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입주민이 입주민에 감읍해야 하는 여러 이유에 대한 비과학적인 고찰
도시-도시한 곳을 떠나 그나마 공동체의 흔적이 남은 서울 모처에 자리한 지 이제 다섯달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이사를 하고 좋은 점이 한둘이 아닌데 그 중 하나가 가까운 아파트에 비입주민도 다닐 수 있는 커뮤니티 수영장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가까이 있다고 해서 매일 가는 부지런은 없어서 오늘도 약 3만년 만에 수영장을 찾았다. 살이 너무 쪄서인지 걷기만 해도 가쁘게 뛰며 심장이 힘들어 하기에 아직 너를 완전히 내려놓은 것은 아니라고 부러 기별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엄청난 T임과 동시에 극 N이라서 (North 아님 주의) 수영하는 내내 잡생각을 하는 편인데, 오늘은 수영하는 40분 내내 내가 어떻게 이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왜 내가 비입주민에게 수영장을 개방한 입주민 여러분께 감사를 표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내가 돈 내고 다니는 게 무얼 감사해야 하나 싶은 분들은 다른 의견이 어떠한지 훑어도 좋을 것 같다.
아파트 커뮤니티 수영장의 운명은 대개 두 가지로 귀결하는데, 첫째는 관리 어려움으로 인한 폐쇄요, 둘째는 비입주민과의 마찰로 인한 봉쇄다. 폐쇄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분명하므로 여기서 굳이 논할 필요가 없고, 입주민과 비입주민의 갈등으로 인한 봉쇄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봉쇄는 대개 비입주민의 착각이 원인이다. 비용을 지불했으니 그에 준하는 권리가 있다는 식이다. 문제는 비용에 준하는 권리가 어느 정도인지 서로의 이해가 다르기에 생기는데, 대체로 비입주민이 부당함을 토로하는 데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몰이해와 갑질과 배려의 혼동이 원인이 된다. 지금은 어떻게 계산을 해도 비입주민이 실제 자기가 부담해야 하는 만큼을 부담하는 수영장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커뮤니티 수영장은 자유수영이 7천 원인데 공공시설보다는 비쌀지라도 절대 접근 불가능한 가격은 아니다. 어떻게 7천 원이란 비용이 가능할까? 분명한 이유는 그래야 사람이 오기 때문이다. 7천 원이면 고급이 아닌 수영장 중에는 가격대가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못 갈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회당 8천 원, 9천 원이면 아무래도 꺼려진다. 다른 수영장과 비교해서 가격 경쟁력이 있어야 그래도 사람이 오기 때문에 그 정도로 책정한 듯하다.
대개 민간 수영장은 이것보다는 비싼 편인데, 그건 실제로 운영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수영장은 시설의 질을 유지하는 데 꽤 많은 돈이 들어간다. 늘 물이 차 있는 공간이기에 건축물 자체의 청결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단순히 물만 채우고, 약품만 뿌려서 되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회당 7천 원만 받는 것은 입주민들의 관리비가 수영장 운영에 쓰이기 때문이다. 즉, 관리비를 내지도 않는 비입주민이 그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인데 이것 또한 가능한 이유가 있다.
일단은 매몰비용의 상쇄다. 비입주민이 이용을 하든 안 하든 들어가는 비용은 똑같다. 그렇다면 7천 원이라도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게 이득이다. 그러니 실제로 그 비용이 합당한지를 따질 필요 없이 얼마가 됐든 한 명이라도 더 시설을 이용하게 하고, 관리비 지출을 줄이는 게 용이하다는 것이다. 시장가격이 5천 원으로 형성이 됐단 5천 원으로 책정하더라도 비입주민을 받는 게 아파트로서는 이득이다.
다른 이유는 집값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파트는 투자이자 투기이기 때문에 집값은 아주 중요하다. 커뮤니티 시설에 수영장이 있고, 그것도 멀쩡히 운영이 된다는 점은 집값의 상승 요인 혹은 집값 하락을 방어하는 요소가 된다. 새 아파트 입주를 앞둔 부푼 마음은 실제로는 이용하지 않을 수영장에 흔쾌히 웃돈을 지불하기도 하고, 나중에 집을 팔 때 웃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수영장을 이용하지 않는 주민들도 자산증식에 대한 기대로 불필요할 수 있는 수영장 운영비 부담에 합의하는 것이다. 나의 소소한 즐거움은 이렇게 뒤틀린 욕망에 일부 의탁하고 있다.
그 가격이 7천 원인 이유에는 공공부문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이 아파트와 가까운 곳에 공공수영장이 존재하고 그곳에서 형성된 가격이 이보다 낫기 때문에 이 아파트 수영장도 7천 원 이상을 책정하기 어렵다. 즉, 공공 수영장을 직접 이용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로 인해서 낮은 가격에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인데, 이런 걸 피부로 느끼기 시작하면 공공부문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공공 수영장이 저렴한 이유는 적자운영이다. 공공부문을 공격하는 구실이 되기도 하는 적자는 적어도 나에게는 혜택을 주고 있다. 수영장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저렴한 가격에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는 과한 비용을 부과하지 않고 있고, 이를 위해 지역 주민들은 수영을 하지 않지만 세금을 납부하고 수영장 운영에 그 돈이 쓰이는 것에 수동적이나마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고 수영장을 이용하지 않는 주민들은 손해만 보냐면 또 그것도 아니다. 운동은 반드시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하기에 보건은 물론 치안에 긍정적이다. 수영장을 다니기 때문에 병원을 덜 다니고, 이는 건강보험 재정에 긍정적이다. 또한, 운동으로 정신이 건강해지면 사회적으로 활기가 생기고, 이는 범죄율 하락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는 근거가 희박한 나비효과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연계 효과다.
멀지 않은 예로 공공근로를 들 수 있는데, 겉으로 보면 별 거 하지도 않는 노인네들에게 수십만 원을 쥐어 주는 일이지만, 소일거리하러 나가는 걸음으로 건강해지는 무릎과 자기 힘으로 돈을 버는 것으로 밝아지는 마음은 장기요양보험의 지출은 물론이고, 수백만 자녀들의 부양 스트레스를 확 줄인다. 노인 부양이 업이 되는 사오십대에 이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을 거다.
공공 수영장의 저렴한 가격에는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은데, 그건 역시 저임금이다. 운영 적자는 감사가 회를 거듭할 때마다 인건비 감축으로 이어진다. 적자운영은 곧 방만경영이라는 낙인이 되고, 이를 피하기 위한 가장 손쉬우면서 효과적인 방법이 임금 삭감이기 때문인데, 사실 이는 통찰력의 부재에 기인하는 것으로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생각을 바꿔야 하는 부분이다.
방만경영을 욕하고 공공부문 축소를 지지하는 것이 사회를 건강하게 생각한다면 매우 잘못된 논리를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공공 수영장의 가격 때문에 민간 수영장의 가격을 쉽사리 올려 받지 못하는 것처럼 공공부문의 임금이 적정 수준을 유지하면 민간부문의 임금도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기 힘들다. 인재는 임금이 높은 곳으로 가게 돼있으니 민간에서도 좋은 인재를 고용하려면 마냥 낮은 임금을 책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임금 뿐만 아니라 고용의 안정성, 노동자에 대한 대우 등에도 해당한다.
최근 오세훈이 일부 민영화한 장애인콜택시 사례도 역시 그렇다. 민영화의 골자는 직접 고용이었던 콜택시 기사들을 택시회사가 고용케하는 것인데, 당연히 전체 예산은 직접 고용 때보다 적다. 시에서 줄인 돈에서 회사의 몫을 떼어 냈으니 기사의 임금은 확 줄어들고, 대우는 안 좋아지고, 일의 강도는 늘어난다. “원래 하던 사람들의 잘못도 커요.” 일전에 이용했던 장애인콜택시 외주회사 기사가 말했다. 많은 돈을 받으면서도 일은 덜 하려 했던 직접고용 기사들의 잘못으로 민영화가 불가피했다는 식이다. “결과적으로는 이제 덜 받으면서 일은 더 많이 하게 되신 거 아니에요?”라고 물으니 “세상이 원래 그래요. 쉬운 일이 어디 있어요?”라 답한다. 외주로 돌리기 전에는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걸 왜 모르는지 의문인 순간이었다.
어쨌든 나는 집값상승의 욕망, 공공 수영장의 낮은 임금 같은 몇 가지의 뒤틀린 원인들과 세금의 긍정적인 쓰임, 비자발적인 배려 같은 서로 크게 관련 없어보이는 요인들이 얽히고설켜 7천원으로 민간 아파트의 커뮤니티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즉, 7천 원의 입장료는 내가 시설사용료를 모두 지불하는 게 아니라 환경의 혜택을 받은 비용이다.
비입주민들이 입주민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다니는 수영장에도 A4 용지에 몇몇 안내들이 붙어 있는데, 그 중 몇 개에는 비입주민이라는 단어가 포함돼있다. 샤워를 할 때 물을 아껴 쓰라든지, 주차를 어떻게 하라는지 등의 내용인데, 그것만 보면 비입주민의 차별로 보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 비위가 상하기도 한다. 그러다 ‘나도 돈 내고 이용하는데’라는 생각이 들면 규칙을 지키고 싶지 않은 반발이 생기는 것이다. 이 반발이 뉴스에서 접하게 되는 고가 아파트의 갑질과 맞닿으면 이 또한 갑질처럼 느껴지고 만다.
입주민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그들에게 비입주민 입장료 7천 원은 입주민 이용료와 천 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아주 저렴한 돈이다. 관리비를 내지도 않는 사람들이 그 혜택을 보는 게 마냥 좋아보일 수는 없다. 실제로 7천 원은 세대수로 나누면 세대당 10원도 안 될 돈이라 조금만 수틀리면 비입주민 이용을 금지하자는 소리가 나오게 돼있다. 그렇게 비입주민이 이용 가능한 아파트 커뮤니티 수영장이 또 하나 사라지는 거다.
조금이라도 수영장이 멀면 운동을 안 할 게 뻔한 나에게는 이게 꽤나 큰 사건이다. 구청 수영장까지 가려면 차를 탈 수밖에 없는데 그 귀찮음을 뚫고 안 그래도 귀찮은 운동을 하러 갈 리 만무하고, 그럼 나는 고혈압과 동맥경화에 시달리며 약에 매달리는 신세가 될 건데 결코 그러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불필요한 관리비를 내가며 수영장을 운영해주는 입주민 여러분께 감사해야 하는 거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아저씨를 보면서 어린 나이에도 저런 바보가 어딨냐고 코웃음을 쳤는데 나이 들어 보니 동화와 현실은 분명히 달랐다. 동화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보이고, 그 배를 가르는 행위가 보였는데 현실에서는 이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지도 모르겠고, 내가 지금 그 배를 가르고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때로는 내가 당당하게 누리고, 당연하게 누려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반사이익에 불과할 때가 있다. 그걸 계속 누리고 싶다면 고마운 건 고마울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