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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날의 스크래치

by 임시저장

의무교육의 트랙에 올라타기도 전 살포시 다녀주었던 미술학원. 끝내는 그다지 재능이 없음을 깨닫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그래도 몇 가지 괜찮은 기억들은 남아있다. 그 중 하나는 ‘스크래치 기법’을 배웠을 때다. 가장 좋았던 건 마음껏 칠할 수 있어서였다. 다른 그림들은 생각을 하면서 그려야 하지만, 스크래치 기법의 밑작업을 위해서는 그냥 아무거나 칠하면 된다. 우선 여러 가지 색을 바탕에 무작위로 칠하고, 그 위를 검은색으로 덮는 과정이 있고 난 뒤에야 스크래치를 할 수 있는데, 그 밑작업은 그동안 빈약한 재능에 대한 자괴에 짓눌려 있던 일곱살 어린이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었다. 내가 원하는 색을 마음껏 선택할 수 있고, 그걸 어디에 어떻게 칠할 지도 모두 내 마음이었다. 그렇게 알록달록 색을 칠하곤, 그 위를 검은색으로 덮어야 하는데, 그 작업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나는 국민학교에 진학하기 전 기억이 거의 없는 편인데 양쪽 귀퉁이에 탱크를 그리고, 그 탱크가 포탄을 마구 쏘는 것을 상상하며 색칠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걸 보면 내가 얼마나 그 작업을 좋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검은 바탕 위에 긁은 흔적을 남기는 작업은 내가 가지지 않은 재능을 공짜로 얻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냥 긁었을 뿐인데 그 아래로 다양한 색이 드러나면서 어디에 어떤 선을 긋든 도화지가 아름다워졌다. 새까만 바탕과의 대비가 더욱 그 선을 아름답게 만들었고,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날만큼은 ‘아마 나, 재능이 있을지도?’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거칠 것 없는 어린이들은 서로의 그림을 혹평하기 마련이었고, 나는 늘 혹평의 대상이 돼 상처를 받곤 했는데 그날은 그런 평을 받은 기억이 없으니.


고등학교 사물함보다 작은 어머니의 공간엔 행복한 모습이 담긴 당신의 사진이 가득하다. 커다란 봉안함이 겨우 남긴 틈새를 가득 메운 그 사진들을 보며 엄마의 삶은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곤 곧 그래야만 할까,라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내 삶이 그렇듯 엄마의 삶도 다양한 색으로 가득했을 텐데 그걸 하나의 색으로 뭉뚱그리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어떤 날은 나 때문에 속상했을 것이고, 또 어떤 날은 그런 나 때문에 행복하기도 했겠지. 죽일 듯이 밉다가도 없으면 생각나는 아버지도 있었을 것이고, 문득 돌아보면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됐나 싶다가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생각했던 날도 있겠지. 그래도 덧셈, 뺄셈을 하면 결과는 행복한 것으로 나왔을까, 그렇게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엄마의 삶을 메마르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재능이 없어도 스크래치는 아름다우니까, 엄마를 어떻게 보내는 게 잘하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스크래치는 아름다울 것 같다. 엄마의 그 다채로운 삶의 색을 지난 몇 년간 까맣게 덮었으니까 이제 그 위에 내 마음대로 선을 그어볼 때가 된 것 같다. 스크래치는 결코 하나의 색만 보여주지 않으니 모든 선에는 어두운 색도 밝은 색도 섞여 있을테고, 그게 어떤 기억이었든 아름다워 보일 거다. 이제 엄마의 삶이 어땠든 그걸 그대로 조금씩 떠오를 때마다 자연스레 들여다봐야겠다. 그게 안타까이 가버린 그 삶을 대하는 괜찮은 자세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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