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극장, 독점의 아리아

3장 법적 허가가 만든 문화 지배의 함정

by 오후한시오분

앞선 1장과 2장에서 우리는 무라노의 유리 장인들이 기술적 비밀을 통해 시장을 지배하고, 메디치 가문이 막대한 부를 이용해 배타적인 예술 후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사례들은 기술력이든 자본이든 시장의 힘이 어떻게 경쟁을 억누를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이제 3장에서는 비슷한 양상의 독점을 마주하지만 그 위반의 강도는 한층 더 노골적이고 강력합니다.


이번 사례는 시장의 힘이 독점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법' 그 자체가 독점의 도구가 된 이야기입니다. 국가, 즉 절대군주가 단 한 사람에게 배타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경쟁하려는 모든 시도를 불법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바로크 오페라의 세계로 들어가 장바티스트 륄리의 '왕실 특허장'이 어떻게 무대를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경쟁자를 법적으로 지워버렸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태양왕의 음악 총감독 – 장바티스트 륄리


르네상스 예술의 찬란한 빛이 중세의 어둠을 걷어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듯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프랑스에서는 또 다른 문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 시기 오페라는 단순한 예술 장르를 넘어 절대군주 루이 14세의 권력과 국가 위상을 과시하는 강력한 정치적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화려한 무대 뒤에는 법적 허가를 통한 독점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폴 미냐르(Paul Mignard)의 초상화 속 장밥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

장바티스트 륄리라는 이름은 바로크 오페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1632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 륄리는 어린 시절 프랑스로 건너와 루이 14세의 궁정에서 음악가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정치적 감각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1672년 그는 왕립음악아카데미(Académie Royale de Musique)의 독점적 운영권을 부여받는 특허장을 얻게 됩니다.


이 특허장은 단순한 공연 허가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파리에서 오페라를 상연할 수 있는 권리를 사실상 륄리에게만 허락하는 것이었고, 경쟁 작곡가들의 무대 진입을 법적으로 봉쇄하는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특허장의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배타적이었습니다. 왕립음악아카데미 외의 그 어떤 극장도 2명 이상의 가수를 동원한 공연을 할 수 없었으며 공연에 사용할 수 있는 악기의 종류와 연주자 수까지 엄격히 제한되었습니다.


륄리의 독점 체제는 매우 체계적이고 강력했습니다. 먼저 공연장 수가 엄격히 제한되었습니다. 파리 시내에는 오직 3개의 공식 극장만이 허용되었는데 오페라를 위한 왕립음악아카데미, 연극을 위한 코미디 프랑세즈, 그리고 이탈리아 극단을 위한 극장이었습니다. 이는 현재로 치면 서울에서 뮤지컬을 공연할 수 있는 극장을 3곳으로 제한하는 것과 같은 조치였습니다.


인력 통제도 철저했습니다. 왕립극단에 소속된 예술가들은 다른 극장에서 출연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모든 대본은 왕실 검열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륄리는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프랑스 오페라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실제로 1685년부터 1700년까지 파리에서 상연된 오페라 73편 중 무려 68편이 륄리나 그의 추종자들이 작곡한 작품이었습니다. 이는 시장 점유율로 따지면 93%에 달하는 압도적인 독점이었습니다.

1677년 출판된 Lully 오페라 'Isis'의 악보 표지

륄리의 독점 체제 하에서 프랑스 오페라는 확실히 일정한 품질과 웅장함을 유지했습니다. 그의 서정비극(tragédie lyrique)은 프랑스 고유의 오페라 양식으로 발전했고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한 무대에서 루이 14세의 절대 권력을 찬양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함 뒤에는 경쟁의 부재라는 치명적인 문제가 숨어 있었습니다.


같은 시기 이탈리아에서는 몬테베르디, 스카를라티, 비발디 등 다양한 작곡가들이 서로 경쟁하며 오페라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에서도 헨델과 같은 천재들이 이탈리아 양식을 받아들이면서도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륄리의 스타일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자체가 법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이는 마치 현재 한국에서 특정 엔터테인먼트 회사만이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킬 수 있고 다른 회사들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상황과 같았습니다.


2. 법이 허락한 독점


륄리가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오페라 공연 독점권'은 현대 경쟁법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요? 이는 단순한 시장지배를 넘어 법과 제도가 직접 경쟁을 차단한 사례이기에 더욱 흥미로운 쟁점을 던져줍니다.


어떤 기업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유일한 고속도로를 소유하고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이 기업이 자신의 고속버스만 이 도로를 이용하게 하고 다른 모든 고속버스 회사의 진입을 막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른 회사들은 아무리 좋은 버스와 서비스를 가지고 있어도 부산으로 갈 방법이 없으니 경쟁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경쟁법에서는 이처럼 특정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나 권리를 '필수설비(Essential Facility)'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필수설비를 가진 사업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경쟁자의 접근을 막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합니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에는 명문화된 필수설비 조항은 없지만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의 하위 개념으로 '거래 거절' 또는 '경쟁사업자 배제' 등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필수 설비의 독점' 개념 / AI 생성

륄리의 '오페라 공연 독점 특허장'은 바로 이 '필수설비'에 해당합니다. 당시 프랑스에서 오페라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 특허장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륄리는 이 독점적 권리를 이용해 다른 작곡가들이 프랑스 오페라 시장이라는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는 독점규제 이론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범위를 넓혀보면 통신망이나 플랫폼, 철도 등을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독점하고 이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행위를 금지하자는 개념입니다.


오늘날 작곡가나 작가가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갖는 것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장됩니다. 이는 창작자의 노력을 보호하고 더 많은 창작 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즉, 내가 쓴 소설을 다른 사람이 무단으로 베끼지 못하게 막는 것은 합법적인 권리 행사입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쓴 소설이 인기가 많다고 해서 국가가 나에게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출간되는 모든 로맨스 소설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부여한다면 어떨까요? 이는 저작권법의 본래 취지를 완전히 왜곡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막아버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륄리의 독점권은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오페라에 대한 저작권을 보호받은 것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상연되는 모든 오페라에 대한 독점권을 가졌습니다. 이는 창작을 장려하는 제도가 아니라 경쟁자들의 창작 자체를 봉쇄하는 제도로 변질된 것입니다. 오늘날 경쟁법은 이처럼 저작권이나 특허권 같은 지식재산권이 본래의 목적을 넘어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수단으로 남용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독점력을 의도적으로 획득하거나 유지하려는 행위로 간주되어 셔먼법 위반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륄리의 행위는 현대 경쟁법의 다양한 관점, 특히 '필수설비 접근 거부'와 '지식재산권의 부당한 행사'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위법 행위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3. 티켓마스터에서 학술 출판까지


오늘날에도 법적 허가를 통한 독점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티켓마스터-라이브 네이션 독점 문제입니다. 티켓마스터는 세계 최대의 티켓 판매 업체이고, 라이브 네이션은 세계 최대의 공연 기획사입니다. 2010년 이 두 회사가 합병하면서 미국 공연 시장에 거대한 독점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라이브 네이션 / 홈페이지 캡처

현재 라이브 네이션은 미국 내 주요 콘서트장의 80% 이상을 직접 소유하거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공연장에서 열리는 모든 콘서트의 티켓은 티켓마스터를 통해서만 판매됩니다. 이는 륄리가 파리의 모든 오페라 공연을 독점했던 것과 매우 유사한 구조입니다. 아티스트들은 최고의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열고 싶다면 라이브 네이션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고, 팬들은 티켓마스터를 통해서만 티켓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독점 구조의 폐해는 2022년 11월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 티켓 판매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티켓마스터 사이트는 엄청난 접속자 폭주로 마비되었고 티켓 가격은 평균 1,088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콘서트 티켓 가격의 5배에 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수많은 팬들이 티켓을 구하지 못해 분노했고 이 사건은 티켓마스터의 독점적 지위가 과도한 수수료와 불공정한 가격 책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에 불을 지폈습니다.

티켓마스터 / 홈페이지 캡처

결국 2024년 5월, 미국 법무부와 30개 주 정부는 라이브 네이션과 티켓마스터를 상대로 반독점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라이브 네이션이 불법적인 반시장적 행위를 통해 미국 콘서트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해 왔다"라며 "그 결과 팬들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아티스트들은 공연 기회가 줄어들며 소규모 기획사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륄리의 독점이 다른 작곡가들의 기회를 박탈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맥락입니다. 독점 사업자는 경쟁의 압박이 없기 때문에 서비스 품질을 개선하거나 가격을 낮출 유인이 없고 결국 소비자가 피해를 보게 됩니다. 또한 새로운 사업자들이 시장에 진입할 기회가 차단되면서 혁신과 다양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엘스비어 / seeklogo

문화 산업의 또 다른 독점 사례로는 학술 출판 시장의 엘스비어(Elsevier) 독점을 들 수 있습니다. 엘스비어는 세계 최대의 학술 출판사로, 전 세계 주요 학술지의 상당 부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논문을 권위 있는 학술지에 게재하기 위해 엘스비어의 학술지를 이용할 수밖에 없고 대학들은 연구자들을 위해 엘스비어의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는 비싼 구독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2018년 독일의 대학들이 엘스비어의 과도한 구독료에 항의하며 계약을 거부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200개 독일 대학의 연구자들이 엘스비어 학술지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고 3년간 독일 연구자들의 엘스비어 논문 게재율이 27%에서 19%로 감소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논문 인용률은 41%에서 38%로 소폭 감소에 그쳤는데 이는 엘스비어의 독점이 실제 학문적 가치보다는 시장 지배력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JYJ / JYJ 재팬 홈페이지 캡처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독점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주요 음악 방송 프로그램과 배타적 관계를 맺고 소속 아티스트들에게만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2009년에는 SM엔터테인먼트가 동방신기 멤버 3인이 JYJ를 결성해 독립한 이후 KBS 등 음악 방송 출연을 막는 공문을 방송사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공정위는 2013년 "방해행위 금지 명령"을 내렸고, 2015년에는 방송사가 사유 없는 출연 제약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JYJ법도 제정됐습니다. 또한 인터파크 티켓, 예스24 티켓, 11번가 티켓 등은 주요 티켓팅 플랫폼은 인기 공연과 전속 계약을 맺어 다른 기획사의 공연 유치를 제한하거나 유리한 좌석 배치를 독차지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국내 주요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이 특정 음반사와 독점 계약을 맺고 해당 음반사의 신곡을 다른 플랫폼보다 먼저 공개하는 관행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관행은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음원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4. 독점 허가의 딜레마


륄리의 독점 체제가 프랑스 오페라에 남긴 교훈은 명확합니다.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인 품질과 일정한 수준의 발전을 보장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혁신의 동력을 잃고 국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18세기 중반 이후 프랑스 오페라는 이탈리아와 독일 오페라에 완전히 추월당했고, 19세기에 들어서야 베를리오즈, 비제 등의 등장으로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현대의 문화 산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정부의 보호와 지원을 받는 문화 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목격합니다. 반대로 자유로운 경쟁 환경에서 성장한 K-pop이나 웹툰 같은 분야는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독점적 허가의 폐해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첫째, 독점적 허가의 기간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공연권 허가를 7년 주기로 재심사하도록 하여 독점의 고착화를 방지하고 있습니다. 둘째, 정부 지원을 받은 연구개발 성과의 일정 부분을 의무적으로 공유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이는 공공 자금으로 개발된 기술이나 콘텐츠가 특정 기업에 의해 독점되는 것을 방지합니다. 셋째, 독점 사업자에게 공공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독점적 지위를 가진 공연장이나 플랫폼에게 일정 비율의 신진 아티스트나 독립 콘텐츠를 의무적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넷째, 시장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독점의 폐해가 나타나면 즉시 개입할 수 있는 감시 체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예술이 자유롭게 경쟁하며 조화를 이루는 창작의 거리 모습 / AI 생성

결국 예술과 시장, 창의성과 경쟁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자유 시장에서는 상업성만 추구되어 예술의 다양성이 사라질 수 있고 과도한 정부 개입은 혁신의 동력을 잃게 만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입니다.


무라노의 기술 독점, 메디치의 후원 독점, 그리고 륄리의 법적 허가 독점은 각각 다른 형태의 시장 지배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독점이 가져오는 혁신의 정체와 다양성의 상실입니다. 예술의 진정한 발전과 사회적 가치는 공정한 경쟁과 투명한 시장 환경에서만 실현될 수 있음을 역사와 현실이 모두 증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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