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과 권력의 경합

2장 르네상스 미술 후원의 배타적 거래

by 오후한시오분

르네상스 예술의 황금기는 천재 예술가들의 영감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찬란한 예술 뒤에는 돈, 권력,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14~16세기 피렌체를 중심으로 예술은 단순한 장식이나 신앙의 도구를 넘어 권력과 자본의 상징이자 사회적 경쟁의 장이 되었습니다. 메디치 가문과 같은 권력자들은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보티첼리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후원하며 예술을 통해 자신의 지위와 명성을 공고히 했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조명 뒤에는 소수 예술가와 가문 사이의 독점적 후원 관계, 그리고 배타적 거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이 장에서는 메디치 가문과 그들이 남긴 예술 후원의 유산을 중심으로 르네상스 예술이 어떻게 권력과 시장, 그리고 경쟁의 논리와 맞물려 발전했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봅니다.


1. 메디치 가문, 금융왕국에서 문화제국으로


메디치 가문의 역사는 14세기 피렌체에서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Giovanni di Bicci de' Medici)가 설립한 은행에서 시작됩니다. 이 은행은 유럽 전역에 지점을 두고 교황청의 재정까지 관리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그 부는 곧 피렌체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이어졌고,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는 막후에서 도시를 조종하며 '피렌체의 아버지'로 불렸습니다.

▲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Giovanni di Bicci de' Medici) 흉상 / 리미니 박물관(Museo della città di Rimini) 소장

코시모와 그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는 예술과 학문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정치적·사회적 전략이었습니다. 코시모는 플라톤 아카데미를 세워 고대 문화를 부흥시키고 브루넬레스키의 돔, 기베르티의 청동문, 도나텔로의 조각 등 대형 프로젝트에 투자했습니다. 로렌초는 미켈란젤로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며 예술적 재능을 키웠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보티첼리, 폴라이우올로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와 학자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했습니다. 그의 집은 피렌체 최고의 문화 살롱이자 창의성의 용광로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 피렌체는 유럽에서 가장 활기찬 문화도시로 성장했습니다. 보티첼리의 '동방박사의 경배'에는 메디치 가족이 동방박사로 등장하고, 피렌체 대성당(두오모),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 우피치 미술관 등은 그들의 후원과 권력을 상징합니다. 예술 후원은 곧 정치적 투자이자, 도시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는 홍보 전략이었습니다.

▲ 동방박사의 경배 (산드로 보티첼리 作) / 우치피 미술관 소장

하지만 이 화려한 후원은 모든 예술가에게 열려 있지 않았습니다. 메디치 가문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소수의 예술가들은 안정적이고 대규모의 프로젝트를 독점적으로 맡았지만 그렇지 못한 예술가들은 중요한 기회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었습니다. 예술가들은 후원자의 취향과 의도에 맞춰 작품을 제작해야 했고, 후원자와의 개인적 친분이나 정치적 줄타기가 예술적 성공의 중요한 열쇠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권력자와 예술가 사이의 독점적 후원 관계는 오늘날의 '배타적 거래'와 유사한 구조를 이미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16세기 이후 메디치 가문은 금융업 쇠퇴와 정치적 혼란으로 점차 몰락했지만 마지막 상속자 안나 마리아 루이자가 예술품을 피렌체에 남긴 덕분에 오늘날까지 그 유산이 이어집니다. 메디치 가문은 예술과 문화, 정치와 경제를 한데 엮어 르네상스라는 유럽 문명의 황금기를 이끈 '문화 경영자'였습니다.


2. 예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한 배달 앱이 동네 맛집과 계약하면서 "다른 배달 앱과는 계약하지 마세요"라고 강요하는 상황을 상상해 봅시다. 동네 맛집은 거래 금액이 제일 큰 배달 앱이라 어쩔 수 없이 이런 계약을 받아들인다면 다른 배달 앱들은 이 맛집을 통해 손님을 모을 기회를 잃게 됩니다. 소비자들도 다른 앱에서는 그 맛집 음식을 시킬 수 없으니 선택권이 줄어들겠죠.


경쟁법에서 '배타적 거래(Exclusive Dealing)'란 이와 비슷합니다. 시장에서 힘 있는 사업자가 거래 상대방에게 자신과만 거래하도록 강제하거나 경쟁 사업자와는 거래하지 못하도록 조건을 다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런 행위는 경쟁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막고,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며, 결국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 '배타적 거래' 개념 / AI 생성

르네상스 시대에도 이런 '배타적 거래'와 유사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메디치 가문이나 교황청 같은 거대 후원자들은 막대한 자금력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선택한 특정 예술가나 화파에게만 대규모 프로젝트나 중요한 작품 제작 기회를 몰아주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천재들이 당대 최고의 후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동시에 다른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비슷한 규모의 중요한 기회를 얻기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즉, 후원자의 선택이 곧 특정 예술가에게는 '독점적' 기회를 제공하고, 다른 예술가들에게는 '배제'를 의미하는 일종의 배타적 관계를 형성한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소수의 스타 예술가를 탄생시켰지만 다른 예술가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예술 시장의 다양성을 제한하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르네상스 시대의 후원 구조는 그 자체로 배타적 성격을 띨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불공정한 경쟁이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예술계의 배타적 거래는 신진 작가나 소규모 갤러리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하고, 전체 미술 시장의 다양성과 공정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3. 예술계 불공정 경쟁의 최근 실제 사례들


르네상스 시대의 권력과 결탁한 독점적 후원이나 경쟁자 배제와 같은 모습은 오늘날 예술계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때로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2024년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NPG)에서는 거액 기부자인 조이 로(Zoë Law)의 사진전이 열려 논란이 되었습니다. 로가 미술관 리노베이션 기금에 거액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예술적 완성도보다 돈과 인맥이 전시 기회를 결정한다"라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미출관 측은 "내부 규정에 따라 결정했다"라고 해명했지만 예술계와 대중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배타적 후원'의 그림자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위), 조이 로(Zoë Law) (아래) / 각 홈페이지 캡처

또한, 영국과 미국의 주요 갤러리들이 작가와의 독점 계약, 신작의 특정 기간 내 재판매 금지, 블랙리스트 위협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관행도 문제입니다. 이는 미술 시장 전체의 투명성과 공정성, 그리고 예술적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우리나라도 온라인 유통 시장의 초창기에 유사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8년 위메프·쿠팡·티몬 등 소셜커머스 3사의 불공정 행위를 제재했는데, 이 중 위메프의 사례가 배타적 거래와 관련이 깊습니다. 위메프는 납품업체와 계약하면서 자사 플랫폼에서 판매를 시작한 상품을 향후 3개월 동안 다른 경쟁 업체에서는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계약 조항을 포함시켰습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100만 원의 위약금까지 부과하도록 했습니다. 다만, 해당 조항이 실제로 실행되어 위약금이 부과된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러한 계약 조항 자체만으로도 납품업체들은 다른 유통 채널과의 거래를 시도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는 경쟁을 제한하는 '배타적 거래'의 한 형태로, 당시 공정위는 이 행위를 포함한 여러 불공정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 위메프와 CJ올리브영의 로고 / 각 홈페이지 캡처

오프라인에서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CJ올리브영은 국내 헬스앤뷰티(H&B) 스토어 시장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진 사업자입니다. CJ올리브영은 2019년부터 자신의 주력 판촉행사인 '파워팩' 및 '올영픽'을 진행하는 달과 그 전달에는 납품업체들이 경쟁사인 랄라블라, 롭스 등에서 동일한 상품으로 행사를 진행하지 못하도록 요구했다는 게 공정위의 조사에서 확인됐습니다. 납품업체 입장에서는 올리브영의 막강한 판매 채널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사실상 2개월간 경쟁사에서의 판촉 행사 기회를 박탈당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는 대규모유통업자가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납품업체의 자유로운 거래 상대방 선택을 방해한 전형적인 '배타적 거래 강요' 행위입니다. 이에 공정위는 2023년 12월 CJ올리브영에 시정명령과 함께 18억 9,6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법인을 고발하는 엄중한 제재를 내렸습니다. 최근에는 무신사의 뷰티 행사에 참여하려는 화장품 브랜드에 "참여 시 올리브영에서 제품을 빼겠다"라고 압박했다는 의혹으로 추가 조사를 받는 등 배타적 거래를 통한 시장 지배력 유지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시장의 강력한 사업자(대형 유통업체, 플랫폼)가 르네상스 시대의 거대 후원자처럼, 거래상대방(납품업체, 예술가)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한하고 경쟁을 왜곡시키는 모습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4. 르네상스 후원 경쟁, 현대 경쟁법에 주는 시사점


르네상스 시대 예술시장은 거의 모든 작품이 후원자의 주문에 의해 제작되는 구조였습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적 의도보다 후원자의 요구와 취향에 맞춰야 했고 계약서에는 가격, 납기, 재료, 심지어 완성작의 모습까지 상세히 명시됐습니다. 이는 예술가의 창의성을 억누르고 후원자와 예술가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고착화시켰습니다. 마치 오늘날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사이의 관계처럼 말입니다.

▲ 예술 시장의 배타적 거래 구조 / AI 생성

이러한 후원 경쟁과 배타적 네트워크는 오늘날 예술시장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대형 미술관, 경매사, 인증 위원회 등 소수의 기관이 시장의 진입장벽을 높이고, 인증·전시·유통을 독점하는 '현대판 후원자'로 군림합니다. 이들은 작품의 진위, 유통, 전시 기회를 좌우하며 특정 작가나 갤러리와의 배타적 관계를 통해 시장의 다양성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유명 작가의 작품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인증기관이나 재단이 시장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의 인증 없이는 작품의 가치가 사실상 '0'이 되기 때문에 시장 진입 자체를 막는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시장은 특유의 불투명성, 예술적 가치의 주관성, 시장 정의의 불명확성 때문에 경쟁법 적용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송을 건 로버트 세네델라(Robert Cenedella) 현대미술 작가의 주장에 대해 법원은 "미술관의 작품 선정과 가치 평가는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라며 미술관이 특정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지 않는 것을 법으로 강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 이탈리아 피렌체 / Pexels 이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법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법은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모든 참여자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며, 소비자(수집가)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인증·유통·전시 등 예술계의 핵심 인프라가 소수에 의해 독점되지 않도록 경쟁법적 감시와 규제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술이 권력과 돈의 논리에 갇히면 창의성은 위축되고 시장이 독점과 배타로 흐르면 혁신은 멈춥니다. 예술계가 진정한 다양성과 창의성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경쟁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함을 르네상스와 현대의 사례 모두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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