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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걱정쟁이 Apr 06. 2024

그래서 사랑이 뭘까

모니카 마론, 『슬픈 짐승』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을 읽었다. 그 이전까지 내가 읽었던 가장 로맨틱한 러브 스토리를 꼽으라면 단연 이치카와 다쿠지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이다(이치카와 다쿠지는 흔한 로맨스에 적당한 판타지적 요소를 섞어서 색채를 부여하는 데 능하다. 나같이 작품을 피상적으로 접하는 주제에 흔한 건 싫어하는 까다로운 독자에겐 참 좋은 작가다). 하지만 똑같이 사랑을 주된 테마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슬픈 짐승>의 사랑은 어딘가 괴기하게 느껴진다. 사랑은 인생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며 이를 이루기 위한 장애물은 그게 사회의 관습이 됐든 기존의 부부 관계가 됐든 모두 하잘것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작중 나오는 '그대를 차지하거나 아니면 죽는 것'이라는 문장은 이 소설에서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개념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랑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일 수 있나, 라는 독자를 위해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나 또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사랑이 죄수처럼 우리 내부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다. 사랑이 해방되어 우리들 자신인 감옥을 부수고 나오는 데 성공하는 일은 가끔씩 일어난다. 사랑이 감옥을 부수고 나온 종신형 죄수라고 상상해보면, 얼마 안 되는 자유의 순간들에 사랑이 왜 그렇게 미쳐 날뛰는 것인지, 왜 그렇게 무자비하게 우리를 괴롭히고 온갖 약속 안으로 우리를 밀어넣었다가 곧바로 온갖 불행 안으로 몰아넣는 것인지를 가장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 살다 보면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 텍스트, 소설, 영화를 수없이 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랑들은 천편일률적이다. 위의 비유에 대입해보면, 대한민국에서 이상적인 사랑은 감옥에서의 생활을 얌전히 준수하는 모범수와 같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다가 다시 만난 첫사랑과의 해후, 또는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결혼한 커플, 서로 첫사랑으로 만나 백년해로하는 노부부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지만 동시에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사랑이 유독 대한민국에서 '이상적인' 사랑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그만큼 일부일처제와 유교적 문화로 대표되는 사회적 관습의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 중에서도 가장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이 그런 형태로만 발현될 거라는 믿음은 어불성설이다.


이렇게 얘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이 사회의 온갖 관습과 규칙에 매우 익숙해진 사람이고, 그에 기반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사랑에 몰두할 용기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그 사회의 관습과 규칙에 의거해 불륜을 비판하는 것 역시 그저 단순한 꼰대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익숙한 규칙에 따르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갈등과 선택의 상황에서 쉬운 기준을 제공해주니까. 다만 <슬픈 짐승>의 사랑 역시 사랑의 다른 형태고, 그것을 단지 기존의 관습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 또는 존재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뿐이다.


써놓고 보니까 흔한 황희 정승이 돼 버렸는데, 이 소설의 결말은 파격적인 '사랑관'에 비해서는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전형적이었고 처음 읽었을 때는 그게 가장 아쉬웠다. 극적 반전을 위해 참신성을 희생해버린 느낌이랄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사랑을 이렇게 받아들인다면 필연적으로 그와 같은 결말에 도달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작가는 다른 선택지는 불가능하다고 느낀 것이 아니었을까.


※20240406 : 이 글을 썼던 건 변변한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 보던 대학생 막바지 시절이었지만 8년 가까이가 지난 지금도 사랑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긴 그게 그렇게 쉽게 답이 나오면 사랑과 관련한 콘텐츠가 그토록 무수히 확대 재생산되지는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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