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금융상품, 속으론 '특혜'라면

CJ TRS 사건이 던진 질문…경쟁은 무너질까

by 오후한시오분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CJ와 CJ CGV에 6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힘든 계열사를 도운 게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고개가 갸웃해질 수 있다.


"자기 회사 식구 도와주는 게 왜 문제지?"

"금융상품을 쓴 건데, 무슨 불법이란 건가?”


바로 이 지점에서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이 있다.

▲ CJ그룹 로고 / 홈페이지 캡처

TRS란 무엇인가?…"겉은 금융, 속은 보증"


CJ와 CGV는 그룹 내 다른 회사인 'CJ건설'과 '시뮬라인'이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도와줬다. 돈이 필요한 두 회사가 발행한 채권을 CJ와 CGV가 중간에 증권사를 끼고 대신 사들이는 형태로, 이걸 '총수익스와프(TRS)'라는 구조를 사용했다. 금액으로 치면 CJ건설에 500억 원, 시뮬라인에 150억 원이다.


표면적으로는 투자처럼 보인다. 마치 "네가 주식을 발행하면 내가 사줄게"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 구조의 실질은 다르다. 투자자가 손해를 보면 그 손해까지 CJ가 떠안게 되는 구조다. 즉, 마치 "일단 네가 대출받고 안 되면 내가 갚아줄게" 같은 '보증'에 가깝게 보인다. 공정위는 바로 이 점을 문제 삼았다. TRS는 겉으론 금융상품처럼 보이지만 속으론 그룹 내 부실 계열사를 도운 것이라는 판단이다.

▲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 발췌

왜 문제가 될까…"남들보다 사게 돈 빌린 건 특혜"


경쟁법은 가족끼리 도와주는 것을 일률적으로 문제 삼지 않는다. 문제는 '시장에 영향을 주느냐'다. 가령 가족 땅에 카페를 차려 임대료를 싸게 내는 창업자와 온전히 제 값을 다 내고 카페를 운영하는 경쟁자를 동일하게 볼 수 없다. 현실에서 왕왕 벌어지는 일이지만 대기업이 할 경우 경쟁법 위반 소지가 있다.


다시 CJ 사례로 돌아가면, CJ건설과 시뮬라인은 원래 신용등급이 낮아 일반적으론 높은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야 했다. 그런데 CJ가 TRS 구조로 대신 리스크를 떠안으면서 훨씬 낮은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됐다. 이건 곧 다른 경쟁사와의 '룰'을 깨는 결과를 초래한다. 시장에서는 신용이 낮으면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룹 내 도움으로 이 비용을 회피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런 간접적 특혜를 '공정 경쟁을 해치는 행위'로 본 것이다. 아래 CGV 내부 문건에서도 "수익을 얻을 기회가 높지 않다는 점", "지급보증과 유사한 목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음"이라는 내용이 발견돼 공정위 판단을 뒷받침한다.

▲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 발췌

CJ의 항변…"합법적인 상품인데 왜?"


CJ 측은 "TRS는 국내외 기업이 자주 쓰는 금융기법"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기업이 유상증자를 하거나, 지분을 넘기지 않으면서 돈을 끌어오는 데 쓰는 구조화 금융기법이라는 설명이다. 게다가 이번에 두 계열사가 발행한 건 '전환사채'다. 나중에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붙어 있어 단순 대출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즉, 투자자로서 수익도 기대할 수 있는 상품이니 '보증'으로 볼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렇게 반박했다.


"전환권은 TRS 만기(3~5년) 이후에만 쓸 수 있어서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결국은 무료로 신용 보강해 준 것이다."

▲ 이데일리 기사 (2019.1.9 증권사-대기업 TRS거래 현황 어떻길래)

시장은 왜 민감한가?…"TRS 쓰면 다 처벌되나?"


이 사건을 기업들이 민감하게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TRS, 전환사채, 유상증자 등은 지금도 수많은 기업이 자본을 조달하는 데 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판단이 '앞으로 이런 금융기법은 다 불법'이라는 신호로 해석된다면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큰 제약을 받게 된다.


물론 공정위는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다. 다만, "형식이 아니라 실질이 문제"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겉보기엔 금융계약이어도 실제론 '리스크를 떠안고 이익은 상대방이 챙기는 구조'라면 이는 부당지원이라는 것이다.

▲ CJ그룹 / 홈페이지 캡처

"선 넘는 도와주기, 경쟁을 무너뜨린다"


기업 집단이 내부 식구를 챙기는 일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경쟁 시장에서는 '도움'도 기준과 룰이 있어야 한다. 자칫 '너는 계열사이니까 싸게 빌려줄게'라는 식의 지원이 반복되면 힘이 없는 중소기업은 설 자리를 잃는다. 결국 소비자 선택권도 줄고 시장 전체의 공정성도 흔들린다. CJ TRS 사건은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자금조달과 부당지원의 경계는 어디인가."

"정말 합법적 금융기법이었나, 아니면 특혜의 다른 얼굴이었나."


이번 판단이 자칫 기업의 정상적 경영활동까지 위축시키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동시에 시장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신호로써 작용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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