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등장과 알고리즘 담합

6장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독점

by 오후한시오분

인공지능(AI)이 그려낸 예술 작품들이 경매장에서 수억 원에 낙찰되면서, 예술 시장은 또 한 번의 혁명적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2024년 AI 로봇 아이다(Ai-Da)가 그린 'AI 신'이 소더비 경매에서 110만 달러(약 15억 원)에 낙찰된 것은 AI 예술이 단순한 실험을 넘어 본격적인 시장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성공 뒤에는 1장의 무라노 유리공예 길드의 기술 독점, 2장의 메디치 가문의 배타적 후원, 5장의 경매 담합과 같은 문제가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 'AI 신' / 홈페이지 캡처

특히 '알고리즘 담합(Algorithmic Collusion)'이라는 전례 없는 형태의 시장 조작이 AI 예술 시장뿐 아니라 일반 시장에서도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알고리즘 담합은 최신 이슈여서 보다 뒷장에서 실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순서를 앞당겨 우선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런 담합은 인간의 명시적 합의 없이도 AI 알고리즘들이 자동으로 가격이나 거래 조건을 조정하여 담합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기존의 경쟁법 체계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시장 지배력 남용입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AI 예술 도구와 데이터를 독점하는 가운데 알고리즘들이 서로를 학습하고 모방하면서 의도치 않게 가격 담합과 유사한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1. AI 예술 시장의 폭발적 성장과 알고리즘 지배 구조


AI 예술 시장은 불과 몇 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2018년 프랑스 AI 예술 집단 '오비어스(Obvious)'가 개발한 알고리즘이 그린 '에드몽 드 벨라미'가 크리스티 경매에서 43만 2,500달러(약 5억 원)에 낙찰되면서 AI 예술의 상업적 가능성을 입증했습니다. 이 작품은 예상가의 40배가 넘는 가격으로 판매되어 예술계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 에드몽 드 벨라미(Edmond de Belamy) / 퍼블릭 도메인

2025년 3월 크리스티가 개최한 'AI 미술품 전문 경매'는 이러한 성장세를 더욱 확실히 보여줍니다. 출품된 34점 중 28점이 총 72만 8,784달러(약 10억 원)에 판매되면서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최고가는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의 '기계 환각(MACHINE HALLUCINATION)'이 차지했으며, 이는 AI 예술에 대한 컬렉터들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 기계 환각(MACHINE HALLUCINATION) / RAFIK ANADOL STUDIO 홈페이지

하지만 이러한 성장과 함께 AI 예술 시장에서는 알고리즘 담합의 위험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알고리즘 담합이란 AI나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가격이나 거래 조건을 조정하여 인간의 개입 없이도 담합이 형성될 수 있는 현상을 말합니다. 2011년 아마존에서 진화생물학 서적 '초파리 발생 유전학 입문서(The Making of a Fly: The Genetics of Animal Design)'가 2,369만 달러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에 판매된 사례는 알고리즘 가격 책정이 잘못될 수 있는 초기 경고였습니다. 알고리즘끼리 싸게, 비싸게 자동으로 경쟁하다가 서로 가격을 계속 올리며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특이한 사례입니다.


AI 예술 플랫폼들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여러 AI 모델이 같은 데이터를 학습하고 서로의 가격 변동을 참조하면서 경쟁적 가격 인하 대신 모두에게 유리한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명시적인 합의 없이도 소비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시장 조작입니다.


2. 빅테크의 데이터 독점과 알고리즘 담합의 온상


AI 예술 시장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소수의 빅테크 기업들이 AI 모델 학습에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구글(Google),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오픈 AI(OpenAI), 메타(Meta) 등은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데이터 접근권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는 소규모 기업들의 시장 진입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AI 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가장 많은 파운데이션(기초가 되는 만능형 모델) 모델을 출시한 기업은 구글(18개), 메타(11개), 마이크로소프트(9개), 오픈 AI(7개) 순으로, 미국 기업들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AI 파운데이션 모델의 예시 / AI 생성

이러한 데이터 독점은 무라노 유리공예 길드의 기술 독점과 본질적으로 같은 구조입니다. 오픈 AI는 모델 학습을 위해 뉴스 및 출판사, 스톡 미디어 라이브러리 등의 콘텐츠 라이선스에 이미 수억 달러를 지출했으며, 이는 대부분의 학술 연구 그룹과 스타트업의 예산을 훨씬 초과하는 규모입니다. AI 교육 데이터 시장은 현재 약 25억 달러에서 10년 내에 30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돼 자본력 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입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들 빅테크 기업의 AI 알고리즘들이 서로를 학습하면서 암묵적인 담합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강화학습 알고리즘들이 동일한 시장 환경에서 작동할 때, 명시적인 소통 없이도 경쟁을 제한하는 균형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특히 Q-learning(강화학습 알고리즘)과 같은 학습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경매 시스템에서는 입찰 억제(Bid Suppression)와 같은 담합적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 알고리즘 담합의 개념 / AI 생성

AI 예술 플랫폼들이 사용하는 가격 책정 알고리즘이 서로의 가격 변동을 학습하고 반응하면서 모든 플랫폼에게 유리한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5장에서 다룬 크리스티-소더비 담합 사건과 달리, 명시적인 합의 없이도 소비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더욱 교묘한 형태의 시장 조작입니다.


AI 예술 시장에서의 알고리즘 담합은 저작권 침해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빅테크 기업들은 "공정 이용(Fair Use)"을 내세우며 창작자들의 허락 없이 작품을 AI 학습 데이터로 사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서 작가들이 메타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재판부는 메타의 공정 이용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선례입니다. 빈스 차브리아 판사는 메타의 행위가 "작품 시장을 파괴하고 원작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판단했으며 자사의 AI 모델 훈련을 목적으로 저작물을 무단 학습시키는 빅테크의 관행을 비판했습니다. 이는 AI 기업들이 무료로 확보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장 지배력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알고리즘 담합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줍니다.

▲ 빈스 차브리아 판사 /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

더욱 심각한 것은 빅테크 기업들이 저작권 논란을 피하기 위해 주요 언론사 및 출판사와 독점 계약을 체결하면서 소규모 경쟁업체들의 데이터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픈 AI는 뉴욕타임스, AP통신 등과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으며 이로 인해 다른 AI 개발업체들은 고품질 데이터에 접근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는 알고리즘 담합을 더욱 용이하게 만드는 시장 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올해 1월, 미국 법무부 반독점 담당 조나단 캔터는 The American Prospect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이 상대방에게 독점권을 행사하는 거래를 체결했다고 해서 그것이 법에 따라 모두 허용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구매자가 소수인 상황에서의 수요독점(monopsony)을 더욱 경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구매자의 시장 지배력이 급격하게 커지는 것을 방지한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3. 알고리즘 담합의 구체적 작동 메커니즘


AI 예술 시장에서 알고리즘 담합은 여러 단계를 거쳐 형성됩니다. 첫째, 주요 AI 예술 플랫폼들(Midjourney, DALL-E, Stable Diffusion 등)이 유사한 가격 책정 알고리즘을 사용하면서 가격 동조화가 시작됩니다. 둘째, 이들 알고리즘이 서로의 가격 변동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학습하면서 경쟁적 가격 인하보다는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수렴합니다. 셋째, 시간이 지나면서 플랫폼들 간의 가격 차이가 최소화되고, 소비자들은 선택권을 잃게 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알고리즘 담합이 명시적인 합의 없이도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강화학습 알고리즘들은 환경에서 최적의 전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경쟁보다는 협력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 경영진들이 직접 만나서 가격을 조율했던 5장의 크리스티-소더비 사건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담합입니다.

▲ 알고리즘 담합을 표현한 개념도 / AI 생성

알고리즘 담합은 가격뿐만 아니라 창작 스타일의 동질화로도 나타납니다. 주요 AI 모델들이 비슷한 데이터셋으로 학습하고 유사한 알고리즘을 사용하면서 결과물의 다양성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장에서 실질적인 선택권 제한으로 이어집니다. 소비자들은 표면적으로는 여러 플랫폼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비슷한 스타일과 가격의 작품들만 접하게 됩니다. AI 알고리즘들이 만들어낸 동질화된 시장 환경의 결과입니다.


알고리즘 담합은 기존의 경쟁법 체계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시장 조작입니다. 전통적인 담합의 경우 기업 간의 명시적 합의를 증명할 수 있는 문서나 증언이 필요했지만 알고리즘 담합은 코드와 데이터의 상호작용을 통해 은밀하게 이루어집니다. 더욱이 AI 시스템의 복잡성 때문에 어떤 부분이 담합을 야기했는지 규명하기도 어렵습니다.


현재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유럽위원회, 우리 공정위(KFTC) 등 세계 여러 경쟁당국에서는 'AI 기술을 통한 가격 책정'에 관한 지침을 연구 중이지만 아직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특히 AI 스타트업들이 대규모 컴퓨팅 인프라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빅테크 기업들과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협력은 동시에 빅테크 기업들에게 최신 AI 모델에 대한 특권적 접근을 제공하는 모순적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 AI 시장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 AI 생성

AI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기존 경쟁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첫째,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AI 예술 플랫폼들이 사용하는 가격 책정 알고리즘의 기본 원리와 학습 데이터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입니다. 둘째, 데이터 접근성을 높여야 합니다.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 독점을 방지하고, 소규모 기업들도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셋째, 창작자 권리 보호를 강화해야 합니다. AI 학습에 사용되는 데이터에 대해 창작자들이 적정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무단 사용을 방지하는 기술적 보호조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넷째, 국제적 공조를 통해 일관된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AI 기술의 글로벌 특성상 한 국가의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국제적 차원에서 협력하여 통일된 규제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AI 예술 시장의 현황과 과제


한국에서도 AI와 관련된 경쟁법 쟁점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한국신문협회가 네이버를 독점규제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에 제소한 사건은 국내 AI 시장에서의 데이터 독점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협회는 네이버가 자사의 대규모 언어모델인 '하이퍼클로바'와 '하이퍼클로바X' 개발 과정에서 언론사의 뉴스 콘텐츠를 무단 학습했다고 주장했습니다.

▲ 한국신문협회와 네이버 사이에 벌어진 독점규제법 위반 혐의 사례 / AI 생성

이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유사한 패턴입니다. 네이버 역시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데이터를 수집하여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 지배력을 구축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정지우 저작권법 전문 변호사는 "최소한 저작권자가 AI 학습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법에 명시하는 게 필요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AI 예술 시장도 글로벌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알고리즘 담합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국내 창작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Midjourney, DALL-E, Stable Diffusion 등은 모두 해외 빅테크 기업의 플랫폼이며 이들이 설정하는 가격과 정책에 따라 국내 시장도 좌우됩니다.


더욱이 국내 AI 예술 시장은 상업성과 대중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창작의 고유성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2024년 세계 미술 경매 시장에서 거래 작품의 대다수가 저가 대량 생산품이었고 국내 시장도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동질화된 창작 환경의 결과로, 예술의 본질적 가치보다는 '소비 편의성'이 우선시되는 현실을 반영합니다.

▲ 공정하고 투명한 AI 시장을 표현 / AI 생성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 독점, 알고리즘 간의 암묵적 담합, 창작자 권리 침해 등의 문제는 단순히 기업 간 경쟁 제한을 넘어 예술 시장 전체의 다양성과 창의성, 그리고 공정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쟁법 체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AI 예술 시장이 진정으로 다양하고 창의적인 생태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의 투명성 확보, 데이터 접근성 개선, 창작자 권리 보호, 국제적 공조를 통한 일관된 규제 체계 구축이 필요합니다. 무라노의 반짝이는 유리잔, 메디치 가문의 화려한 예술 후원, 그리고 현대 미술 경매장의 담합 사례에서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AI 예술 시장은 더욱 공정하고 투명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AI 기술의 혁신적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예술 시장의 공정성과 다양성을 보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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