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앤롤(Rock & Roll)의 도전

4장 신흥 장르의 대중화와 한계

by 오후한시오분

1950년대 미국 음악 시장은 표면적으로는 혁신과 다양성의 시대로 기억되지만 경쟁법적 관점에서 보면 기존 시장 지배적 사업자들의 배타적 관행과 신규 진입자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시기였습니다. 1장과 2장, 3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1950년대 미국 음악 산업 역시 대형 레이블들의 시장 지배력 남용이 혁신을 저해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컬럼비아(Columbia), RCA 빅터(RCA Victor), 데카(Decca), 캐피톨(Capitol), 머큐리(Mercury) 등 '빅 파이브(Big Five)' 레이블들은 1940년대 말까지 빌보드 톱 10 히트 퍼레이드의 대다수를 장악하며 과점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이들은 무라노 유리공예 길드가 베네치아 공화국의 법적 보호 하에 독점적 지위를 유지했던 것처럼 유통망 독점, 라디오 방송사와의 배타적 관계, 대형 공연장 선점 등을 통해 시장 진입 장벽을 높였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기존 경쟁법적 쟁점과 함께 공고하게 자리하고 있던 시장 진입의 장벽을 깬 사례와 한계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비틀즈'를 놓친 대형 레이블의 패착


컬럼비아 레코드의 음반기획(Artist & Repertoire) 책임자 미치 밀러(Mitch Miller)는 록앤롤에 대한 강한 반감으로 유명했습니다. 그의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영국의 신인 밴드인 비틀즈(The Beatles)를 영입하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비틀즈는 경쟁사인 캐피톨 레코드(Capitol Records)와 계약을 맺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컬럼비아는 막대한 수익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이 사례는 단순한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기존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혁신적 신생 장르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줍니다.

▲ 1964년 비틀즈가 케네디 공항에 내린 후 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미국 의회 도서관 케네디 공항에 내린 후 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미국 의회 도서관

미치 밀러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버디 홀리 같은 록앤롤 혁신 아티스트들도 거부했습니다. 그는 엘비스와 계약을 제안했으나 당시 엘비스 매니저인 톰 파커 대령(Colonel Tom Parker)이 요구한 금액을 거부했고 결국 엘비스는 RCA 빅터(RCA Victor)로 이적해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버디 홀리 역시 밀러가 영입하지 않아 코럴 레코드(Coral Records)에서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결정들은 밀러의 보수적이고 반(反) 록앤롤적 입장에서 비롯되었으며 대형 레이블의 시장 지배력 유지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밀러는 1958년 NME(New Musical Express)와의 인터뷰에서 "록앤롤은 음악적 이유식(musical baby food)이다. 이는 평범함에 대한 숭배이며, 순응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록앤롤 장르를 경멸했습니다. 또한 그는 음반사들이 라디오 DJ들에게 금전적 대가를 지불해 자사 음반을 방송하게 하는 관행도 거부하면서 록앤롤 홍보에 소극적이었습니다.

▲ 미치 밀러(Mitch Miller) / 퍼블릭 도메인

이처럼 미치 밀러의 록앤롤 배제는 단순한 음악적 취향이 아니라 기존 대형 레이블들이 자신들의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고 혁신적 신생 장르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이는 2장에서 다룬 메디치 가문이 특정 예술가들과만 배타적 후원 계약을 맺어 다른 후원자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예술 시장의 다양성을 저해했던 것과 유사한 시장 집중과 배타적 거래의 문제를 보여줍니다.


대형 레이블들은 베네치아가 무라노 유리공예 길드에게 독점적 생산권을 부여했던 것처럼 주요 유통 채널과 배타적 관계를 구축해 독립 레이블들의 시장 접근을 제한했습니다. 이들은 라디오 방송사, 레코드 매장, 주크박스 운영업체 등과 독점 계약을 맺어 신규 장르의 노출 기회를 체계적으로 차단했습니다.


2. 엘비스 프레슬리의 등장과 한계


1954년 7월 5일, 멤피스의 작은 스튜디오 '선 레코드'에서 시작된 작은 날갯짓이 미국 음악사에 혁명을 불러왔습니다. 이날 밤, 샘 필립스와 그의 동료들은 19세의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스코티 무어(기타), 빌 블랙(베이스)이 연주하는 세션을 녹음했습니다. 엘비스는 블루스 곡 "That’s All Right"과 블루그래스 곡 "Blue Moon of Kentucky"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고, 이는 기존의 장르 구분을 무너뜨린 혁신적 사운드로 완성되었습니다. 이 곡들은 멤피스 라디오에서 즉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이후 전국적으로 방송되며 록앤롤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 1954년에 촬영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사진 / 퍼블릭 도메인

이날의 녹음은 단순히 한 아티스트의 데뷔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엘비스의 목소리와 해석은 흑인 블루스와 백인 카운트리, 블루그래스의 경계를 허물며 제한된 장르와 인종의 벽에 도전하는 새로운 음악적 융합을 보여주었습니다. 샘 필립스는 "진짜 소리, 진짜 감정"을 찾으려는 열정으로 기존 대형 레이블이 소홀히 하던 아티스트와 장르에 주목했고 그 결과 선 레코드는 미국 음악의 지형을 바꿔놓은 '록앤롤의 요람'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곡의 히트를 넘어 미국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기념비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선 레코드는 조니 캐시, 제리 리 루이스, 칼 퍼킨스 등 혁신적 아티스트들의 무대가 되었고, 이들은 대형 레이블의 독점적 시장 지배력에 맞서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샘 필립스의 "We Record Anything, Anywhere, Anytime(우리는 무엇이든, 어디서든, 언제든 녹음한다)"이라는 슬로건 아래, 인종, 장르, 지역의 벽을 넘어선 음악적 실험이 이어졌고 이는 록앤롤의 대중화와 미국 음악의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이처럼 선 레코드의 1954년 7월 5일 세션은 미국 음악사에서 가장 극적인 혁신의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되며 독립 레이블이 대형 레이블의 독점 속에서 시장을 뒤흔든 상징적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 어트랙트(ATTRAKT) 소속 '피프티 피프티'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겠습니다. 2023년 신생 기획사 어트랙트(ATTRAKT) 소속 그룹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는 데뷔 불과 4개월 만에 싱글 "Cupid"로 빌보드 핫 100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K-팝 역사상 유례가 없는 기록으로 대형 기획사가 아닌 소규모 독립 레이블이 글로벌 음원 차트의 정상에 오른 첫 사례였습니다. 피프티 피프티의 성공은 틱톡 바이럴, 혁신적인 프로모션, 그리고 아티스트와의 유연한 소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프로듀서이자 더기버스의 안성일 대표는 "유연한 의사결정과 빠른 실행력이 장점"이라고 밝혔으며 대형 기획사의 복잡한 조직과 관료적 구조와는 달리 아티스트와의 직관적이고 개인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진정성 있는 퍼포먼스와 음악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선 레코드의 샘 필립스가 인종과 장르의 벽을 넘어 아티스트의 창의성을 존중했던 것과 놀랍도록 닮은 혁신적 서사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K-팝 시장에서 하이브(HYBE), SM, JYP, YG 등 '빅 4' 기획사가 시장의 70.0%를 넘게 점유한다고 알려진 현실은 1950년대 미국 대형 음반사들이 독점적 지위를 누렸던 상황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이들은 무라노 유리공예 길드나 메디치 가문처럼 배타적 계약, 독점적 유통망,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신생 기획사와 아티스트의 진입을 사실상 차단하는 높은 진입 장벽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혁신의 한계를 뚜렷했습니다. 이는 1950년대 미국 음악 산업에서 독립 레이블들이 혁신적 아티스트를 발굴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레이블의 자본력과 유통망 앞에서 결국 한계를 드러냈던 역사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K-팝 시장 역시 대형 기획사의 독점적 지위가 유지되는 한 진정한 혁신과 다양성의 확보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3. 시장 구조 변화의 제한적 성과


1959년 라디오 DJ들에게 음반사가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관행을 금지하는 '반(反) 페이 올라' 법안 통과 직전 4대 메이저 레이블의 히트 레코드 점유율은 34%까지 떨어졌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했습니다. 1960년대 이후 음악 산업은 오히려 더욱 집중화되어 현재 3대 메이저 레이블(Sony, Universal Music Group, Warner Music Group)이 전체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라노 유리공예가 18세기 나폴레옹의 길드 해체 이후 일시적으로 경쟁이 증가했지만 결국 소수의 대형 제조업체들이 시장을 재장악한 것과 유사한 패턴입니다. 독립 레이블들의 1950년대 성과는 기존 과점 체제에 균열을 가했지만 근본적인 시장 구조 개혁하지는 못했습니다.


록앤롤이라는 새로운 장르는 확실히 음악사에 변화를 가져왔지만 이는 기존 시장 지배자들이 결국 흡수하고 상업적으로 활용한 혁신이었습니다. 메디치 가문이 초기에는 진정한 예술적 열정으로 후원을 시작했지만 점차 정치적 목적으로 변질되었던 것처럼 대형 레이블들도 록앤롤의 상업적 가치를 인식한 후에는 이를 적극적으로 포섭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RCA로 이적한 이후의 음악적 변화는 이러한 상업적 포섭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독립 레이블에서의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은 대형 레이블의 마케팅 시스템에 의해 대중적이고 안전한 형태로 순화되었습니다.

▲ 독립 레이블을 떠나 대형 레이블로 가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습 / AI 생성

록앤롤 시대를 거치면서도 음악 산업의 근본적인 진입 장벽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술 발전과 함께 자본 집약도가 높아지면서 신규 진입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무라노 유리공예 길드가 기술적 비밀과 원료 독점을 통해 진입 장벽을 유지했던 것처럼 음악 산업도 유통망, 마케팅 네트워크, 기술 인프라 등을 통한 진입 장벽이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현재 독립 레이블들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 내외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대부분 메이저 레이블들의 유통망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는 1950년대 독립 레이블들의 도전이 근본적인 시장 구조 개혁에 실패했음을 보여줍니다.


록앤롤의 등장으로 음악적 다양성이 일시적으로 증가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대형 레이블들의 시장 지배력 강화로 인해 소비자 선택권이 오히려 제약되었습니다. 메디치 가문의 배타적 후원이 일부 예술가들에게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전체 예술 생태계의 다양성은 오히려 저해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스트리밍 플랫폼 시대에도 대형 레이블들의 영향력은 지속되고 있으며 알고리즘을 통한 음악 추천 시스템마저 기존 히트 음악에 편향되어 새로운 아티스트들의 발견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스트리밍 플랫폼의 등장이 유통 민주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도 있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형태의 진입 장벽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플랫폼 알고리즘, 플레이리스트 큐레이션, 마케팅 예산 등에서 대형 기획사들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어 기술적 혁신이 시장 민주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라노 유리공예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에도 전통적 길드 시스템의 영향력이 지속되었던 것과 유사한 현상입니다. 기술 변화가 반드시 시장 구조의 민주화를 보장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기존 지배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4. 창조적 파괴의 한계와 시장 집중의 지속성


록앤롤의 대중화 과정은 외관상 혁신과 다양성의 승리로 기억되지만, 실제로는 시장 지배적 음반사(대형 레이블)들의 놀라운 적응력과 포섭 능력이 더욱 두드러진 사례입니다. 1950~60년대 미국 음악 산업에서 선(Sun), 체스(Chess), 애틀랜틱(Atlantic) 같은 독립 레이블들이 혁신적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인종과 장르의 벽을 허문 음악적 실험을 이끌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들 독립 레이블의 성공은 일시적이었고, 대형 레이블들은 곧바로 성공한 아티스트를 흡수하거나 유사한 스타일의 신인을 직접 육성하며 시장의 주도권을 다시 쥐었습니다. 이는 1장의 무라노 유리공예와 2장의 메디치 가문 사례처럼 일시적인 경쟁 증가와 혁신이 있었으나 근본적인 시장 구조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한 패턴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 혁신적 아티스트를 포섭해 견고한 성을 쌓는 대형 레이블을 표현한 이미지 / AI 생성

대형 레이블은 혁신적 아티스트와 독립 레이블을 흡수하거나 포섭하며 음악 산업의 시장 지배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구조적 중심축대형 레이블은 혁신적 아티스트와 독립 레이블을 흡수하거나 포섭하며 음악 산업의 시장 지배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구조적 중심축대형 레이블은 혁신적 아티스트와 독립 레이블을 흡수하거나 포섭하며 음악 산업의 시장 지배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구조적 중심축 이러한 현상은 현재 K-팝 산업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중소돌이 성공하더라도 대형 기획사의 자본력과 네트워크 앞에서 결국 흡수되거나 도태되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경쟁법적 관점에서 볼 때 시장의 자율적 조정 메커니즘만으로는 집중화된 시장 구조를 개선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음악 산업의 집중화와 경쟁 제한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쟁당국이 개입해 왔으며, 한국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노예 계약' 문제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는 등 시장 감시와 규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형 레이블과 기획사들은 다양한 전략(예: 아티스트 계약, 유통망 장악, 플랫폼 우위 등)으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록앤롤의 역사는 혁신이 시장 지배력 앞에서 어떻게 제약되고 포섭되는지를 보여주는 교훈적 사례이며, 예술과 경쟁법이 추구하는 다양성과 창의성의 보장을 위해서는 단발적 규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시장 감시, 규제, 그리고 혁신적 아티스트의 권익 보호와 진입 장벽 완화가 필수적임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미국 작곡가·작사가·출판인 협회(ASCAP), 방송음악협회(BMI) 등 음악 저작권 단체에 대한 반독점 규제가 시행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플랫폼과 대형 기획사의 지배력 남용 방지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음악 산업의 진정한 민주화와 다양성 확보를 위해서는 경쟁정책과 규제가 더욱 적극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혁신적 아티스트와 독립 레이블이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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