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니에미 (Antti Niemi)
몇 년 전 MBC의 '마이리틀 텔레비전'이라고 하는 예능 프로가 인기였다. 유명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들이 개인 방송을 하는 콘텐츠를 TV에서 보여주는 방식이었는데, 여기에 김성주와 안정환이 출현한 적이 있다. 당시 그들이 방송했던 콘텐츠 중 하나는 경기 중계 시 언급하기 가장 곤란한 선수들 이름 말하기. 그들은 핀란드의 '안티 니에미'와 터키의 '구라이 부랄', 일본의 '시바사키 가쿠', 세네갈의 '이브라히마 섹', 이탈리아의 '지안프랑코 졸라'등의 이름을 거론했다. 그중 단연코 원탑은 '안티 니에미'. 성에 해당하는 '니에미'는 한국어 발음으로 묘한 뉘앙스이며, 앞에 붙은 이름인 '안티'는 비록 철자는 'Antti'이지만 '~에 반한다는' 뜻의 'Anti'로 들리기 충분하다.
지난 수요일. 우리 아이 유치원 우선 접수 결과 발표가 났다. 인기 유치원들을 지망해서인지 1, 2, 3 순위 모두 다 떨어져 버렸다. 저출산으로 유치원 들어가기가 좀 쉬워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인기 유치원은 여전히 들어가기가 하늘에 별 따기이다.
이제 일반 접수만 남았다. 하지만 일반 접수는 우선 접수 대비 TO가 더 적은 편이다. 우선 접수에서 유치원을 찾지 못한 수요가 몰리게 되면 경쟁률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반 접수에 대한 전략 수립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영어유치원, 영유에 대한 고민도 진지하게 시작이 되고 있다. 원하는 유치원을 가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영유를 선택하는 부모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우리가 그렇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
지난밤, 영어유치원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와 아빠가 나누고 있었다. 과연 만 3세의 아이가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습득하는 이중 언어, bilingual 이 가능한 건지에 대해 토론을 시작했다. 각자 읽은 육아 책들과 내가 알고 있는 뇌과학적 지식들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이야기가 잠깐 새어 중국어 이야기가 잠시 나왔다. 그때까지 엄마와 아빠 옆에서 혼자 놀고 있던 아이가 '중국어'라는 단어에 반응을 한다.
아이 : 중국어가 뭐야?
아빠 :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쓰는 말이야.
아이 : 나 중국어 좋아
뭔지도 모르면서도 좋다고부터 하는 아이를 보고 간단한 중국어를 알려줘 본다.
아빠 : 그럼 윤우야, 한 번 따라 해 봐. 니 하오 마
아이 : 니 하오 마
그동안 아이가 들어온 말인 한국어와 가끔 동요로 들은 영어와는 또 다른 발음이 재밌나 보다. 혼자서 '니 하오 마, 니 하오마' 하면서 신이 나 있다. 그러다 갑자기 발음이 급 드리프트를 시작한다.
아이 : 니 하오 마
아이 : 니 하옴 마
아이 : 니 하엄마!
아이 : 니 엄마!
아이 : 와 니 엄마다!!!!!
... 2초 정적....
아빠 : 그런 말 하면 안 돼!!!!!!
아이는 순수하게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인 '엄마'를 발음하며 해맑게 좋아하고 있다. 핀란드의 축구 선수 '안티 니에미'가 자국에서는 문제가 안 되는 발음이었던 것처럼, 아이가 발음한 '니 엄마' 역시 순수한 의도로 나온 발언이다.
하지만 아이가 마지막에 한 말은 인터넷상에서 폐드립으로 많이 쓰는 말이기에 하면 안 된다고 바로 잡아줘야 할 노릇. 아빠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중국, 니 엄마"를 밤새 외치며 좋아하는 34개월 아들이다. 엄마와 아빠는 자기 유치원 때문에 골머리 아파하는 걸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