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올해로 만 25세를 맞이했다. 내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사반세기가 지났다는 게 가끔은 믿기지 않는다. 동아리 후배들과 얘기할 때는 ‘늙었다’ ‘고학번이다’ ‘이젠 답이 없다’며 한탄하는 것이 일상다반사다. 2주일 후에는 학교도 졸업할 테니 이젠 어엿한 성인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어엿한 성인’에 걸맞은 정신연령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면 나는 여전히 ‘젊다.’ 그냥 젊은 게 아니라 풋내를 풀풀 풍기는 꼬맹이에 가깝다. 꼬맹이답게, 나는 종종 낭만적인 고민을 한다.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는 인생을 살면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나 등등.
<Youth>의 등장인물들도 그런 고민들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도 나이 70이 넘어서. 프레드와 믹은 각자의 분야에서 이름이 남을 만한 성취를 이뤘다. 보통 사람이 보기엔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인생은 충분히 훌륭했고 가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뭔가를 더 추구하고 있었고, 그 뭔가가 적어도 돈, 사랑, 명예 따위의 범속한 것임이 아님은 분명해 보였다. 믹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화려한 마무리가 될 역작의 엔딩에 대해 고민했고, 프레드는 다시금 무대에 서서 지휘를 하기를 열망했다. 마지막 영화와 마지막 지휘, 다시 말해 그들의 인생을 완성시켜 줄 멋있는 마무리다.
하지만 둘의 ‘인생 마무리’는 난항에 부딪친다.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예술 인생에서 크게 의존해 왔던 뮤즈의 부재다. 브렌다를 주연으로 상정하고 촬영하던 믹의 영화는 브렌다가 출연을 거부함으로써 중단된다. 프레드는 멜라니가 부르지 않는 심플 송을 지휘할 수 없다. 물론 예술가에게 뮤즈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둘은 그들의 뮤즈에게 지나치게 의존했던 것처럼 보인다. 이제 믹과 프레드는 각자의 방법으로 뮤즈 없이 마지막 역작을 완성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믹의 마무리는 확실했다. 그는 촬영이 중단된 후 스스로를 ‘위대한 여배우들의 감독’이라고 외쳤지만, 지미의 말마따나 그는 그 자체로도 ‘위대한 감독’이었다. 그의 앞에 나타난 수많은 영화 속 여성들은 브렌다라는 한 인물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믹 자신이었고, 그렇게 믹 스스로가 깨달은 순간 더 이상 새로운 영화를 만들 필요는 없어졌다. 믹이 마지막에 본 그 풍경이야말로 그에게는 최고의 걸작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이제 바통은 프레드에게 돌아왔다. 믹이 세상을 떠난 후, 프레드는 의사를 만나 요양원 바깥에는 무엇이 있는지 묻는다. 돌아온 답은 Youth, 영화의 제목이다. 이미 노년인 프레드가 다시 세상으로 나간다 한들 젊어질 리는 없다. 대신 밖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킬 수 있는 새로운 무대다. 그를 떠나버린 뮤즈 멜라니와 작별을 고한 프레드는 의연하게 지휘봉을 휘두른다. 프레드가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삶을 추동하는 아우라가 무대를 가득 채우며 영화는 끝난다. 그것이 바로 노년인 프레드가 누릴 수 있는 그 자신만의 youth였다.
프레드와 믹에게 초점을 맞춰 글을 썼지만,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이들 역시 자기만의 완성을 추구한다. 레나는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지미는 자신만의 히틀러를 만들어내며, 마라도나는 계속 공을 차고 마사지사는 춤을 춘다. 그러나 이 젊은이들만큼이나 노년의 두 주인공들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완성을 추구했고, 자신들 몫의 youth를 오롯이 누릴 수 있었다. 되는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완성을 추구하는 한, youth는 언제까지나 우리들의 곁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