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대리석, 입찰 담합의 시초

제8장 영원한 도시에 숨겨진 석재 업자들의 비밀

by 오후한시오분

기원후 1세기, 로마 제국의 심장부에 우뚝 솟은 콜로세움의 하얀 대리석 외벽이 지중해의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습니다. 8만 명이 넘는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거대한 원형경기장은 로마 제국의 위용을 상징하는 걸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어낸 대리석과 트라베르틴 석회암 뒤에는 1장의 무라노 유리공예 길드나 5장의 현대 미술 경매장과 마찬가지로 교묘한 시장 조작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1280px-Roman_Colosseum_Rom.jpg ▲ 콜로세움, 이탈리아 로마 / 퍼블릭 도메인

로마 제국 전성기에 벌어진 대규모 공공건축 프로젝트는 단순한 건축 공사를 넘어 제국 전역의 채석업자, 운송업자, 건축업자들이 참여하는 거대한 경제 네트워크였습니다.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둥, 판테온의 돔, 카라칼라 욕장의 화려한 내부 장식 등은 모두 제국 각지에서 공급되는 고급 석재들로 만들어졌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플리니우스는 로마의 건축과 기술력, 그리고 자원의 풍부함을 높이 평가하고 찬양했지만 그 거울 뒤에는 현대 우리가 '입찰 담합'이라고 부르는 불공정 거래의 원형이 숨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로마 제국의 찬란한 대리석 건축물들을 통해 입찰 담합이라는 고질적인 경쟁법 위반 행위의 뿌리를 추적해 보고 현대까지 이어지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살펴보겠습니다.


1. 로마 건축과 채석업의 결탁


기원후 80년 콜로세움이 완공되었을 때 로마 시민들은 그 웅장함에 경탄했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건축물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단순히 뛰어난 설계나 공학 기술만이 아니었습니다. 제국 전역에서 공급되는 다양한 석재들의 체계적인 조달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콜로세움의 외벽을 장식한 하얀 대리석은 주로 중부 이탈리아의 카라라에서, 기초 구조물에 사용된 트라베르틴은 티볼리에서, 내부 장식에 쓰인 화려한 색상의 대리석들은 그리스의 카리스토스, 이집트의 아스완, 터키의 도키메이온 등에서 공급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현대의 글로벌 공급망과 같은 복잡한 네트워크였습니다.

photo_2025-06-26_18-05-43.jpg ▲ 콜로세움의 건설 현장을 묘사한 이미지 / AI 생성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대규모 공공사업에서 석재 공급업자들이 형성한 독점적 카르텔이었습니다. 특히 카라라 대리석의 경우 소수의 채석업자들이 황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사실상 독점 공급권을 확보했습니다. 이들은 서로 경쟁하는 대신 가격을 고정하고 물량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황실 건축 프로젝트의 '입찰' 과정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여러 업체가 경쟁하는 형태를 띠었지만 실제로는 미리 정해진 업체가 낙찰받도록 조작되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5장에서 다룬 크리스티-소더비 담합 사건처럼 로마의 채석업자들도 들러리 입찰자를 세우고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아드리아누스 황제의 판테온 건설 프로젝트에서는 이러한 담합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판테온의 거대한 돔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별한 화산재 콘크리트가 필요했는데, 이를 공급할 수 있는 업체는 사실상 베수비우스 화산 일대의 몇 개 업체뿐이었습니다. 이들은 '필수설비' 독점의 우위를 이용해 3장의 륄리처럼 경쟁자들의 시장 진입을 원천 차단했습니다.

Rome_Pantheon_front.jpg ▲ 판테온, 이탈리아 로마 / 작가 로베르타 드라간

특히 주목할 점은 로마의 석재 카르텔이 단순히 가격 담합에 그치지 않고 '품질 표준화'라는 명분으로 신규 업체의 진입을 막는 진입 장벽까지 구축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황실 품질 기준"이라는 인증 시스템을 만들어 자신들만이 이 기준을 만족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현대의 독점 사업자들이 기술 표준이나 인증 제도를 악용하는 수법과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2. 제국의 입찰, 조작된 경쟁의 원형


현대 경쟁법에서 '입찰 담합(Bid Rigging)'이란 입찰에 참가하는 사업자들이 사전에 낙찰자, 낙찰 가격, 물량 배분 등을 미리 정해두고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는 마치 어린 시절 숨바꼭질에서 몇몇 친구들이 미리 짜고 누가 술래가 될지 정해놓고 게임하는 것과 같습니다. 겉으로는 공정한 경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결과가 이미 정해진 가짜 경쟁인 것입니다.


로마 제국의 공공건축 프로젝트에서 벌어진 석재 공급업자들의 담합은 현대 입찰 담합의 전형적인 유형들을 모두 보여줍니다. 첫째는 진짜 낙찰받을 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이 의도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입찰하여 들러리 역할을 하는 방식입니다. 로마의 채석업자들도 이런 수법을 사용했는데 카라라 대리석 조합의 주요 업체가 낙찰받기로 정해지면 다른 업체들은 일부러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둘째는 여러 프로젝트에 걸쳐 업체들이 돌아가며 낙찰받는 방식입니다.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의 기록을 보면, 대형 건축 프로젝트들에서 특정 몇 개 업체가 번갈아 가며 주요 계약을 따내는 패턴이 발견됩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A업체가, 다음 프로젝트는 B업체가 낙찰받는 식으로 미리 배분해 놓은 것입니다. 셋째는 경쟁력 있는 업체가 아예 입찰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로마의 석재 카르텔은 신규 업체나 지방 업체들에게 "황실 프로젝트는 우리가 전담한다"라며 압력을 가해 입찰 참여 자체를 포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photo_2025-06-26_18-23-45.jpg ▲ 불공정한 입찰을 조장하거나 묵인하는 장면을 묘사 / AI 생성

이러한 담합의 피해는 고스란히 로마 제국의 재정에, 궁극적으로는 시민들에게 전가되었습니다. 공정한 경쟁이 있었다면 훨씬 저렴하게 조달할 수 있었던 석재들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구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대 공공조달에서 입찰 담합이 납세자들의 피해로 이어지는 것과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특히 로마의 석재 담합은 '관제 담합'의 성격도 띠었습니다. 일부 황실 관료들이 특정 업체와 결탁하여 담합을 묵인하거나 오히려 조장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퇴임 후 일자리를 보장받는 대가로 불공정한 입찰을 도왔습니다. 이는 현대에도 공공기관 관계자와 업체 간의 유착이 입찰 담합의 온상이 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로마의 입찰 담합은 단순히 경제적 피해를 넘어 제국의 건축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도 낳았습니다. 공정한 경쟁이 없으니 업체들이 굳이 기술 혁신이나 효율성 개선에 투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로마의 석재 시장에 건전한 경쟁이 있었다면 콜로세움이나 판테온보다 더 뛰어난 건축물들이 탄생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3. 현대의 '로마 제국'


로마 제국이 멸망한 지 1500여 년이 지났지만 입찰 담합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는 현대에도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2019년 2월, 미세먼지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던 시기에 공정거래위원회는 놀라운 발표를 했습니다.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설치되는 대기오염측정장비 입찰에서 7년간 조작극이 벌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에이피엠엔지니어링, 하림엔지니어링, 이앤인스트루먼트, 아산엔텍, 제이에스에어텍 등 5개 업체가 2007년 12월부터 2014년 6월까지 국립환경과학원과 지자체 등 12개 공공기관이 발주한 총 21건의 대기오염측정장비 입찰에서 '들러리 게임'을 벌인 것입니다. 먼저 사전에 누가 낙찰받을지 정해놓고 나머지 업체들은 낙찰예정사가 전화나 메일로 알려준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형식적 투찰'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스크린샷 2025-06-26 182545.png ▲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 발췌

더욱 흥미로운 사례는 2024년 2월 공정위가 적발한 주한미군 극동공병단 공사 담합 사건이었습니다. 서광종합개발, 성보건설산업, 신우건설산업, 우석건설, 유일엔지니어링, 율림건설, 한국종합기술 등 7개 건설사가 2016년 8월부터 2019년 1월까지 23건의 시설유지보수공사 입찰에서 벌인 담합의 수법은 가히 치밀했습니다. 이들은 2016년 8월 한 식당에서 모임을 갖고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시설유지보수공사 입찰시장에서 경쟁을 회피하고 안정적으로 공사를 수주하자"라는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각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낙찰받기로 합의한 후 그 순번을 제비 뽑기로 정했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놀이에서 순서를 정하듯 말입니다. 순번이 한 번씩 도는 것을 '1라운드'로 명명하고, 총 4개 라운드 28개 공사에 대한 순번표를 작성했습니다. 이 사건의 특이한 점은 국제적 파장이었습니다. 담합으로 인한 피해가 주한미군에게 미쳤기 때문에 이들 7개 사는 국내 공정거래법 위반에 따른 제재뿐만 아니라 미국 법무부에 배상금 310만 달러를 지급해야 했습니다. 이는 입찰 담합이 국경을 넘나드는 문제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였습니다.

스크린샷 2025-06-26 182651.png ▲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 발췌

하지만 입찰 담합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1993년부터 2010년까지 무려 17년간 지속된 한국전력공사 기계식 전력량계 담합 사건이었습니다. LS산전, 대한전선, 피에스텍, 서창전기통신, 위지트 등 14개 업체와 2개 조합이 참여한 이 담합은 그 규모와 지속 기간, 그리고 교묘한 수법에서 현대 입찰 담합의 교과서적 사례로 남아있습니다. 이들의 담합은 단순한 가격 조작을 넘어 시장 자체를 통제하는 수준이었습니다. 1993년부터 2007년까지는 주요 5개 사가 각각 10~30%씩 물량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담합을 유지했고, 2008년부터는 신규업체들이 등장하자 기존 업체들이 자신들의 물량을 나누어주는 방식으로 담합 체계를 확장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이 사용한 '입찰 포기 강요' 수법이었습니다. 신규업체들의 등장으로 물량 배분이 어려워지자 2009년 중소 전력량계 제조사들로 구성된 제1전력량계사업협동조합과 제2전력량계사업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입찰 포기를 강요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스크린샷 2025-06-26 182946.png ▲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 발췌

이러한 현대의 입찰 담합들이 로마 시대와 다른 점은 처벌의 강도입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황실과 결탁한 업체들이 사실상 처벌받지 않았지만 현대에는 강력한 법적 제재가 가해집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독점규제법에 따라 과징금 부과, 시정명령, 검찰 고발 등의 조치가 내려지며, 미국에서는 셔먼법에 의해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입찰 담합의 유혹은 강력합니다. 공정한 경쟁 대신 담합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 때문입니다. 이는 로마의 채석업자들이 황실 프로젝트의 독점 공급권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과 같은 심리입니다.


4. 공정한 경쟁, 문명의 기초


2014년 한국건설경영협회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건설업계는 "입찰담합 등 불공정 행위로 국민께 심려를 끼친 것을 깊이 반성한다"라며 머리를 숙였습니다. 이는 마치 로마 멸망 후 석재 카르텔이 사라진 것처럼 잘못된 관행을 청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입찰 담합 문제는 단순히 일부 업체의 도덕적 해이로만 치부할 수 없습니다. 이는 시장 구조와 제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로마 제국이 석재 공급업체들의 담합을 방치한 결과 결국 제국의 건축 기술 발전이 정체되고 재정 부담이 가중되어 멸망의 한 원인이 되었듯이 현대에도 입찰 담합을 근절하지 못하면 공공조달 시스템 전체의 신뢰성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입찰 담합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로마 시대와 달리 현대에는 전자입찰시스템, 실시간 공개, 복수 검증 등 다양한 기술적 수단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속적인 감시와 제재, 내부 고발자 보호 제도, 기업의 자체적인 준법경영시스템 구축 등이 필요합니다.

photo_2025-06-26_18-32-03.jpg ▲ 투명성, 감시, 제재, 그리고 공정한 경쟁을 묘사한 이미지 / AI 생성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정한 경쟁이 모든 이에게 이익이 된다는 인식의 전환입니다. 단기적으로는 담합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혁신 동력을 잃고 시장 전체가 침체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로마 제국의 건축 기술이 정체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였습니다.


콜로세움과 판테온의 웅장함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대리석 뒤에 숨겨진 불공정한 거래의 그림자는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로마 제국의 교훈을 되새기며 진정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무라노의 반짝이는 유리잔이나 메디치 가문의 화려한 예술 후원처럼 아름다운 겉모습 뒤에 숨겨진 독점과 담합의 어둠을 걷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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