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담합의 그림자
매년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현대 미술 경매장은 예술과 자본이 만나는 가장 화려한 무대입니다. 크리스티(Christie's)는 2017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도르 문디(Salvator Mundi)'를 4억 5,030만 달러에, 소더비(Sotheby's)는 2022년 앤디 워홀의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Shot Sage Blue Marilyn)를 1억 9,500만 달러에 낙찰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눈부신 성공 뒤에는 1장의 무라노 유리공예 길드의 기술 독점과 2장의 메디치 가문의 배타적 후원처럼 시장의 공정성을 해치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특히 '경매 담합(Auction Collusion)'은 현대 미술 시장에서 가장 심각한 경쟁법 위반 사례 중 하나입니다. 1990년대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6년간 벌인 수수료 고정 담합 사건은 미술 경매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스캔들로 기록되며 두 회사가 총 5억 1,20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업 간 경쟁 제한을 넘어 예술 시장 전체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시장을 지배하는 사례에 대해 알아봤고, 이제는 담합으로 눈을 돌려보겠습니다.
1995년 이전까지 크리스티와 소더비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두 회사는 판매자들로부터 위탁품을 확보하기 위해 수수료율을 대폭 할인하고, 판매자가 선호하는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제공하며, 심지어 판매 보장까지 해주는 등 갖은 혜택을 제공했습니다. 또 구매인에게도 수수료를 수취하는 이중 수수료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1995년 3월부터 이런 경쟁이 갑작스럽게 사라졌습니다.
크리스티가 판매자와 구매인에게 고정된 비협상 수수료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고 한 달 후 소더비도 동일한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이 급작스러운 변화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크리스티의 전 최고경영자 크리스토퍼 데이비지(Christopher Davidge)가 보관해 온 상세한 문서들이 공개되면서 이것이 철저히 계획된 수수료 고정 담합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미국 법무부의 수사 결과 소더비 회장 A. 알프레드 타우브만(A. Alfred Taubman)과 크리스티 회장 앤서니 테넌트(Anthony Tennant) 경이 1993년부터 1999년까지 6년간 가격 고정 담합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타우브만의 수첩에는 테넌트와의 12차례 비밀 회동이 'Sir A', '신사', 'AT' 등의 암호명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검찰 측 핵심 증인이었던 소더비 전 최고경영자 다이애나 브룩스(Diana Brooks)는 법정에서 "두 회장이 서로를 죽이고 있다(killing each other)고 판단하고, 이제 뭔가 조치를 취할 때라고 합의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타우브만은 브룩스에게 가격 고정의 세부사항을 마련하도록 지시했고, 이후 두 회사는 판매자 수수료율을 고정하고, 비협상 수수료 일정표를 설정하며, 수수료 일정 준수 여부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고객 정보를 교환했습니다.
2001년 12월 타우브만은 가격 고정 공모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76세의 이 억만장자는 최대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전망됐으나 실제로는 징역 1년과 300만 달러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반면, 크리스티는 수사에 협조하여 형사 기소를 면할 수 있었고, 소더비는 유죄를 인정하고 4,500만 달러의 벌금을 지급했습니다. 여기에다 미국 내 수천 명의 고객들이 모여 "너희가 짜고 수수료를 올려서 우리 돈을 더 뺏어갔다"라며 집단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사건이 법원으로 갈 경우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크리스티와 소더비는 각각 약 2억 5,600만 달러씩 내어 총 5억 1,200만 달러를 피해자에게 나눠주는 합의를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두 회사는 전 세계 미술품 경매의 90% 이상을 장악하는 과점 구조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담합 기간 동안 두 회사는 미국 내 판매자들로부터만 최소 4억 달러의 수수료를 징수했으며, 판매자들은 주요 협상 수단을 잃게 되었습니다.
경매에서의 담합은 일반적인 시장에서의 가격 고정과 유사하지만 경매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더욱 교묘하고 복잡한 양상을 띱니다. 마치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몇몇 아이들이 미리 짜고 게임의 승부를 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정당당해야 할 경쟁에서 특정 참가자들이 미리 결과를 조작하여 다른 참가자들과 소비자들을 속이는 행위인 것입니다.
미술품 경매에서의 담합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커버 비딩(Cover Bidding)으로, 담합에 참여한 입찰자들이 의도적으로 매력 없는 조건이나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으로 입찰하여 미리 정해진 승자의 입찰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둘째는 입찰 순환(Bid Rotation)으로, 담합 집단이 여러 경매에 걸쳐 승자를 번갈아 가며 정하는 방식입니다. 셋째는 입찰 억제(Bid Suppression)로, 경쟁자들이 아예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미리 정해진 입찰자가 쉽게 낙찰받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경매장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교묘한 조작 기법이 바로 '샹들리에 비딩(Chandelier Bidding)'입니다. 이는 경매사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입찰을 마치 경매장 어딘가에서 나온 것처럼 연출하는 행위입니다. 경매사는 관객들이 정확히 찾아내기 어려운 지점을 바라보며 가상의 입찰을 받아들이는 척하여 더 큰 수요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입찰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크리스티 아메리카 회화부 디렉터였던 데브라 포스(Debra Force)는 "경매사는 어딘가에서 입찰을 시작해야 한다. 사람들은 바로 입찰을 시작하지 않으므로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은 실제 수요보다 높은 가격으로 구매자들을 유도할 수 있어 시장 조작의 한 형태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현대 미술 경매에서 새롭게 등장한 '제3자 보장(Third-Party Guarantee)' 시스템 역시 담합의 온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경매회사가 판매자를 위해 최소 가격을 보장해 주던 기존 방식에서 외부의 제3자가 보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발전했습니다. 문제는 이 제3자 보장자가 경매에서 직접 입찰할 수 있으며 크리스티의 경우 자신이 낙찰받더라도 보장가와 낙찰가 차액의 일정 부분을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최소 가격 100억 원을 보장하고 들어온 제3자가 있다고 할 때 차액 비율을 50%로 합의한 경우 낙찰가가 110억 원이면 차액인 10억 원의 절반인 5억 원을 돌려받는 구조입니다.
이는 일종의 '발가락 지분(Toehold)' 효과를 만들어, 보장자에게 다른 입찰자들보다 유리한 위치를 제공합니다. 보장자는 작품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수익을 얻을 수 있고 확보하더라도 실제 지불 가격이 공개된 낙찰가보다 낮아지는 구조입니다. 앞서 100억 원을 보장한 작품을 제3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110억 원에 낙찰받더라도 합의한 대로 차액의 절반인 5억 원을 받게 됩니다. 결국 제3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로 인해 실제 거래 가격이 불투명해지고, 시장 가격 형성이 왜곡될 수 있습니다.
'실 비딩(Shill Bidding)'은 판매자나 그와 연관된 인물이 가짜 신분으로 경매에 참여하여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행위입니다. 2001년 미국에서는 3명의 남성이 이베이에서 수백 건의 미술품 경매에서 40개 이상의 가짜 계정을 이용해 허위 입찰을 한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습니다.
실 비딩의 특징은 가짜 입찰자가 거의 낙찰받지 않으며 정당한 입찰자가 입찰한 직후 작은 시간 간격을 두고 최소한의 금액으로 추가 입찰하여 가격을 점진적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입니다. 이는 정당한 입찰자들로 하여금 작품에 대한 높은 수요가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도록 유도합니다.
현대 미술 경매 시장은 다른 시장에 비해 극도로 불투명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품의 진위, 출처, 이전 거래 내역 등 핵심 정보들이 제한적으로만 공개되며 보장 시스템, 수수료 구조, 실제 지불 가격 등이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 비대칭은 소수의 업계 관계자들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제공하며, 일반 구매자들은 정확한 시장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특히 온라인 경매의 확산과 함께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2024년 오스트리아 빈의 한 경매에서는 현대 화가 도나토 그리에코(Donato Grieco)의 작품을 인위적으로 노화시켜 바로크 시대 화가 파체코 데 로사(Pacecco De Rosa)의 작품으로 둔갑시켜 650유로짜리 그림을 72,000유로에 판매한 사기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는 여전히 전 세계 고급 미술품 경매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점 구조는 1장의 무라노 유리공예 길드나 2장의 메디치 가문처럼, 소수의 사업자가 시장을 지배하며 가격과 거래 조건을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두 회사의 시장 지배력은 단순히 경매 서비스 제공을 넘어 작품의 진위 인증, 가치 평가, 시장 트렌드 설정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이들은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독특한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때로 이해상충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경매회사는 높은 가격에 낙찰될수록 더 많은 수수료를 받게 되므로 때로는 구매자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수익 극대화에 초점을 맞출 유인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경매 담합은 1890년 제정된 셰먼 반독점법(Sherman Antitrust Act)에 의해 중죄로 처벌받습니다. 이 법은 거래나 상거래를 제한하는 모든 계약, 신탁, 공모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위반 시 벌금과 징역형을 동시에 부과할 수 있습니다. 타우브만이 받은 유죄 판결과 징역형은 이러한 법적 엄중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유럽연합에서도 경매 담합은 엄격히 금지되며, 소더비는 EU 집행위원회로부터 2,000만 유로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습니다. 호주에서도 경쟁소비자위원회(ACCC)가 미술 시장에서의 가격 고정, 입찰 조작, 배타적 보이콧 등을 조사하며 강력한 규제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미술 경매 시장 역시 크리스티-소더비와 유사한 과점 구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서울옥션과 K옥션이라는 양대 경매사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이들의 독점적 지위가 수면 위로 드러난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2022년 한국화랑협회와의 갈등입니다. 화랑협회는 두 경매사가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강력한 비판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쟁점의 핵심은 2007년에 체결된 ‘신사 협약’이었습니다. 당시 미술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화랑과 경매사들은 메이저 경매를 연 4회로 제한하고, 신진 작가 보호를 위해 경매사가 작가와 직접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 협약은 1차 시장(화랑)과 2차 시장(경매)의 균형을 유지하며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자는 상생의 약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점차 유명무실해졌습니다. 경매사들은 시장 수요와 성장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한 해에 수십 회가 넘는 크고 작은 경매를 열었고, 화랑을 거치지 않은 신작들이 경매에 바로 출품되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화랑협회는 이를 “시장의 논리를 앞세운 독식 행위”라고 비판하며 두 경매사가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신사 협약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판매 수수료를 직접 조작한 크리스티-소더비 담합과는 다르지만 시장 지배적 사업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시장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공유합니다. 결국 화랑협회는 경매사들의 행태에 항의하는 의미로 수수료 없는 자체 ‘프라이빗 옥션’을 개최하며, 과점 구조가 미술 시장의 공정성과 상생의 가치를 어떻게 훼손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선례를 남겼습니다.
크리스티-소더비 담합 사건 이후 20여 년이 지났지만, 미술품 경매 시장의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3자 보장, 온라인 경매, 복잡한 금융 상품과의 결합 등으로 인해 시장은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1장의 무라노 유리공예나 2장의 메디치 가문 사례에서 보듯이 시장 지배력을 가진 소수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시장 질서를 왜곡할 유인이 여전히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경쟁 당국의 지속적인 감시와 규제가 필요합니다. 호주 경쟁소비자위원회가 "예술 시장도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법의 적용을 받으며 판매자들은 잠재적 구매자들 간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공정한 가격을 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한 것처럼 예술이라는 특수성이 불공정 거래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미술품 경매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제3자 보장의 정체성과 조건 공개, 실제 거래 가격의 명확한 기록, 수수료 구조의 투명화, 작품의 출처와 이전 거래 내역 공개 등이 필요합니다. 또한 샹들리에 비딩 같은 관행을 규제하고, 실 비딩을 방지하기 위한 신원 확인 시스템을 강화해야 합니다.
현대 미술 경매 시장에서 벌어지는 담합과 시장 조작은 단순히 일부 기업의 일탈이 아닙니다. 이는 시장 집중도가 높고 정보 비대칭이 심한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1장의 무라노 유리공예 길드가 기술 독점을 통해 시장을 지배했듯이, 2장의 메디치 가문이 배타적 후원을 통해 예술가들을 통제했듯이, 현대의 대형 경매회사들도 자신들의 시장 지배력을 남용할 유인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 시장이라고 해서 경쟁법의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예술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크리스티-소더비 담합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아무리 오래되고 권위 있는 기관이라 하더라도,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술품 경매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투명성 제고, 규제 강화, 기술 혁신, 국제 공조가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술의 아름다움이 소수의 이익을 위해 더럽혀지지 않고 진정으로 문화적 가치를 추구하는 건전한 시장이 조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라노의 반짝이는 유리잔이나 메디치 가문의 화려한 예술 후원 뒤에 숨겨진 독점과 배제의 그림자를 반면교사로 삼아 현대 미술 시장은 더욱 공정하고 투명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