스트 댄스를 췄지만, 2015년의 메시는 라스트의 '라'자도 언급이 되지 않던 최전성기 시절이다. 그래서 제목을 다음과 같이 붙여봤다. 이름하여


메시의 '그냥' 댄스 직관기




2015년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부터 2016년 1월 4일까지 스페인 여행을 하였다. 마드리드에서 시작하여 세비야, 그라나다를 거쳐 바르셀로나를 둘러보는 일정. 모든 일정이 완벽했지만 가장 기대를 했고, 또 만족도가 높았던 일정이 바로 FC 바르셀로나 홈경기를 직관한 것이다. 브런치에 손흥민 경기를 직관한 이야기를 작성하면서 버킷리스트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경기 직관을 꼽은 바 있다. 맨유 경기만큼은 아니지만 보고 싶었던 경기가 바르셀로나의 경기이다. FC 바르셀로나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곳. 바로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 노우(Camp Nou) 때문이다.


캄프 누(한국어 공식 발음은 캄 노우이지만, 캄프 누 혹은 누 캄프가 입에 착 붙어 캄프 누로 통일하겠다)의 좌석 수는 99,354석이다.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캄프 누를 홈구장으로 쓰는 FC 바르셀로나 역시 세계적 축구팀이기에 바르셀로나를 여행 중이라면 꼭 한 번 들러봐야 하는 곳이다.


스페인 여행 계획을 짜면서 무조건 FC 바르셀로나 경기를 캄프 누에서 직관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바르셀로나 경기가 없더라도 스타디움 투어를 할 수 있지만, 언제 다시 가볼지 모를 바르셀로나에 가서 직관을 못한다는 것은 평생 한으로 남을 수 있는 일. 그래서 휴가 일정과 축구 일정을 비교해 보고, 마드리드 인(IN) - 바르셀로나 아웃(OUT)으로 일정을 잡아 FC 바르셀로나 경기를 직관할 수 있었다.


스페인으로 출국 전 미리 인터넷으로 FC 바르셀로나 경기를 예매하였다. 예매할 때 신경 쓴 부분 중 하나가 평생 한 번 볼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기에 돈을 아끼지 말자는 것. 앞서 언급했지만 캄프 누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경기장이 워낙 크기에 돈 조금 아끼자고 싼 좌석을 선택하면 90분 내내 선수들이 콩나물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거액을 들여 앞에서 7번째 줄 좌석을 예매하였다. 이후 경기장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눈앞에서 메시와 수아레즈, 네이마르 등 슈퍼스타를 볼 수 있었다.


당시 환율로 20만원이 넘었던 티켓 가격 / 경기장 입장 전 구매한 메시 저지(Jersy)




메시, 수아레즈, 네이마르 (MSN)의 최전성기 경기를 직관하다


축구는 팀 스포츠이다. 그래서 슈퍼스타 한 명도 존재하지만 팀플레이도 중요하다. 2015년 당시 FC 바르셀로나에는 이미 월드클래스 No. 1이었던 리오넬 메시 이외에도 우루과이의 수아레즈(Suarez), 브라질의 네이마르(Neymar)가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팬들은 이들 트리오(Trio)를 MSN이라 부르며 환상적인 플레이를 즐겼다. 하지만 한 우산 아래 두 명이 있기는 힘든 노릇. 메시가 이미 대장 노릇을 하고 있던 바르셀로나였기에 이들 셋은 함께 공존하는 기간이 길지 않다. 특히, 네이마르는 본인이 대장을 할 수 있는 파리 셍제르망으로 이적하는 선택을 훗날 하게 된다.


이들의 3년 간의 짧지만 강렬했던 임팩트는 아직까지 축구 팬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그리고 나는 그 임팩트를 현장에서 직관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이들 셋의 활약은 직관한 날 역시 대단했다. 초반부터 밀어붙이는 FC 바르셀로나와 제대로 대응도 못하는 레알 베티스(Real Betis). 축구 경기를 다수 직관한 경험이 있는 나에게도 이들의 경기력은 경이로울 수준이었다. 몸싸움이 비교적 거칠지 않기로 유명한 라리가(La Liga, 스페인 축구리그) 임에도 어마어마한 박력과 스피드감. 라 리가가 이 정도면 프리미어리그(Premier League, 잉글랜드 축구리그)는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축구라는 것을 직관한 당시 동행인(전 여자친구, 현 와이프)은 비싼 돈 주고 간다고 툴툴거렸지만, 메시라는 존재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흔쾌히 직관을 동의해 주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축구 경기에 빠져들며 정말 거친 스포츠구나 하는 감상평을 남겼다. 그리고 메시보다 네이마르가 더 잘하는 것 같다는 예리한 감상평 역시 남긴다.


훗날 TV에 나오는 메시의 전성기 활약상을 보는 아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야겠다.


아빠는 메시 경기 직관한 사람이야!
(넌 모르겠지만 네이마르도, 수아레즈도)


예매한 좌석의 뷰이다. 뷰가 환상적! (좌) MSN 몸 푸는 모습 / (우) 간지 나는 메시의 조율




유럽의 축구 사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경기는 정말 무난하게 흘러간다. FC 바르셀로나가 상대팀인 레알 베티스를 상대로 4 대 0 완승을 거둔 것이다. 기대했던 MSN 트리오의 호흡도 환상적. 거의 원사이드 경기가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자꾸 경기에 집중도가 조금 떨어지고 주변 분들에게 관심이 간다. 이전 손흥민 경기 직관기에서는 주변이 모두 상대팀 팬들이라 힘들었던 기억을 서술한 바 있다. 이날 바르셀로나 메시 직관 경기는 경기장의 99%가 바르셀로나 팬이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가 밀어붙일 때는 함께 응원하고, 위기일 때(거의 없었지만)는 함께 마음 졸이며 응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옆에 앉으신 할머니가 자꾸 신경쓰인다. 현지 팬으로 추정이 되는 할머니는 지금 기억하기로도 70대는 넘어 보이셨다. 그런데 재밌는 게 상대팀인 베티스가 공격할 때는 아예 눈을 가리고 얼굴을 숙이며 경기를 지켜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바르셀로나가 공을 뺏으면 환호 소리가 나니까 다시 고개를 들고 정말 큰 소리로 응원을 하신다. 그러다 다시 베티스가 공을 잡으면 고개를 숙이시고 경기를 보지 않으셨다. 그러다 다시 바르셀로나가 공격하면 큰 소리로 응원을 하셨다. 그러다 다시 베티스가...(이하 무한 반복)


놀라운 광경이었다.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의 열정적 응원도 대단했고, 수비 시에는 마음을 졸여서 경기를 아예 안 보시는 모습에는 정말 축구를, 정말 바르셀로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만약 바르셀로나 팬이 아니시고 베티스 같은 약체팀을 응원하셨다면 직관 가셔도 거의 고개를 숙이고 계셔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르셀로나 팬 하시길 잘하신 할머니를 보며 유럽 사람들의 축구 사랑은 종교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수비 시에는 좌측 선수처럼 경기를 보지 않으시다 공격하면 우측 선수처럼 열광하시던 할머니




추석을 기념하여 토트넘의 손흥민 직관기에 이어 다시 찾아온 직관기 2탄입니다.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겨우 겨우 기억을 짜내봤습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보스턴의 팬웨이파크에서 직관한 보스턴 레드삭스와 텍사스 레인저스 경기 직관기도 써보겠습니다. (설마 설에 쓰려나?)


브런치에서 최초로 1만 뷰를 넘게해준 스냅백 관련 글( 교수는 스냅백 쓰면 안 되나요? ) 에서 등장하는 보스턴 레드삭스 스냅백이 당시 경기를 직관하며 구입한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추신수 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이어서 추신수의 등판을 보기도 했습니다. 추신수 직관기라 명명하지 못하는 것은 전날 경기에서 추신수가 홈런을 치고 부상을 당해 경기에 출전을 못해서 입니다 ㅠㅠ


자세한 건 다음 명절.. 아니 다음 직관기에서 풀어보겠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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