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한공, 불편한 비행의 서막

‘닭장 좌석’이 드러낸 기업결합의 민낯

by 오후한시오분

최근 대한항공이 일부 노선 여객기에 이른바 '닭장 좌석'이라 불리는 초밀집 좌석 도입을 추진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더 많은 승객을 태워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항공사의 계획은 안락한 여행을 기대했던 소비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으로 글로벌 10위권의 '메가 캐리어' 탄생을 앞둔 시점, 대한항공의 이번 선택은 기업결합이 과연 소비자에게 이로운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1. 닭장 좌석이란?


논란은 2025년 6월, 대한항공이 장거리 주력 기종인 보잉 777-300ER 11대의 이코노미석 배열을 기존 '3-3-3'에서 '3-4-3'으로 변경하는 개조 계획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3-4-3' 배열은 한 줄에 좌석을 하나 더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코노미석만 최대 37석까지 늘릴 수 있다.

스크린샷 2025-08-11 095244.png ▲ '3-4-3' 좌석 배열이 도입되는 보잉 777-300ER / 홈페이지 캡처

이 때문에 좌석당 좌우 폭은 약 1인치(약 2.6cm) 줄어들게 된다. 장시간 비좁은 공간에 앉아 있어야 하는 장거리 노선 승객의 불편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앞뒤 간격은 유지된다고 하지만 체감 공간이 줄어드는 것을 피할 수 없어 '닭장 좌석'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한항공은 일등석을 없애고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을 도입하는 등 좌석 개편의 일환이라고 설명했지만 결국 수익성 강화를 위해 승객의 편의를 희생시킨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그동안 '3-4-3' 배열은 주로 저비용항공사(LCC)가 채택해 왔기에 국적 대형항공사(FSC)의 자존심을 버린 처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2. 공정위의 ‘레드카드’…40개 노선 제한의 의미


소비자 불만이 커지자 눈길이 공정거래위원회로 쏠렸다. 공정위는 2024년 12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운임, 서비스, 좌석공급 등에 대해 기존보다 조건을 악화시키지 말라고 시정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특히 독점이 우려되는 40개 노선에 대해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의무를 부과했다.


-2019년 대비 물가 상승률을 초과하는 운임 인상 금지

-공급 좌석 수를 2019년의 90% 밑으로 줄이는 것 금지

-상품‧서비스의 불리한 변경 금지 등의 의무 부과

-소비자에게 불리한 마일리지 제도 변경 금지


공정위는 대한항공의 '닭장 좌석'을 좌석 폭을 줄이는 것은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불리한 변경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즉, 같은 값을 내더라도 더 좁고 불편한 좌석에 앉게 된다면 이는 사실상 서비스 저하이자 소비자 후생 감소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경쟁 제한이 우려되는 인천-로스앤젤레스, 파리, 런던 등 핵심 40개 노선에는 '닭장 좌석'을 적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대한항공도 해당 40개 노선에는 개조 항공기를 투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스크린샷 2025-08-11 100555.png ▲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 캡처

3. 기업결합은 소비자 이익으로 귀결되는가


이번 사태는 '기업결합이 반드시 소비자 이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교훈을 명확히 보여준다. 앞서 썼던 아시아나항공의 사례처럼 기업 자율규제에만 맡겨서는 이런 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시장 지배력이 커진 기업은 경쟁 압박에서 벗어나 서비스 품질을 낮추고 가격을 올릴 유인이 커지기 때문이다.


미국 항공 산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십 개 항공사가 경쟁하던 미국은 지속적인 인수합병을 거쳐 현재 '빅 4'(아메리칸·델타·사우스웨스트·유나이티드) 체제로 재편됐다. 그 결과 항공사들은 막대한 이익을 거뒀지만 소비자들은 급격한 서비스 품질 저하와 운임 상승이라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미국 항공소비자보호국에 따르면, 자국 항공사에 대한 불만 건수가 외국 항공사보다 2배 이상 많을 정도이다.

photo_2025-08-11_10-21-43.jpg ▲ 미국 항공사 '빅 4' / AI 생성

대한항공의 '닭장 좌석' 추진은 통합 이후 시장을 독점하게 될 지위가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고편과 같다. 규제 당국이 시정조치를 통해 제동을 걸지 않았다면 소비자들은 더 비싼 값을 치르고 더 불편한 서비스를 이용해야 했을지 모른다. 기업의 '규모의 경제' 실현이 소비자의 '규모의 고통'으로 전가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뼈아픈 사례다.


4. 현명한 소비자가 필요하다


공정위의 제동으로 40개 주요 노선은 한숨 돌렸지만 나머지 노선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대한항공은 새로운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을 도입해 선택권을 넓혔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결국 더 많은 돈을 내야 과거 수준의 편안함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반석의 서비스 질은 낮추고 이를 피하려면 추가 비용을 내라는 '조삼모사'식 전략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도 어렵다.

photo_2025-08-11_10-28-06.jpg ▲ 현명한 소비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 AI 생성

이번 논란은 항공 시장의 독과점 구조가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앞으로 통합 대한항공이 운임, 마일리지, 서비스 등 다방면에서 어떤 정책을 펼칠지 면밀히 감시해야 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기업의 자율적인 결정도 중요하지만 그 결정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소비자 후생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항공 여행의 주권은 항공사가 아닌, 결국 표를 사는 소비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 스스로 증명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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